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민단체 '진주같이'에서 장애체험을 하다

이 체험은 9월 19일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에서 한 것이다. 지난 회에 이야기한 것처럼 휠체어를 탄 우리 일행은 아직 버스를 타지도 못했다. 과연 우리는 무사히 '홍준표 주민소환 행사장'까지 갈 수 있을까.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120번 저상버스가 도착했다. 다시 환호성. 그리고 기사님께 탈 수 있게 리프트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기사님들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보면 당연 리프트를 내려야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우리들은 기사님께 부탁 아닌 부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참 이거야 비장애인들은 “내가 타도 되나요?”라고 아무도 묻지 않는데...

▲ 버스 정거장에서 휠체어를 타고 오를 수 있는 저상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고마우신 기사님께서 버튼 조작을 통해 리프트가 내려지는데, 신기하기도 했지만 시간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심적으로나 매우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 정말 혼자서는 탑승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승객분 중에서 아주머니와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의 도움으로 겨우 모두가 탈 수 있었다. 그것은 거의 환희에 가까웠고 눈물겨운 분투기에 가까웠다. 아직 주위에 가슴 따뜻한 분들이 많다는 걸 또 다시 느꼈으며,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직 희망이 있음을 뜨겁게 느꼈다.

다행하게도 토요일 점심시간이라 우리 외에 탑승하는 승객 분들은 거의 없었기에 망정이지 네 대의 휠체어로 가득해진 버스 안은 우리 체험단들이 비장애인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가득 차버렸다. 좀 전에 도와준 아주머니께 불편하시진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듣고 정말 고마움을 느꼈다.

▲ 몇 개의 휠체어가 들어서니 금방 시내버스 안은 꽉 차는 듯했다.

 여기서 버스 기사님께 몇 가지 질문들을 하고 또 다시 알게 된 사실들을 몇 적어보면 이렇다.

첫째, 120번 저상버스는 지금 우리들이 타고 있는 한 대가 하루 종일 운행한다는 사실. 한 대 밖에 안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둘째, 휠체어를 타고 탑승하는 장애인들도 거의 없다는 것. 그것은 탑승과정과 보도블럭의 노면상태, 그리고 비장애인의 시선들이 아마 그럴 수밖에 없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리프트의 설치 횟수가 적다보니 인도에 얼마만큼 버스를 인접되게 붙어야하는지 기사분이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참 이런 아이러니도 있다니... 그나마 120번 기사분은 친철은 하시어서 다행이라 생각 들었다. 배차시간이 다소 지났는데도 기다려주셨고, 버스 내에서도 안전에 염려를 하시며 안내말씀을 해 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저상버스에서 휠체어로 내릴 때도 보도블럭 턱과 버스 사이의 높이 차이때문에 힘들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타기가 얼마나 힘듦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타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내리기라는 걸 또 다시 깨달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다시 리프트가 내려지고 먼저 내리는 한 조가 장애인이 앞을 본 상태에서 내리려고 하다 보니 턱이 높아서 자칫 앞으로 꼬꾸라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펼쳐졌다. 후우. 그래서 나는 휠체어를 돌려 뒤로 후진하듯이 내려서 그런 위험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의자와 버스정류장 기둥 사이가 좁아서 휠체어가 이동하기에 너무 불편했었다. 목까지 욕이 올라옴을 참고 참아냈다. 얼마나 많은 불편을 겪으면서 장애인들은 이동할 지를 생각하니 되려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택시에서 오르내리기. 휠체어는 어디에 실을까?

 정류장에서 진주교육지원청까지는 비장애인 기준으로 보면 한 3분정도의 보행거리일 것이나 장애인에게는 또 다른 장애들의 연속이었다. 인도에 세워진 개념없는(?) 승용차와 건물을 세로 짓는다고 차지한 장비차량은 거의 무기 수준으로 위험을 느끼게 하였다. 인도와 횡단보도와의 경사로는 다시 롤러코스터를 타야하는 사람의 심정과도 같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무튼 주민소환 후원행사장에 도착해서 많은 지인들이 어디를 다쳤냐는 왜 휠체어를 타고 있느냐 등의 질문을 다 받아낼 정도로 여유가 없었음을 우리들만은 서로 느끼고 있었다.

▲ 드디어 홍준표 주민소환 후원행사장에 도착해 비빔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장애체험을 한 마디로 느낀 점을 마무리해서 정리하기엔 할 말이 많다. 단지, 내가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말 미안할 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시설이나 제도적인 부분에서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느끼고 다시 깨닫고 그리고 뉘우치고 돌이켜 볼 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알았다. 그리고 부끄럽고 다시 부끄러웠다. 왜? 그런지 묻고 싶다면 최소 우리 사회라는 울타리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체험해봤음 추천하고 싶다. 에나.

박정호(46. 진주시 하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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