끝없이 이어진 초원길에서 우랄 라이더를 만나다

조경국이 달린 유라시아 38,000km #8 조경국 기자l승인2020.05.12l수정2020.05.1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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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비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보인다. 시베리아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 칸스크 가는 길, 드넓은 숲과 초원

이르쿠츠크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크라노스야르스크까지 가려했으나 결국 칸스크에서 멈췄다. 로시를 지하 주차장에서 꺼내지 못해 출발이 늦어져 크라노스야르스크까지 가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 창고 열쇠를 가진 직원이 늦게 출근하는 바람에 일정이 꼬여버렸다.

모든 짐을 챙겨 숙소 마당에 내려놓고 아침 일찍부터 직원이 오길 기다렸지만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하필 내가 출발하려는 날 늦게 출근했다. 이르쿠츠크에서 칸스크까진 약 800킬로미터, 크라노스야르스크까진 10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 아침 일찍 출발해도 크라노스야르스크에는 밤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와 도시 사이 거리가 워낙 멀고 가능하면 큰 도시에 가야만 더 저렴하고 깨끗한 숙소를 찾고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무리하더라도 달리는 수밖에 없다.

종일 달리기만 했다. 이르쿠츠크를 벗어나자 숲과 초원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솔직히 러시아의 넓은 땅덩이가 부러웠다. 강진 땅끝마을에서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달려봐야 700킬로미터가 되질 않는다. 2014년 작은 스쿠터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전국일주를 다녀왔을 때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돈 거리가 약 2200킬로미터였다. 제주도 한 바퀴까지 포함해도 2500킬로미터면 끝난다.

이놈의 러시아 땅은 가도 가도 끝날 줄을 모른다. 러시아 사람들이 시베리아로 진출한 가장 큰 이유는 모피를 얻기 위해서였다. 귀족들만 입을 수 있었던 모피가 부르조아 계급의 성장으로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모피를 얻기 위해 동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16세기 이반 뇌제는 그들을 더욱 부추겼고 영토 확장의 기회로 삼았다. 탐험가와 사냥꾼들이 시베리아를 건너 길을 내기 시작하자 사람들도 새로운 땅을 기회를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도로가 나고, 마을이 생겼다. 이반 뇌제가 영토 확장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러시아는 없었을 것이다. 단순히 모피의 수요가 늘어난 것만으로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를 설명할 순 없다. 이반 뇌제의 영토 확장에 대한 욕구는 어쩌면 광기에 가까웠을 수도.

 

▲ 시베리아 횡단 도로 대부분 왕복 2차선이다. 비 오는 날은 특히 마주 오는 트럭을 조심해야 한다.

◇ 러시아 라이더 마르쫌을 만나다

칸스크까지 가는 길에도 여러 번 소나기를 만났다. 비가 나를 따라다니는 건지 내가 비를 따라다니는 건지 알 수 없는 하루였다. 오후 늦게서야 날이 완전히 개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눈을 제외한 모든 기상 상황을 다 경험한 듯... 우박까지 맞아보았으니. 시베리아를 관통하는 도로는 일부 구간만 제외하곤 대부분 왕복 2차선 도로고 대형트럭들이 많아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 공사 구간도 많은데다 비까지 내리면 속도를 낼 수 없어서 오히려 더 위험하다. 중간에 비도 피하고 끼니도 해결할 겸 두 번 쉬었는데 저녁을 먹을 때 사이드카가 달린 빨간 러시아제 오토바이 우랄을 타고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 마가단까지 여행 중인 마르쫌을 만났다.

오토바이가 비를 맞으며 세워져 있는 걸 보고 가던 길을 돌아왔다고. 만나자마자 “괜찮냐?”고 물었다. 사실 그때 나는 라면 물 끓이는 중이었는데 등을 보이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무슨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단다. 마르쫌은 모스크바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한다고. 그의 우랄을 대충 훑어보았는데도 얼마나 자신의 오토바이를 사랑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사소한 액세서리까지도 모두 붉은 색으로 ‘깔맞춤’하고 정성 들여 정비한 티가 났다. 마르쫌에게 숙소 정보도 얻고, 노보시비르스크의 실력 있는 미캐닉 연락처도 얻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여행을 즐기는 라이더들 커뮤니티가 있어 어디에 있든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 마르쫌의 붉은 우랄 오토바이. 그는 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마르쫌 뿐만 아니라 러시아 라이더들은 외지에서 넘어온 오토바이 여행자들을 친구처럼 돕는 게 전통인 듯하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비가 잦아들 때까지 그는 차를, 나는 커피를 마시며 짧은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다. 그리고 서로 연락처도 교환했다.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하며 숙소에 들어왔더니 쉰 냄새가 진동했다. 가장 큰 문제는 부츠, 완전 방수가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빗물에 발가락이 퉁퉁 불었다. 쉴 때마다 햇빛에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신발 밑창도 꺼내놓고 말려야했다. 비를 피해 중간주간 쉬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한 탓에 밤늦게야 숙소(오케이호스텔)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거의 5000킬로미터를 달린 셈이니 이제 겨우 러시아를 절반 지났을 뿐. 아직 10일쯤 더 달려야 러시아와 라트비아 국경에 닿을 듯하다.

◇ 솜씨 좋은 미캐닉 이고르와 우랄 오토바이

칸스크에선 잠만 잤을 뿐 어디 한 곳 둘러보지 않고 바로 옴스크로 향했다. 거의 1000킬로미터를 달려왔는데 숙소를 구하지 못해 옴스크 시내에서 또 빙빙 돌았다. 겨우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방을 잡아 들어왔다. 오토바이를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그런 곳을 찾기 어렵다. 특히 주말에는 저렴하고 괜찮은 곳은 일찍 예약하지 않으면 허탕 칠 수도 있다. 옴스크 오는 길에 노보시비르스크에 들러 정비했다. 지난 번 비포장도로를 오래 달린 이후로 이곳저곳 삐거덕거리는 곳이 생겼다. 어제 만난 마르쫌이 알려준 안드레아라는 미캐닉을 찾아갔으나 자리를 비워 그의 친구를 소개 받았다. 혼다 자동차의 미캐닉으로 일하고 있는 이고르는 우랄 라이더기도 하다.

로시를 받자마자 능숙하게 문제들을 해결해주었다. 부품이 없는 것은 자신의 우랄에서 빼내 로시에 이식(?)했다. 정비공장에 세워져 있는 우랄 최신형 모델에 앉아보기도 했다. 엔진 실린더가 좌우로 움직이는 수평대향 대형엔진을 사용하는 오토바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BMW와 모토구찌, 그리고 우랄 일부 고배기량 모델에 수평대향 엔진이 장착되어 있다. 실제 주행해본 적은 없지만 장거리 라이딩을 할 때 피로가 적고 무게중심이 낮아 조작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고 들었다.

 

▲ 이고르가 일하는 정비공장에서 만난 최신형 우랄 오토바이.

우랄 오토바이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적국이 되기 전 BMW의 기술을 빌려 군납용 오토바이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우랄의 시작이다. 나중에 전쟁에서 승리한 소련이 독일에 있던 BMW 오토바이 생산라인을 뜯어 와서 아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 오토바이나 내가 앉아본 최신형이나 우랄의 기본 디자인은 오랜 세월 거의 변함이 없는 듯하다.

이고르가 유튜브로 물이 세차게 흐르는 강을 우랄을 타고 건너는 자신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물에 완전히 잠겼는데도 시동이 꺼지지 않고 다들 강을 건넜다. 사이드카의 바퀴에도 동력을 전달할 수 있으니 웬만한 험지나 강도 헤쳐 나갈 수 있다. 매력 있는 오토바이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쉽게도 수입사가 없다. 국내 오토바이 시장은 혼다, 야마하 등 일제 오토바이의 점유율이 아주 높다. 오토바이에 대한 도로 규제가 심하고, 시장이 작으니 다양한 우랄 같은 오토바이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엄격한 환경 검사도 수입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 이고르의 꼼꼼한 정비 덕분에 든든하게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타이어 교체할 때 체인만 함께 점검하면 된다.

옴스크에서 현묵 씨를 만나기로 했다. 그는 오토바이를 기차에 실어 노보시비르스크로 보냈고 거기서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달리기 부담스러우면 기차로 미리 실어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하다. 현묵 씨와는 모스크바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내내 혼자 달리다 드디어 함께 갈 동료를 만났다.


조경국 기자  badagip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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