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부끄러워지지 않기 위해서 봐둬야 할 영화

귀향(鬼鄕)은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서 고통받고 죽었던 20만명에 이르는 조선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반인륜적인 노예생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녀와 함께 고난을 이겨내려 노력했던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더 이상 살아서는 만날 수 없고 정상적으로 그녀의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던 여인이 무녀를 통해 친구를 만나고 그 혼이나마 고향에 돌려보내주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영화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며 소녀들과 할머니의 고통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상황이 끔찍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그 실상에 대해 정확히 아는 바가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 귀향 홍보 포스터

그러나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의 과거도 현재도 정확히 보여주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 감독은 “정치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은 최대한 피해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일본군에게 당했던 할머니들의 너무도 끔찍한 과거는 사실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노력하셨던 모습은 정신대 피해할머니 접수를 받는 구청직원에게 퍼부은 단 한마디 “그래 나 미쳤다.”로만 표현되었다.

전쟁터에서 받은 말로 이루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가족은 이미 죽었거나 그녀들을 외면했다. 결국 다시 떠돌이가 되었고 정상적인 삶은 꿈에나 가능한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조국이 해방되었음에도 여전히 해방을 맞이하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그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내며 일본의 반인륜 전쟁범죄를 알리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셨던 모습들은 영화에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전투장면에 어색함이 있었고 탈출한 아이들이 비상이 걸린 부대에 무사히 돌아오는 장면, 마지막에 일본군이 살아나는 장면 등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으나 소녀들의 고통을 쫓아 가는데 방해가 될 정도로 어색하지는 않다. 이런 걸 시시콜콜 따져가며 영화를 볼려면 제작비가 없어서 세트장을 몇 곳 만들지도 못했고 대규모 전쟁장면 촬영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제작 현실부터 따져야 할 것이다. 무능력한 감독이나 제작자를 탓하기보다 무능력했고 무심한 우리 사회를 비판해야 한다. 귀향의 제작 수준이 우리의 역사 인식 수준이며 반인륜범죄행위에 대한 우리 양심의 수준이다.

▲ 패전한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위안부 소녀들을 처형하고 있다. 뒤에 등장하는 일본군에 몇 명을 더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전체 일본군이다. 열악한 제작환경을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만주의 길림성에 주둔한 일본군 부대는 관동군이다. 이 부대에 대한 미군의 평가를 보면 “약 100만으로 추산되는 관동군은, 미국이 일본 본토를 점령하더라도 독자적인 전쟁수행이 가능하며 이들 제압하는데 (1945년 기준으로)약 10년이 더 걸릴 것”으로 봤다. 이런 미군의 정보분석에 따라 미군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원자폭탄을 사용했고 소련군의 개입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 부대는 독립운동가들과 중국 항일군을 학살했고 생체실험으로 유명한 731부대을 운영했다. 관동군은 2차세계대전 중에는 독립군을 학살했고 종전 후에는 현재 우리나라 분단을 만들어낸 단초를 제공했던 부대이다.

이 일본군에 대한 묘사는 말단 부대에 한정되어 있어서 당시 소녀들이 처한 상황,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이면서도 끔찍한 폭력집단들에 의해 유린되는 10대 소녀들의 상황을 알려주는데 부족함이 있다.

이에 대해 감독은 “당시 끌려간 소녀들의 나이대가 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표현의 한계로 인하여 소녀들이 처한 상황의 1/100도 표현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이 증언한 것을 그대로 영상으로 만들었다면 국내 상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태워지는 소녀들"

경상도에서 끌려간 소녀들의 말을 들어보면 매우 친숙한데 경상좌도(부산이나 대구) 말이 아니라 경상우도 우리 동네 말씨이다.

주연배우 강하나(정민 역) 양이 우리 지역 예술단체인 ‘큰들’에서 경상도 말을 배웠기 때문이다. 강하나 양의 어머니는 위안소를 관리하는 일본인 역으로 함께 출연하고 있으며 둥글둥글하게 생긴 잔인한 일본군으로 나오는 임성철씨는 김구선생의 외종손이다.

정리하자면 귀향은 소녀들의 고통과 치유에 중점에 두고 만들어졌다. 그래서 과거의 소녀들이 마주했던 제국주의자들의 반인륜 범죄의 잔악함이나 앞서 지적했던 할머니들이 이겨내야 했던 현재의 문제들을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해 내지는 못했다. 귀향은 시시콜콜 따져보면 여러 가지 논란거리가 있음에도 한 번쯤 봐둬야 한다.

하동 악양 출신의 정서운 할머니는 살아생전 이렇게 증언하셨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부끄러우려면 나에게 그렇게 악랄한 짓을 했던 일본이 부끄러워야하고, 나같은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한국 정부가 부끄러워야지... 왜 내가 부끄러워야 되나..."

스스로 부끄러워지지 않기 위해서 봐둬야 할 영화이다. 지금 당장 우리의 부끄러움을 바로잡을 수 없기에 조금 불편하고 많이 힘들더라도 담담히 영화 귀향을 마주할 수 있길 바란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니 거울을 쳐다보는데 불편함을 있을지라도 용기를 낼 필요는 없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거울을 바라보듯 그렇게 바라보고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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