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저녁 경남 진주 찾아 관객과의 대화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이 경남 진주를 찾아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미디어센터내일, 김민재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이 경남 진주를 찾아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미디어센터내일, 김민재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콜센터에 현장실습생으로 취직했다가, 고객들의 폭언과 회사의 실적요구 속에 고립된 채 죽음을 택한 소희, 소희 다음에는 또 다른 소희가 오게 될까. 아니면 조금 희망적인 누군가 오게 될까? 희망적인 ‘다음’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2017년 전북 전주에서 일어난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다음 소희>가 13일 저녁 7시 경남 진주에서 상영됐다. 영화 상영 후에는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과 관객들의 대화도 이어졌다. 상영회는 지역시민사회단체와 단디뉴스가 마련했다.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은 이날 “영화는 소희 다음에 올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것”이라며 “한편으로는 소희 다음에 드러나는 영화 속 인물 유진(배두나 역)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은 고립된 상태에서는 죽기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다”며 “소희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유진 같은 이들이 많아지면 사회는 나아질 것”이라며 이 같은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다음 소희>는 춤을 좋아하는 소희(김시은 역)가 현장실습생으로 콜센터에 취직한 뒤, 쓸쓸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고객들로부터 폭언과 욕설에 시달리고, 회사로부터는 실적 압박을 받는 소희. 하지만 회사는 물론 학교도, 가족도 그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소희의 죽음 뒤 형사 유진이(배두나 역) 사건을 조사하면서, 영화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결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교육도 노동도 인간을 수치화하기 바쁘다. 누구 하나 소희의 쓸쓸한 죽음에 책임지지 않으며, 되레 소희의 죽음을 소희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영화는 이러한 장면을 통해 소희 다음에 올 또 다른 소희를 상상하게 한다.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이 경남 진주를 찾아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미디어센터내일, 김민재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이 경남 진주를 찾아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미디어센터내일, 김민재

영화에서 소희의 쓸쓸한 죽음은 ‘처음’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콜센터에 일하던 팀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다음으로 소희가 같은 선택을 한다. 정 감독은 그 다음에 올 누군가를 상상하며 ‘다음 소희’라는 제목을 지었다고 했다.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담으려 노력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소희가 받은 3개월간의 급여, 콜센터 전체 직원 수가 670명인데, 한 해 동안 629명이 퇴사하고 617명이 입사했다는 발언 등은 모두 실제 데이터를 차용한 것이다.

정 감독은 “일체의 과장 없이 현실적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며 “심지어 소희라는 인물에게도 심리적 거리감을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허구적인 이야기라지만, 영화 속에 사실을 넣은 이상, 비등한 현실성을 보여주려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형사 유진이 교육청을 찾아가 소희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의 책임을 묻자, 장학사가 ‘적당히 하자’며 ‘(책임을 물으려) 다음은 누구를 또 찾아가실 건가요?’라고 답하는 장면처럼, 책임자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도 이해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다만 책임이 클수록 구조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감독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 춤추는 장면을 담은 이유도 설명했다.

영화는 소희가 불완전한 춤을 추는 모습으로 시작해, 완전한 춤을 추는 모습으로 끝난다.

정 감독은 “춤추는 모습은 살아 있는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고통스럽고, 힘든 영화의 끝에 완성된 춤을 추고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줘, 끝내 죽을 수밖에 없던 아이가 살았던 구체적 순간, 진짜 살아 있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주인공의 이름인 소희는 권여선 작가의 ‘손톱’이라는 소설에서 가져왔다고 부연했다.

정 감독은 이날 관객들의 물음에 답하고 “영화 개봉 후 10만 여명이 극장을 찾아주셨다. 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왠지 다 만나 뵌 것 같다. 어떠한 마음으로 이분들이 영화를 보러 와 주셨는지 알 것 같다. 이분들이 유진과 같은 분들이 아닐지. 고마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이 경남 진주를 찾아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미디어센터내일, 김민재
'다음 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이 경남 진주를 찾아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미디어센터내일, 김민재

<다음 소희>는 지난 2월 8일 개봉한 이래, 사회 각계각층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 개봉 후 국회 상임위에서 현장실습생을 보호하기 위한 관련 법안이 통과됐으며,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현장실습생을 둔 여론이 환기되고 있다.

영화는 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 26회 판타지아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으며, 판타지 영화제에서는 감독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다음 소희>는 14일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 중 처음으로 관객 수 10만 명을 돌파했다. /단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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