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환 진주시농민회 부회장 "영하 14도 넘는 추위에도 외롭지 않게 투쟁"
청년과 시민들의 밤샘 연대로 32시간만에 남태령 넘어
트랙터 10대 한남동 대통령 관저 도착

'탄핵 응원봉'을 든 청년과 시민들이 다시 남태령에 모여 "윤석열은 방빼고, 경찰은 차빼라" 구호를 외치며 '윤석열' 체포를 촉구했다.

전봉준투쟁단(전국농민회 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농사용 트랙터 33대와 화물차 60여대를 끌고 21일 오전 8시께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초입 남태령에 도착했다. 그러나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3중으로 가로 막은 경찰차벽에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고립 소식이 SNS전해지자 청년과 시민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연대 투쟁을 이어나갔다. 

전봉준 투쟁단의 고립 소식이 전해지자 청년과 시민들이 이곳으로 찾아와 연대 농성을 이어나갔다.
전봉준 투쟁단의 고립 소식이 전해지자 청년과 시민들이 이곳으로 찾아와 연대 농성을 이어나갔다.

직접 트랙터를 타고 남태령에 도착한 진주농민회 전주환 부회장은 "남태령에서 경찰 차벽에 가로 막혀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었는데, 당시 상황이 유트브 라이브 방송, sns에 실시간으로 상황이 중계되면서 청년을 중심으로 많은 시민들이 모여 주셨다. 영하 14도 넘는 추운 날씨에 마스크에 고드름이 맺힐 정도였는데, 끝이 보이지 않은 행렬과 사람들의 응원속에 우리 농민들도 외롭지 않은 밤을 보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농민들만 있던 당시에는 경찰의 위협적인 엄포가 계속되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은 트랙터를 지금 치우지 않으면, 대형 지게차로 옮겨버리겠다"면서 "이 시위는 불법이니, 당장 해산하라는 방송을 거듭 내보냈었다"며 당시 긴박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전봉준 투쟁단 농민들이 고립 소식이 전해지자 청년과 시민들이 함께 농성장을 찾아와 32시간 밤을 세워가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사진제공 진주시농민회)
전봉준 투쟁단 농민들이 고립 소식이 전해지자 청년과 시민들이 함께 농성장을 찾아와 32시간 밤을 세워가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사진제공 진주시농민회)

이후 "22일 정오를 넘기며 연대 투쟁에 함께하는 시민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주최측 약 3천명으로 추산되는데 그제서야 경찰은 위협적인 방송도 멈추었고, 길을 터주었다"며 연대의 손길을 보내준 청년과 시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전봉준 투쟁단과 함께한 청년
직접 트랙터를 타고 남태령에 도착한 진주농민회 전주환 부회장은 "남태령에서 경찰 차벽에 가로 막혀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청년과 시민들의 응원속에 우리 농민들도 외롭지 않은 밤을 보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에 따르면 남태령 일대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는 외진곳이었는데 전봉준 투쟁단의 고립된 상황을 듣고 시민들의 뜨거운 응원이 이어졌다고 한다. 

시민들은 농민들에게 핫팩과 따뜻한 먹거리,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담요 등의 물품을 남태령으로 보냈으며, 배달 노동자들도 이들을 위해 필요한 물품을 전달해 주었다. 

시민들은 서로를 걱정하며 밤을 지세우며 농민들을 응원했다. 직접 남태령에 오지 못한 시민들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에 후원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전봉준 투쟁단이 남태령 고개에서 고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년과 시민들이 이곳으로 찾아와 연대의 농성을 이어나갔다(사진제공 진주시농민회)
전봉준 투쟁단이 남태령 고개에서 고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년과 시민들이 이곳으로 찾아와 연대의 농성을 이어나갔다(사진제공 진주시농민회)

영하 14도로 살을 에는 추위에 시달린 이들에게 잠시라도 몸을 녹이라는 바람으로 진주시농민회가 대절한 버스로 난방 쉼터로 개방했으며, 이후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이 '난방 버스'를 보내주기도 했다.

전봉준 투쟁단 농민들이 고립 소식이 전해지자 청년과 시민들이 함께 농성장을 찾아와 32시간 밤을 세워가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사진제공 진주시농민회)
전봉준 투쟁단 농민들이 고립 소식이 전해지자 청년과 시민들이 함께 농성장을 찾아와 32시간 밤을 세워가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사진제공 진주시농민회)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일부 야당의원들도 농민들과 경찰의 협상 중재를 위해 남태령 현장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22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경기도 안양시에서 온 엄승윤씨(30)는 "명박산성(이명박 정권 당시 광우병 집회에서 경찰이 세운 차벽)과 박근혜 때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것이 자꾸 생각났다"며 "밤새 방송으로 보다가 안 나오면 너무 마음이 무거울 것 같아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4시 40분경, 장장 32시간이 지나서여 경찰 차량은 그제서야 전봉준 투쟁단의 길을 터주었다.

전봉준 투쟁단의 고립소식이 전해지자 청년 시민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연대 투쟁을 이어나갔다. (사진출처 경향신문)
전봉준 투쟁단의 고립소식이 전해지자 청년 시민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연대 투쟁을 이어나갔다. (사진출처 경향신문)

전농에 따르면 경찰과 교섭한 끝에 이날(22일) 오후 4시44분 트랙터 10대만 이끌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이동했다. 4시25분쯤 경찰기동대 차량이 철수하며 차벽이 허물어지자 시민들은 "우리가 이겼다" "청년이 이겼다"고 외치며 환호했다.

전봉준 투쟁단의 고립 소식이 전해지자 청년과 시민들이 이곳으로 찾아와 연대의 농성을 이어나갔다.
전봉준 투쟁단의 고립 소식이 전해지자 청년과 시민들이 이곳으로 찾아와 연대의 농성을 이어나갔다.

남태령을 넘은 트랙터 10대는 동작대교를 건너 한남동 관저 앞까지 갔다.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남태령을 기어이 넘고야 말겠다는 시민과 농민들의 절절한 염원이 있었기에 관저 앞까지 트랙터를 가지고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트랙터가 관저 앞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관저 인근 한강진역 앞에서 다시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는 1만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주최 측은 추산했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