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설쳤다. 어제 저녁(18일)은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진주에서 환경운동을 함께 해온 사람들이 여기 지리산까지 온다는 거였다. 지난번 출판기념회로는 모자라다면서 축하하는 자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내는 하루 종일 음식을 장만하기에 바빴고, 나는 밭일에 매달렸다. 장맛비가 내려 이른 아침부터 우의를 챙겨 입고 서리태를 심었다. 오전에는 양파 캐낸 밭에 들깨모종을 옮겨 심었다. 정오를 한참 지나서야 밭일은 끝났고, 오후엔 음식을 만드는 아내를 거들었다.

음식을 만드는 내내 아내는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대상포진으로 한동안 병원출입이 잦았던 터라 나는 마음을 졸였다. 저러다 또 앓아눕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으로 아내의 표정을 살피느라 연신 곁눈질이었다.

▲ 김석봉 농부

문어샐러드를 마지막으로 상차림이 다 끝났을 때 그들은 도착했다. 직장이 함안인 형택 씨는 함안 특산물이라며 속이 노란 수박을 두 통씩이나 가져왔고, 간디유정란 세현 씨는 함께 온 모두에게 줄 선물이라며 초란을 열 묶음이나 가져왔다. 거기에 더해 우리 먹을 달걀도 넉넉히 챙겨왔다.

소라와 전복이 듬뿍 들어간 해물죽순찜, 궁중음식 월과채, 훈제오리냉채와 와인으로 졸인 흑돼지수육, 보양식 오리탕까지 아내는 구할 수 있는 재료는 다 구해서 할 수 있는 음식은 다 하려는 듯 상을 걸게도 차렸다.

우리가 긴 세월을 돌아온 것처럼 술잔도 함께 돌았다. 내가 쓴 책 이야기 끝에 웃고, 옛날 환경운동을 하면서 겪었던 일을 추억하며 웃었다. 서하도 웃고 보름이도 웃었다.

이렇게 내 삶에 찾아온 아름다운 사람들과 마주 앉아 정성껏 담은 음식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으랴. 여기 이 산골에 사는 내 삶이 존중받는 시간이었다.

바깥에서 두렁이와 이랑이가 심하게 짖었다. 마을 위쪽 정토회 수련원 자원봉사자가 어린 새끼고라니를 품에 안고 우리 집을 찾아온 거였다. 배수로에 빠져 오가지 못하더라는 거였다.

“그냥 거기 있던 자리에 데려다 주지. 어미가 찾을 건데” “아니, 이렇게 비가 오는데 그래도 돼?” “그런다고 어쩔 거야. 야생에서 살아야지 키운다고 좋겠어?” 모두들 그 새끼고라니를 걱정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들 휘근이가 나가 새끼고라니를 받아 안았다. 한참 만에 돌아온 휘근이는 119에 새끼고라니를 건네주었다고 했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전해질 거라고 했다. 잘했다 싶다가도 걱정이 앞섰다. 이런저런 센터나 기관이 원체 믿음이 가지 않아서였다.

다들 잘 했다며 술자리를 이어갔지만 나는 그 새끼고라니가 자꾸만 마음에 밟혔다. 필경 잘 살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모두들 밤 열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가고 설거지를 마쳤다. “어라, 닭. 오늘 하루 종일 마당에 닭이 안 보이네” 마른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방으로 들어오는데 아내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 닭? 아니 그러고 보니 그렇네? 나도 통 못 봤는데.”

뒷마당 닭장을 피해 마당에서 살다시피 하는 닭이 한 마리 있었다. 꽃밭을 헤집고 다닐 때마다 잡아서 뒷마당으로 넣어주면 또 어디로 빠져나왔는지 금세 마당으로 탈출해버리는 닭이었다. 지지난해 알 수 없을 동물이 닭장을 습격해 몇 마리 물어 죽인 뒤로 닭장 주변에 그물망을 쳐두었는데 이 닭은 그물망도 넘어 탈출해버리곤 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닭을 잡아 뒷마당에 넣어주는 것을 포기했다. 어두워지면 뒷마당으로 다시 들어가 닭장에서 자고 뒷날 아침에 다시 앞마당으로 나오는 것이 그 닭의 일과였다. 우리는 그 닭을 영혼이 자유로운 닭이라고 불러주었다.

그 닭은 집 뒤 돌담너머 대밭언저리 댓가지 사이에 둥지를 틀어 알을 낳았다. 며칠 만에 알자리를 찾아가면 거기 달걀이 몇 개씩 쌓여 있곤 했다. “알자리에 있는 거 아냐? 며칠 전에 보니 어둑어둑할 때까지 거기 앉아있던데.”

아내가 후다닥 손전등을 찾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장맛비는 어제 밤부터 그침 없이 내렸었다. “죽었어.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죽어있네.” 황급히 돌아온 아내가 맥이 탁 풀린 모습으로 털퍼덕 주저앉았다.

이래저래 정든 닭이었다. 고양이들 사료 주면 쪼르르 달려와 고양이들 틈에 섞여 사료를 먹었다. 뒷마당 닭장 그물망 안으로 넣어주려고 닭을 잡으면 볼록한 모이주머니가 야구공만큼 부풀어 있었다. 그 꼴이 우스워 모이주머니를 쓰다듬곤 했었다. 그 닭이 죽었다. 안타깝고 속이 상했다.

어제는 양파와 마늘을 캐느라 날이 어두워서야 일을 마쳤고, 일을 마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었다. 우리는 닭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닭은 알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밤새 비를 맞았고, 그렇게 앉은 자세로 죽었다.

“내일 아침에 잘 묻어줄게.” 속상해하는 아내를 달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아팠다.

잔치 술을 꽤 마셨지만 닭의 죽음으로 잠이 쉬 오지 않았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을 때였다. 고양이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바로 현관 문 앞에서 들렸다. 또 그 노랑고양이가 우리집 고양이를 공격하는 거였다. 꽃분이와 고미가 멍멍거리며 현관문으로 내달렸고 나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립문 근처에서 그 노랑고양이가 후다닥 울타리를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번엔 어느 녀석이 당했을까. 비명소리를 생각하면 크게 물렸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노랑고양이의 습격은 매일 밤 이어져왔다.

노랑고양이는 대밭 아래 보름이 카페 주변을 맴도는 떠돌이였다. 덩치가 큰 수컷이었다. 걸핏하면 우리 집까지 올라와 우리와 가깝게 지내는 고양이들을 물었다. 밤이면 어김없이 고양이의 비명이 나고, 잠결에서도 그 소리를 들은 나는 맨발로 뛰어나가 노랑고양이를 내쫓았다.

며칠 전이었다. 한낮에 그 노랑고양이가 사립문 밖 길가에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조그만 돌멩이를 찾아들고 살금살금 고양이께로 다가갔지만 금세 알아차린 고양이는 집 뒤 돌담을 따라 줄행랑을 놓았다. 멀리 대밭으로 사라지는 고양이를 보며 장난삼아 아리랑 볼 던지듯 돌멩이를 던졌는데 이 돌멩이가 높다랗게 포물선을 그리더니 호두나무를 넘어 우리 집 지붕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두꺼운 슬레이트 지붕에 달걀만한 구멍이 뻥 뚫려버렸고, 안방에서 노닥거리던 아내와 서하가 놀라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왔다. 뻥 뚫린 지붕을 바라보는데 참으로 기가 찼다. 무슨 이런 일이 일어나나싶었다.

“지금 뭐하는 거요.”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 그 노랑이 녀석이 또 왔잖아. 그래서.” “고양이가 다 고양이지 왜 차별을 하고 그래요.” 난감해하는 내게 아내가 쏘아부쳤다.

다음날 지붕마감재로 쓰이는 고무조각과 실리콘을 들고 지붕에 올라 구멍을 때우는데 그 노랑고양이가 대숲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살기로 했다. 그래도 힘이 약한 고양이의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게 되고 맨발로 마당으로 나가게 되고 노랑고양이를 내쫓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랑고양이를 내쫓고 들어와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죽은 닭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믿을 수 없을 곳으로 떠난 그 새끼고라니가 어른거렸다. 노랑고양이에게 물렸을 힘없는 고양이의 안부도 궁금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참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에 한숨만 푹푹 내쉬는 밤이었다.

닭을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다가도 노랑고양이 생각에 분한 마음 어찌할 바 모르는 밤이 길고도 길었다.

추신) 조금 전 닭을 거두려고 대숲 언저리 알자리로 갔더니 아직 죽지 않았다. 헤어드라이기로 깃털을 말리고 몸을 덥혀주었더니 꾸룩거리며 기운을 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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