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부자 감세’ 여론 형성에 앞장선 보수신문이 ‘전기・가스 요금 딜레마’에 빠진 정부와 여당을 대신해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여론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31일 정부와 국민의힘은 당정 협의 이후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안을 유보했다. 정부·여당은 그동안 한전・가스공사 누적 적자가 심각해 요금의 단계적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당정이 전기・가스 요금 인상 문제를 결론 내지 못한 것은 지난해 겨울 ‘난방비 폭탄’으로 악화한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부자 감세와 경기 둔화로 세수 결손이 현실화하자, 긴축재정 방침을 정한 윤석열 정부는 별다른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보수신문은 앞다투어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며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여론 조성’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3일 사설을 통해 “시장경제 원칙을 외면하고 공공요금 인상을 계속 보류하는 것은 다가오는 총선을 의식한 선거 포퓰리즘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인상을 계속 미루다간 에너지 소비 구조 왜곡은 심해지고,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막는 수밖에 없다”라며 요금 인상 보류를 ‘정략’이라고 규정했다. 서울신문은 4일 “에너지 요금 인상 결정을 미루면 국민에게 더 큰 부담만 지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라며 ‘전기요금 인상’을 압박했다.

한전은 “2020년 대비 2022년 전력 구매 단가는 90.5% 증가했지만, 판매단가는 9.7% 증가에 그쳤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한전은 32조 6,500억여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와 여당이 2분기 전기요금 인상 보류를 결정하자 한국전력은 천문학적 적자를 이유로 올해 들어 8조 원이 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미국・유럽발 은행 위기로 금융시장 불안이 계속되면서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빨아들여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수신문은 한전채 발 자금 경색을 빌미로 다시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7일 사설 <채권시장 블랙홀 된 한전債, 피해는 돈 급한 기업들 몫>에서 “전기료 정상화가 늦어질수록 한전채 발 자본시장 교란이 고착화되고 한전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라며 전기요금 인상을 압박했다. 매일경제도 같은 날 사설에서 “한전채 발행이 급등한 것은 생산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전기를 파는 역마진 구조 탓이다”라면서 “전기요금을 적정 수준으로 올리라”고 주문했다. 매일경제는 한술 더 떠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을 경우 전력산업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위협했다. 한국경제는 “한전 적자를 줄이고 자본시장 왜곡을 막을 근본적인 해답은 전기요금 정상화뿐이다”라며 여론 악화를 우려해 전기요금 인상을 보류한 정부와 여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들 보수신문은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주장하지만, 국가 재정을 통한 취약 계층 지원에는 인색하다. ‘나라 곳간이 비었다’라며 서민들과 자영업자·소상공인, 농민 등 ‘서민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공격하고 있다. 세계일보는 “올해 들어 세수 펑크로 나라 곳간이 바닥을 드러낸 상태에서 포퓰리즘 정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라면서 “결국 매년 수십 종의 세금폭탄이 돼 국민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데이터 무제한을 포함한 청년층의 교통비, 주거비 대책’을 “표만 된다면 나라가 거덜 나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인가”라며 ‘포퓰리즘의 폭주를 여기서 멈춰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하지만 세수 결손의 책임은 근거 없는 낙수효과를 근거로 수십조 원에 달하는 ‘부자 감세’를 주장한 보수신문과 무관치 않다. 대규모 감세 정책과 경기 둔화에 따라 올해 2월까지 국세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조 7,000억 원 줄었다. 올 한해 경기 침체로 기업의 영업이익은 큰 폭의 감소가 예상된다. 일부에서는 올해 세수 결손이 80조 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세수 부족으로 당장 쓸 돈이 없자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끌어다 쓴 차입금도 덩달아 증가했다. 올해 정부는 한국은행에서 48조 1,000억 원의 일시 차입금을 조달했는데, 이는 지난 한 해 동안의 총차입금보다 14조 원가량 큰 규모다.

지난 5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동절기 난방비 급등 사태 진단과 대응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가구당 주택용 도시가스 연평균 지출액은 지난해보다 22.9%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올해 가구당 월별 도시가스 사용량은 지난해와 같고 추가 요금 인상은 없다고 가정해 산출한 것이다. 올해 가구당 전기 소비 연평균 지출액도 지난해에 비해 17.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전기요금의 경우 올 1월 이미 kWh 당 13.1원 올랐는데 올해 추가로 가스・전기요금이 인상되면 가구당 부담은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미 1월 ‘난방비 폭탄’을 경험한 취약 계층에게 전기요금 인상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는 “재정적자가 쌓여 경제위기가 오면 온 국민이 고통에 빠진다”라고 하지만 이는 재정적자의 원인은 눈감고, 모든 책임을 서민들에게 전가하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동아일보는 3일 사설에서 “4%대 후반의 고물가, 공공요금 폭등으로 인한 가계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고통을 생각하면 정부 여당이 요금 인상을 놓고 고심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인정했다. 한국일보도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는 더 이상 방치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다”라며 32조 원이 넘는 한전 적자를 2026년까지 해소하려면 올해 요금을 킬로와트시(kWh)당 51.6원 인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취약 계층 고통을 경감할 대책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세수 결손이 현실화한 마당에 건전재정을 유지하면서 취약 계층의 고통을 덜어 줄 대책이란 불가능하다. 이미 1월 ‘난방비 폭탄’을 겪으면서 내놓은 정부 대책이란 것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확인하지 않았나.

한겨레도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3일 “원가에 한참 밑도는 요금과 그에 따른 에너지 공기업 부실화, 에너지 다소비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더 이상 정치적 이유로 해야 할 결정을 미뤄선 안 된다”라며 ‘요금 현실화’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한겨레는 다음날에도 “가격・요금 인상이 불가피함을 정직하게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다만, 10일 사설에서 올해 총국세 수입 감소의 원인을 “경기 후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부자 감세를 단행한 탓이 크다”라고 평가하면서 “부자 감세에 매달리고, 복지 지출을 삭감하는 재정 정책 기조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부동산 부자들과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세금을 깎아주고서, 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서민이 떠안아야 하는가? 세계일보는 “공기업 적자는 어차피 혈세로 메워야 한다”라며 ‘엎치나 메치나 국민 호주머니를 터는 건 마찬가지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부자 주머니 채우려고 국민 호주머니 터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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