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민 토론회 열어
악용되는 관련법 지적도
독일 사례, 참고 될까?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악성민원 등에 시달리다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하자, 이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한 인식 및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진주교육공동체 결은 1일 '학교의 위기, 교사와 학생의 위기-교권과 학생인권의 공생관계 만들기'라는 주제 아래 시민들과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비대면(화상 회의)으로 진행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모두의 권리가 지켜지는 교육현장이 되려면, 인식부터 제도까지 다양한 변화가 요구된다고 입을 모았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며, 학생인권 조례를 교권추락의 원인으로 삼는 정부와 일부 언론을 성토하기도 했다. 입시와 경쟁 위주의 교육정책에 근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진주교육공동체 결이 마련한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
진주교육공동체 결이 마련한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 원인? NO!”

하진호 진주교육공동체 결 공동대표는 이날 “교사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며, 정부나 교육부, 일부 언론에서 나오는 논의가 가관”이라고 지적했다. 학생인권조례를 교권이 추락한 이유로 삼는다면서다. 그는 이 같은 논의들을 비판하며, 학생인권과 교권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학생인권 조례가 있는 곳은 6곳에 불과하다며, 조례가 없는 곳이 교권 보호가 더 잘 되고 있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집계한 시도별 교권 침해 현황을 보더라도, 학생인권 조례 제정 후 교권침해 사례가 줄어든 지역이 많았다. 2012년 조례가 제정된 서울의 경우 2012년 1780건이던 교권침해 사례가 2021년 278건으로 줄었다. 같은 해 조례가 제정된 광주도 2012년 487건에서 2021년 67건으로, 2013년 조례가 제정된 전라북도도 2013년 141건에서 2021년 108건으로 교권침해 사례가 줄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교권 추락을 불러오지 않았던 셈이다.

하진호 공동대표는 특히 학교 교육이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이 되다보니, 이러한 문제가 나오는 것 아니겠냐며 교육정책의 변화를 요구했다. “입시만을 위한 죽은 교육이 살아 숨 쉬어야 할 교육은 물론 교권과 학생인권마저 흔들고 있다”면서다. 그러면서 그는 “입시 위주의 교육은 학부모들의 욕망을 강화시키고, 결국 교권을 약화시킨다”며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으로 거듭나야 교사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도 행복한 교육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악용되는 관련법에 교사들 낙인 찍혀”

현직 교사이기도 한 정헌민 진주교육공동체 결 공동대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후 교육부에 신고된 교권 침해 건수는 줄었지만, 되레 학부모들의 교권 침해 수는 늘었다고 했다. 2010년부터 학생인권조례안이 제정되기 시작한 점을 든 그는, 교육부에 신고된 교권 침해 건수가 2014년 4009건에서 2018년 2454건으로 줄었다고 했다. 다만 같은 기간 학부모의 교권 침해 건수가 늘었다며, 2014년 1.57%에서 2018년 8.56%로 5.5배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돼, 기소된 교사 비율은 매우 적다.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돼, 기소된 교사 비율은 매우 적다.

그는 제정 취지와 달리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학교에서 악용되고 있다고도 했다. 이 법이 아동을 만 18세 미만으로 규정하다보니, 학교에도 적용되고 있다면서다. 그는 2018년부터 4년간 6787명의 교사가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시스템에 아동학대 행위자로 등록됐는데, 이 가운데 수사기관에서 정식 사건으로 수사한 건 863명, 기소된 건 110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중 33명만이 처벌받고, 6명은 무죄 판단을 받았으며, 나머지는 재판중이라고도 했다.

그는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돼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학교로 돌아오더라도 교사들은 괴로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설명했다. 신고된 것만으로도 낙인이 찍혀 강력한 담임교체 요구에 시달리거나, 사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면서다. 그는 2021년 아동학대로 판정된 사례 3만 7605건 가운데, 초중교 교직원에 의해 학대 사례는 2.9%에 불과함을 통계를 인용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의 경우 교권과 학생인권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며,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의 경우 학부모 소통 전담 직원을 둬 학부모와 교사간의 불필요한 접촉을 방지, 교사가 악성민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면서다. 또한 교사에게 상급학교 추천 권한을 줘 교권을 강화하고, 문제 학생은 수업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징계권도 주고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꼭 이게 정답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입시위주 교육 문제.. 인권교육 필요”

시민들은 이날 교권과 학생인권을 둘러싼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교육 제도 전반을 두고 다양한 입장을 내놨다. 현직 교사들은 대체로 아동학대법이 악용되고 있는 점을 거론하며 “젊은 교사들이 신고 당할까 두려워 위축되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를 받는 것만으로도 교사들은 일을 그만둬야 할 수준의 영향을 받는다”며 “좋은 교사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법이 악용되지 않을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진주 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 설치된 분향소, 한 측 벽에 시민들이 추모의 글을 남겨뒀다.
진주 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 설치된 분향소, 한 측 벽에 시민들이 추모의 글을 남겨뒀다.

마산가포고 3학년이라고 밝힌 김경훈 씨는 “학생인권을 강조하다보니 교실이 무너졌다는 교육부(장관)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이 같은 발언들은 정치적 면피를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법 개정만으로는 근본적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교육의 시장화가 핵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교사를 기술자로, 교장을 행정관리자로 만든다면서다. 입시위주의 교육, 교육 분야의 시장화를 바꿔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학교폭력 심의위원을 오래 지낸 곽은정 씨는 “지켜보니 초등학교 교사의 어려움이 큰 것 같았다”고 했다. 중고등학교에서의 학교폭력은 가해자, 피해자가 뚜렷한데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교사가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곤 한다면서다. 그는 “학부모들이 행동에 앞서, 그 같은 행동이 아이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교사, 아이 모두가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외에도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나만의 인권이 아닌, 타인의 인권을 고려하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학생과 학부모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공동체 의식을 높여야 한다”, “개인과 집단을 매도하지 말고, 시스템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 “인권교육을 권장해야 한다” 는 등 각자가 생각하는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를 요구했다. /단디뉴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