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준 시인 <중독자>를 시작...1개월에 1권 씩 차례로 출간할 예정

신생 출판사 <펄북스>가 드디어 첫책을 냈다. 등단 30주년을 맞은 박남준(58)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중독자>가 그것이다. <펄북스>는 경남 진주에서 30년 동안 진주지역 ‘토박이 책방’으로 자리 잡고 있는 <진주문고>에서 올해 초 만든 출판브랜드이다.

진주문고 ‘책방 살림’도 30년, 박 시인이 ‘시 살림’을 차린 지도 30년인가 보다. 세상에 나와 한뜻으로 걸어온 걸로 치면 이래저래 둘은 갑장이라 해도 좋겠다.

<펄북스>의 첫출발은 아주 좋다. 박 시인의 시집 <중독자>가 출간 이전에 2015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지원도서로 선정된 것. <펄북스>의 기획과 준비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펄북스> 첫 책, 7월 말 출간한 시집 <중독자>. 표지는 박진범의 '공중정원'

= '30년 시 살림’ 그 깊이와 여정을 담아내다

박남준(58) 시인. 주변 지인들은 박 시인 더러 ‘시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인’이라 말한다. 박 시인에게 참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하지만 ‘시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인’은 스스로를 ‘중독자’라 말한다. 사랑이기도 욕망이기도 한 ‘시 살림’은 그에게 있어 ‘시마(詩魔)’에 휩싸이는 고통이기도 하고 격정이기도 하다. 참 대책 없는 사랑이고 참 헤어날 길 없는 중독이다. 아니 헤어나기를 거부하며 오히려 즐기는 중독이다.

박 시인은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등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을 펴낸 바 있다. 시집으로는 일곱 번째 출간이라고 한다.

박 시인의 시 세계는 섬세한 서정이 토대이다. 이번 시집 <중독자>에도 관찰과 사유가 깃든 시들 사이에서 그의 서정은 투명한 유리 알갱이처럼 반짝인다. 그 서정은 때로는 햇빛 사이 무지개빛으로 잠시 떠오르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섬세한 서정은 변함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 여유롭고 깊어졌다. 그만큼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듯하다. 아래 박 시인의 '중독자' 중 끝부분 싯구를 대하면 더욱 그런 듯하다.

… 찻잎의 그늘이 깊어진다

어쩌면 고통,

어쩌면 욕망의 가장 먼 길 저 산 너머 끝자리

한 점 티끌이기도 거대한 중심이기도

지독하다 끔찍하다 너에게로 물든 중독

발효차가 익었다

우주의 고요 한 점 아침 찻잔에 띄운다.

-박남준 시인의 「중독자」 중에서

▲ <중독자> 책날개에 있는 박남준 시인의 사진과 프로필.

박 시인은 달리 ‘지리산 시인’으로도 불린다. 전남 법성포가 고향인 그가 어떻게 ‘지리산 시인’이 됐을까. 전북 전주 모악산방을 거두고 경남 하동군 악양면으로 들어가 지리산에 기대어 산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 동안 박 시인은 때로는 무분별한 지리산 개발을 막기 위해 목소리 높이고 지리산의 생태 환경을 지키기 위해 길을 나서고 시를 읊어 바쳤다.

한국 문단의 거장인 신경림 시인은 박 시인의 이번 시집 <중독자>에 실린 시들이 봄날 산길을 가다가 만나는 향기 진한 꽃처럼 아름답고, 숲 속 깊은 데서 마주치는 오래된 신목처럼 섬뜩하다고 말한다. 박 시인이 자연 속에서 스스로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조차 한다고 말한다.

시집 <중독자>는 28일부터 경남 진주시 진주문고에서 구매 가능. 8월 1일부터는 전국 서점과 알라딘, 인터넷교보문고 등의 인터넷서점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 <펄북스>는 어떤 출판사인가

<펄북스>? 진주같은 책만 내겠다는 것일까. 여러 의미가 있겠다. 출판사 소재지가 진주시인 것도 그렇고, 모체가 <진주문고>인 이유도 있겠다.

여태훈(54) 대표는 이번 첫책 <중독자>를 펴내면서 “출판이 상업화 대형화 되면서 온갖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세상이 되었지만 읽을 만한 책들은 급속히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펄북스>는 거대자본이 외면하는 작은 자리를 주목하고 결기 있는 글들의 가치를 지키고 일구는 출판사가 되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 여 대표는 <펄북스>의 출판 목표를 강조하기도 했다. 여 대표에 따르면 <펄북스>는 도서관 운동, 출판문화 운동, 책과 관련한 축제, 북카페 등 책을 매개로 한 활동을 담은 책, 대안적인 삶의 개척자 등 창조적인 대안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과 단체를 소개하는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절판된 책에서 양서를 엄선하여 재간행하고,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세계문학 중에서 숨은 걸작들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간행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또 <펄북스>는 지역의 숨은 필자를 발굴해 지원하고, 예술 전반의 인문서, 교양서, 작품집 등을 기획하고 번역하여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들과 소통하며 저변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 <펄북스>의 6가지 출판 목표

여 대표에 따르면 <펄북스>의 도서 출간 속도도 남다르다. 8월 박남준 시인의 <중독자> 이후, 한 달에 1권 씩 출간 계획을 잡고 있다. 9월에는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10월에는 중국 인민일보 기자를 지낸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30년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을 담은 사진 에세이집 <지아오보 사진 에세이집>, 11월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지성 한소공의 산문집 <산남수북> 등을 차례로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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