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질로 가가 안 온다 아이요>(기록자 박영주)

"어느 날인가, 내 저녁때 일찍이 와서 소 찾으러 가꾸마, 이러대. 그런데 소 찾으러 오지도 않고…. 그 질로 가가 안 온다 아이요."

이귀순(88) 할머니의 남편 황치영 씨는 경찰지서에서 군에도 안 가고 좋다고 보도연맹에 가입하라고 해서 가입했다가 65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남편이 집을 나설 때 20대 꽃다운 나이였던 이 할머니는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이 할머니만 그런 게 아니다. 지서에서 불러서 집에서 쉬다가, 극장에 회의하러 갔다가, 금방 다녀오겠다고, 별일 있겠느냐고 집을 나선 이들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의 일이다. 남북으로 갈라져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이 아니다.

1949년 이승만 정부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반공단체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다. 전국에서 지역별 할당까지 정해지면서 사회주의 운동과 무관한 이들도 강제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전쟁 전후 정부는 이들을 연행해 가거나 불러 모아서 재판도 없이 산·계곡·바다에서 무차별 학살을 했다. 보도연맹원이 아닌 이들도 50년 전후로 이 같은 일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가족이 65년 전 억울하게 희생 당한 당시의 사실을 잊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그질로 가가 안 온다 아이요>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박영주 경남대 박물관 비상임연구원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 회원 13명을 직접 만나 나눈 대화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 <그질로 가가 안 온다 아이요>(기록자 박영주) 276쪽, 도서출판 해딴에, 1만 7000원.

노치수 창원유족회 회장은 "끔찍한 전쟁 중에 이승만 독재정권은 전쟁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전국 방방곡곡 많은 민간인을 내 편이 아닐 거라는 의심만으로 끌고 가 쥐도 새도 모르게 학살했다"며 "2300여 명의 하늘보다 더 고귀한 생명이 학살 희생당했던 창원지역에서도 2009년 유족회가 조직된 이후 여러 가지 활동을 해오다 너무도 억울한 유족들의 사연과 피맺힌 절규들을 지역사회에 남겨두고자 여러 증언을 모아 책으로 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 유족은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들을 기다리며 애를 끓였다.

희생자 감영생의 손녀인 감효전(52) 씨는 "증조할머니가 삼십몇 년 동안 밥을 해놓고 기다렸잖아요. 증조할머니가 구십 다섯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정신이 좋으셨어요. 만날 하시는 말이, 우리 똑똑한 자식이 절대 죽었을 리 없다, 살아있다, 올 때까지 살아있어야 한다며 대문을 잠그지 않고 살았습니다"라며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지만 금방 다녀온다던 가족들은 연행 뒤에 학살 당하거나 마산·부산형무소 등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바다·산·계곡 등에서 학살 당했다.

가까스로 가족이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사실을 알고서 찾아간 이들이 겪은 고통도 적혔다. 돈을 주면 교도소에서 빼주겠다고 해서 논·밭·소를 팔아 청년단 등에 돈을 건넸지만, 면회조차 하지 못했다. 끔찍한 학살 뒤에 뻔뻔한 금전 요구까지 있었다는 증언이다.

희생자 문일상의 딸 문강자(74) 씨의 증언이 있다. "면회가 뭡니까. 이제 알고 보니까, 오늘 간 사람들이 내일 김해 생림에 나박고개로 끌려가서 다 처형을 당했는데, 사람이 안 살아 있는데, 무슨 면회입니까? 거짓말인거라요. 그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희생됐는지 알 수 없는 이가 대다수다. 이영자(74) 씨는 "우리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됐는지 그게 제일 궁금합니다. 꿈에라도 한번 우리 아부지 봤으면 좋겠다 좋겠다 그래쿠도 꿈에도 안 나타나예."

가족을 잃고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이도 많았고, 이후 연좌제 고통 속에서 숨죽여 지낸 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끔찍한 학살을 기억하는 이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억울한 죽음의 기억은 옅어지고 있다.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은 특별법 제정, 위령비 제작 등을 통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원하고 있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도 있다. 억울한 죽음으로 풍비박산 난 가정,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연좌제라는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바람이다. 이들에게 아직도 65년 전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이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슴 아픈 역사다.   276쪽, 도서출판 해딴에,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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