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록단 인터뷰] 함양한복 박정순 아지매

[편집자 주] 진주지역 청년들(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이 지난해 12월부터 1월말까지 진주중앙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 작은 책자를 펴냈다. 책자 이름은 ‘시장, 추억을 쌓다’이다. 총 8편의 기록을 단디뉴스가 기사화한다. 젊은 청년들의 눈에 중앙시장은 어떻게 비춰졌을까?

중앙시장 2층 비단길 청년몰 옆, 줄지어 있는 조용한 한복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문 앞마다 아지매들의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약속시간에 맞춰 문을 두드리니 반갑게 맞아주시던 박정순 아지매. 아지매 만큼 방안을 환히 비추는 햇살이 참 따뜻했다. 조그마한 공간 속 양쪽 선반엔 원단이 가득 놓여있고, 한편엔 아지매가 열심히 만들었을 한복들이 걸려있었다.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움푹 파인 재봉틀 밑 바닥도 인상적이었다.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며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함양한복의 시작

함양한복의 주인장인 박정순 아지매는 가게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함양에서 태어났다. 한복이 좋아서 지금까지 한복 일을 해오고 있는 아지매. 결혼하기 전부터 부모님이 반대해도‘나는 한복을 다루겠다’는 굳은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한복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진주에서 간호사를 하던 언니가 떼어온 한복 옷감으로 어머니가 한복을 해 오신 것을 보면서다.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한복을 배우기 위해 나름대로 돈을 모았는데 아버지께서는 농사일에 일손을 보태려고 못 나가게 하셨단다. 그러다 2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해 가을 진주에 살고 있는 오빠의 도움을 받아 고향을 떠나왔다.

진주로 와 언니 산후조리를 돕다가 1977년도 즈음 한복을 배웠다. 한복집을 하나 소개받아  1년 동안 그 집에서 먹고 자면서 저고리 빼고는 거의 다 배웠다. 언젠가 독립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밤낮으로 정말 열심히 했는데, 1년을 배우고 나니 건강이 나빠져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러고 1~2년 후, 고향 사람인 남편과 결혼을 약속하면서 다시 진주로 왔다. 1년 더 한복을 배운 후 1980년 1월 진주 중앙시장, 바로 이 자리에서 한복점의 주인이 됐다.

진주의 예술과 함양한복

▲ 함양한복 박정순 아지매의 가위

(사진 = 김도연 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

정순 아지매의 스승은 한복을 잘 다루는 분이었다. 아지매는 “어른 밑에서 배우기 자체를 야무지게 배운 거지”라며 스승과 자신의 한복 실력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금 하고 있는 한복은 예복보다 주로 무용복인데, 그 스승님께 직접 배운 건 아니고 국립민속예술보존회 故성계옥 회장님을 통해 시작하게 됐어요. 그 당시는 진주검무가 지금처럼 활성화된 것도 아니고 한삼(여자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의 소매끝에 댄 흰색 감)같은 것도 그 당시에 샘플 있는 건 영 별로였는데 나한테 한번 시켜보시더니 마음에 든다며 저에게 맡기셨죠.”

아지매는 예술 활동하시는 분들 때문에 지금은 한복이 많고 예복은 점점 사양길이라고 했다. 맞춤에 비해 대여는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정순 아지매는 문화재 단체 옷을 해주면서 자긍심과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노하우는 철저한 고객관리

‘어떻게 하면 고객이 입기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아지매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 치마에 끈 대신 ‘지퍼’를 다는 것이다. 전통방식으로 끈을 묶으면 답답하고 불편한데, 아지매는 전통을 최대한 지키면서 치마에 지퍼와 단추를 달았다. 편안함에 한번 해 입으신 분들은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달리 신경 쓰는 부분은 저고리의 깃모양이나 동정(저고리나 두루마기의 깃 위쪽에 다는 흰색의 긴 헝겊)이다. 보통은 화학섬유나 나이론으로 된 동정을 사용하지만 아지매는 서울에 있는 실크 동정을 직접 주문해 쓴다. 그리고 유행 따라 깃의 모양이나 동정의 모양, 넓이를 맞추어 가기 때문에 촌스럽지 않은 한복을 만든다.

아지매는 옷이 다 완성되면 직접 입혀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수정해준다. 나아가 한복 입는 법, 관리하는 법 등등 한복에 관한 기본 지식들도 알려준다. 고객과의 시간 약속도 철저하게 지키며 늦었을 땐 직접 배달도 간다. 고객 관리를 철저하게 해온 것. 그러니 어느 고객도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

시대에 맞게 바뀌는 한복

▲ 함양한복 박정순 아지매가 만든 한복

(사진 = 김도연 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

‘전통한복’하면 기본 틀이 있어 변화가 없고, 그저 나이 드신 분들만 입는 옷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한복도 디자인의 변화가 굉장히 빠르다고 한다. 4~5년 차이로 디자인이 변하는데 요즘엔 배래(한복 저고리 소매의 밑 부분)와 옷고름(저고리나 두루마기의 앞길을 여며 고정시키기 위하여 가슴 근처에서 맺는 약간 폭이 있는 두 개의 끈)이 넓은 것이 유행이다.

아지매는 최근 트렌드를 주로 TV나 서울의 큰 회사에서 전국적으로 제공하는 책자를 보고 참작한다. 한복의 유행은 서울부터 돌아 내려온다. 주로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유명한 한복 디자이너들의 옷이 유행을 주도한다. 그런 것을 보고 빨리 적용하는 사람들은 고객이 많고, 옛날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고객이 줄어든다고 한다. 아지매는 변화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따라가 고객이 다소 많은 편이다.

한복인으로서의 꿈

“전부터 ‘지금은 진주성이라고 부르는 촉석공원에 한복입고 입장해서 축제를 즐기는 그런 날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아지매는 차의 날인 5월 21일 진주의 여러 차인회 회원들이 한복을 입고 차를 나눠 마시는 그날,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촉석공원을 다니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또한 기존의 한복 입는 행사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광화문이나 전주한옥마을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퓨전한복을 입는 것은 화려하지만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그는 ‘우아하고 고운 전통한복을 더 많이 입어야 할텐데’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함양한복을 만든, 그리고 이어갈 사람들

정순 아지매가 한복을 만들며 살아온 과정에는 남편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다. 남편은 결혼 당시 공무원이었는데, 현재는 공직 생활을 마치고 퇴직, 학교 당직실에 나가고 있다. 남편은 아지매가 한복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준 큰 버팀목이었다. 한복 일에 협조적이고, 배달이든 뭐든 잘 도와주며 항상 퇴근을 가게로 했다고 한다. 지금도 아침마다 데려다 주고 퇴근한 뒤 데리러 온다. 집안일도 남편이 많이 해 밖에서 일을 해도 가사 스트레스가 없다고 한다. 어쩐지, 아지매의 얼굴에는 행복이 딱 쓰여있다.

현재는 아지매와 올케, 그리고 조카딸이 한복 일을 함께하고 있다. 아지매는 지금 방에서 십 몇 년을 하다가 2층 끝방으로 잠시 옮겨 오랫동안 일했다. 지금은 끝방을 조카딸에게 내어주고 원래 쓰던 방으로 돌아와서 일을 계속 하고 있다. 손아래 올케가 시골 것을 다 처분하고 출퇴근하면서 7~8년 동안 아지매에게 한복을 배웠고, 그 딸이 어릴 때부터 이 일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구에서 공부하고 와 2년 전부터 아지매 밑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고 있다.

아지매는 입이 마르도록, 조카딸이 너무 예쁘고 긍정적이고 소질도 있고 잘한다고, 딱 아지매 어릴 때 같다고 칭찬을 하셨다. 대를 잇는다니까 더 이쁘다고 한다. 조카 딸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 보였다.

 

▲ 함양한복 박정순 아지매(사진 = 김도연 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

진주중앙시장의 변화

아지매에게 중앙시장의 변화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옛날보다 시장이 훨씬 깨끗해졌다고 한다. 아케이드공사를 하고 시장 전체가 깨끗해진 게 2000년도부터였을 건데, 제일 고마운 게 여기 2층 복도에 타일을 깔아준 거라고 한다. 그전에는 그냥 공사할 때 그대로 시멘트바닥이었는데 아무리 쓸고 닦아도 티도 안 나고, 손님들도 ‘이런데도 사람 사나’ 이런 얘기도 했는데 이제 시장이 깨끗해져서 좋다고 한다.

반면 아쉬운 점은 점점 사라져가는 한복집과 대를 이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중앙시장 2층에는 한복가게가 약100개정도로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25~30년 된 중앙시장 한복가게 친목단체인 한복부에 32명 정도의 회원만이 남았다. 현재 중앙시장 안에서 60대 중반인 아지매 연배가 중심이 돼 한복일을 하는데 그 윗 세대 분들은 윤달이 되면 수의 같은 거나 하지, 일이 있어서 나오는 분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지매는 한복집을 이어갈 사람들이 없는 점을 우려했다. 아지매의 조카딸이 중앙시장 한복점에서 가장 어리고, 조카딸도 진지하게 자기 가게를 열 때의 상황을 걱정한다고 한다.

청년상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청년상인들이 시장에 들어오는 것에 아지매는 긍정적이었다. 시장이 더 깨끗해졌고 젊은이들이 찾아오게 돼 좋다고 한다. 기존에 있던 상인들이 청년상인들에게 협조하고 잘 되도록 응원해야 청년들도 더 힘을 내고, 그래야 시장 전체가 더 발전하고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시던 아지매, 이런 어른들이 많아 질수록 전통시장이 더 살아나고, 활력을 되찾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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