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도 메마르던 날이, 지난주부터 내린 비로 온 대지가 촉촉해져 이제 좀 걱정을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고 말 것을,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온통 시름투성이였습니다. 온 산과 들이 체에 친 밀가루인 양 폴폴 날려서 뭐 하나라도 싹이 트고 자랄 수가 없었으니 애가 탔던 것입니다. 게다가 전에 없이 오래간 산불도 걱정을 보탰습니다. 길어도 사흘이면 끌 수 있었던 웬만한 대형 산불과 다르게 일주일이 더 걸렸으니, 장기산불도 이제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지 싶었던 것입니다.

산다는 일이 온통 걱정하는 일이라고, 불완전한 세상에 불완전한 생명체로서는 당연하지 싶다만, 새삼스레 없는 걱정이 자라나고 있으니 벌써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신임 대통령 당선인 측의 주장 말입니다. 이건 뭔가 싶어서 당선인 측의 주장을 제대로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또 뒤져도, 따박따박 제대로 정리해놓은 글은 없고, 다만 여성가족부가 남녀를 가르고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새 정부는 무엇을 가르는 것이 매우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기는 하나 봅니다. 그렇다면 뭐든 통합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의 가닥을 잡는 듯하니 기대해도 될까요?

암만요,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지요. 노동자와 기업가 중에서 친기업 노동정책만을 펼쳐서는 안 되고, 도시와 농촌의 공생도 초려 해야겠지요. 통합의 길로 나아가자면 무엇보다, 기울어진 무게중심의 균형을 잡는 일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봐도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는데 그 기울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통합이 어쩌고 해서는 씨알도 안 먹힐 말이지요.

2021년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젠더(성)격차지수가 전체 156개 나라 중에서 우리나라는 102위라지요? 그 구성 중에서 경제적 분야, 즉 남녀 임금 차이나 경제활동 참여기회는 123위쯤 된다 하니 여성들이 느끼는 차별감은 더 클 것입니다. 교육이나 건강권 등에서의 차이보다 경제적 차이는 훨씬 실질적이니까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맞물리는 것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태도이지요. 사람들이 여럿이 타고 있는 버스 안에서도 버젓이 성폭행이 일어나고, 정치지도자가 ‘성폭행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는 나라가 인도입니다. 2008년 해외연수로 인도에 갔을 때, 종교의 이름으로 여성의 권리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분노를 삼키지 못하던 여성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또 남아메리카 여성운동의 주요 구호는 ‘여성에게 폭력을 멈춰라!’ 입니다. 여기서 폭력은 주로 신체폭력을 말합니다. 남미의 저명한 여성활동가가 남편에게 매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국제연대 활동가가 전해주어서, 구호와 현실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남의 나라 얘기만도 아닙니다. 얼마 전의 우리나라가 그랬습니다. 부부싸움의 양상이 참 험악했지요? 매맞지 않은 여성이 3%뿐이라는 비공인 통계를 들기도 했으니까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어쨌건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은 사실입니다. 새삼 누구를 탓하는 말이 아닙니다. 시대가 그랬고, 문화가 그랬습니다. 그랬던 것을 서서히 바꿔온 것이 성평등 정책이고 그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고 평가하여 다시 새 정책을 수립하는 행정기구가 여성가족부입니다. 2020년 현재 성평등 정책기구가 설립되어있는 국가는 194개국으로, 이미 대세라는 말이지요. 물론 형태야 다양하겠지만요. 가부장제가 심한 동아시아에서 작은 위원회 정도가 아닌, 정부 부처로 있는 것이 또한 성숙한 우리 사회의 자랑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은 여성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어김없이 가해지던 차별양상이지요. 이제 나날이 변화·발전하려는 차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운운하다니, 날씨 걱정에 나라 걱정까지 시름이 깊은 봄입니다.

 

* 이 기사는 [한국농정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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