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국수와 밀국수 그리고 '진주냉면'

최근 후배가 페이스북에서 '진주냉면' 이야기를 꺼냈다. 관심 있는 주제라 지나간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와 음식 관련 책, 면과 냉면에 관한 글들을 찾아봤다. 그러던 중 진주에 '논개시장'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에 '누들로드'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주니까 가능한 일이다. 물론 가보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국수나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면의 사전적 의미는 밀가루나 메밀가루 등을 반죽하여 얇게 밀어서 가늘게 썰거나 국수틀로 가늘게 뺀 것 또는 이것으로 만든 음식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밀가루가 흔했기 때문에 ''하면 당연히 밀가루 국수를 의미한다. 고기() 하면 당연히 돼지고기를 의미하는 것과 같다. 탕수육은 돼지고기 요리이다. 그러나 면이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그 의미가 약간 바뀌게 된다. 옛날 우리나라에는 밀가루가 귀했기 때문에 대부분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그래서 그냥 면이라 하면 메밀국수를 뜻하게 되었고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오히려 '밀면'이라 하게 된다. '부산밀면'이 그런 경우이다. 우리나라 식 냉면은 메밀국수다. 물론 옛날이야기이다. 미국 잉여농산물인 밀가루가 무상으로 들어오기 전인 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밀가루는 귀했다. 밀가루가 흔해진 요즘은 그냥 면이라 하면 다시 밀가루 국수를 의미하고, 메밀로 만들면 메밀국수 또는 막국수라고 한다. 결국 넓은 의미로 면은 밀국수 쌀국수 메밀국수 등 모든 국수를 포괄하게 됐다. 한자는 면이고 우리말은 국수이며 서양에서는 누들이라 한다.

황규민 약사
황규민 약사

인류가 정착 농업으로 생존방식을 바꾸었을 때 선택한 대표 주식이 쌀과 밀이다. 벼의 껍질을 벗긴 쌀은 물을 붓고 열을 가해 고분자 화합물인 녹말(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을 물리적으로 재배열하여 소화되기 쉬운 형태인 밥으로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밀알은 특성상 이것이 불가능하여 가루로 만들어 요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이나 지역 사람이 밀을 가루로 만들어 요리하는 빵과 면 요리를 먹게 된 것은 당연하다. 밀은 밀단백인 글루텐이 포함되어 있어서 발효 과정에 부풀게 되어 부드러운 빵을 만들 수 있고, 가늘고 길게 뽑아 면으로 만들 수도 있다.

쌀은 글루텐이 없어 가늘고 긴 면을 뽑을 수 없기 때문에 쌀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에서는 면요리가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면요리 문화의 영향을 받아 쌀과 메밀 등을 나름의 특별한 방식으로 요리하여 쌀국수나 메밀국수를 만들어 먹게 된다. 베트남의 쌀국수, 우리나라 평양냉면이나 메밀국수, 일본의 소바가 그런 것이다. 쌀은 충분하지 않고 밀은 귀한 시절, 사람들은 메밀이나 감자로 국수를 만들어 먹으면서 부족한 칼로리와 영양분을 보충했다. 그래서 쌀농사가 상대적으로 잘 되었던 남부지역이나 곡창지대보다는 척박하고 산이 많아 쌀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에서 메밀이나 감자 등을 이용한 국수문화는 발달했다. 평양냉면, 함흥냉면, 메밀국수, 소바 등이 그것이다.

주식은 쌀이었다. 한반도 남쪽은 기후와 토양이 밀농사에 적합하지 않았고, 밀농사가 가능해도 쌀농사에 방해되면 밀농사를 금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쌀이 부족한 시기나 부족한 지방에서는 메밀과 감자 등으로 생존하며 견뎌야만 했다. 그러므로 쌀농사가 힘든 북쪽이나 산간 지역에서는 당연히 메밀이나 감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을 것이다. 메밀과 감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북쪽 지방 평양, 함흥 등에서 국수 문화가 발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평양이나 함흥 같은 북쪽 지방이나 강원도 같은 산간 지역에서는 메밀과 감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으므로 메밀 감자를 활용한 음식문화가 일상적이고 대중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쪽 지방에서는 쌀농사가 주된 것이었다. 쌀농사에 부담을 주지 않는 한에서, 논이 아닌 밭, 산비탈에서 기른 메밀과 감자는 농사에서 부차적인 것이었다. 고로 면요리는 주식이 아닌 별식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음식문화의 중심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평양냉면 남방한계선이란 말이 있다. 논이 많고 쌀농사가 잘되는 남쪽이나 평야 지대는 국수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론 음식이 즐거움이기보다는 생존이었던 옛날이야기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평양냉면', '함흥냉면'과 비교했을 때 '진주냉면'의 유래와 발전 그리고 갑작스런 소멸은 독특하고 특이한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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