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정당, 정치 말고 정책

몇 년 전, 국회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작은 진보정당의 정책연구위원으로 농정과 사회적경제 정책을 주로 연구하고 개발했다. 좀 공부하고 참고할만한 정책이 없나 수시로 거대 양당의 정책연구실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쓸 만한 정책을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런 속사정이 너무도 의아하고 궁금해서 내부의 지인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국회의원 수가 100명이 넘는 거대 정당으로서, 양당 독과점 체제의 한 축을 도맡은 원내 교섭단체로서, 충분한 정책연구위원과 정책개발비까지 국고에서 보조받는 데, 왜 쓸 만한 정책을 생산하지 못 하는 거죠?”

그는 잘 알 만한 사람이 물어본다는 듯, 자기도 못내 답답하다는 듯 한숨부터 내쉬었다.

“일단 국고에서 보조받는 정책개발비 예산이 정책개발에 직접 다 투여되지 않아요. 알게 모르게 당의 일반운영비나 기타 부대비용으로 넘어가는 돈도 적지 않죠. 정책연구 전문가보다는 고참 당직자 자리보전용으로 챙겨주기도 하고, 심지어 정책연구위원 자리를 향후 공직선거 출마에 대비한 경력관리용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정책은 없고 정치, 정치는 없고 선거

▲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정권과 국회 다수당도 바뀌었다, 하지만 정당의 실태와 행태는 크게 변함이 없는 듯하다.

최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여야가 합심해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정원을 늘리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억대 연봉을 받는 국회정책연구위원 10명이 늘어난다.

해당 정당에서는 “예산, 법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정책연구위원으로 채용해 각 정당의 정책 역량을 높이자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당에 오래 몸담은 사무처 당직자 자리를 챙겨주기 위한 개정안”이라는 뒷말이 여전히 나오는 현실이다.

지금 한국 정당에는 여야를 불문하고 정책이 없다. 정책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선거구호나 비방모략 , 마타도어만 난무한다. 집권정당이나 수권정당에 걸맞는 철학도, 정책도, 전략도, 전문가도, 지도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일단 정책과 전략을 연구하고 집권철학이나 수권정책을 생산할 연구소가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5년에 발표한 '정당 정책연구소의 현황과 개선 과제'에 따르면, 한국 정당의 정책연구소는 비전과 공약을 개발할 전문성과 인력이 부족하고, 단기적인 선거 전략을 마련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혹평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으로 조직의 자율성 부족, 재정적 독립성 부족, 단기 선거전략 매몰 등을 들고 있다.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Konrad Adenauer Stiftung),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riedrich Ebert Stiftung)을 본받으라고 훈수한다. 특정 정당과 정치적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비영리공익재단으로 시민교육기관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 재정, 활동에서 완전히 독립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 진보정책연구소(Progressive Policy Institute) 등도 참고할만한 정책비전 싱크탱크라고 덧붙인다. 특정 정당과 이념적 친화성에도 불구하고 재정이나 운영의 측면에서 정당과 완전히 분리된 독립 민간 싱크탱크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념•지역 정당에서 생활정책 정당으로

▲ 도쿄 외곽 가와고에시에 내걸린 일본공산당의

사회보험대책 정당정책설명회 정치광고

정당의 정책개발 모델은 역시 정치선진국 독일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 독일은 이미 1925년 사민당(SPD)의 외곽 씽크탱크 격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riedrich Ebert Stiftung)이 설립되었다. 정당이 운영하는 정책개발재단의 모범적인 사례로써, 한국의 정당 산하 정책연구소 같이 소속 정당의 정당활동 지원에만 복무하지 않는다. 정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정치재단이다. 그래서 정치와 이념과 선거판에 휘둘리지 않고, 사심 없이 유능한 전문연구원들이 좋은 정책을 개발하는 데 매진한다.

이른바 ‘지역 정치’, ‘패권 정치’, ‘이념 정치’등은 우리 정당 내부에 쌓인 해묵은 적폐이다. 이제 ‘정책 정치’, ‘공동체 정치’, ‘생활 정치’, ‘풀뿌리 정치’, ‘생태 정치’ 등으로 정치의 패러다임을 정책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치의 품질과 품격은 물론, 정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자면 ‘우리는 그때 참 열심히 운동하고 투쟁했지’, ‘우리는 그래도 저들보다는 정의롭고 진보적이지’라는 낯간지러운 자화자찬 무용담은 이제 그만 두자. 지겹고 식상하고 피로하다. 자칫 오만해보이거나 무능력해보일 우려가 있다.

이제 ‘일’을 잘 하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다’며 구체적이고 혁신적인 정책과 사업으로 서로 겨루자. 정책과 사업의 성과로 국민들에게 정당과 정치인의 자질과 실력을 오로지 평가받자. 선거에서 평가받지 말고 일상활동에서 평가받도록 부단하게 학습하고 단련하고 실천하자.

그렇게 ‘떳다방’ 같은 전근대적인 선거정치용 붕당의 껍데기를 탈각하자. ‘정책발전소’ 같은 사회혁신적인 생활정책용 사업정당으로 환골탈태하자. 오늘날, 정치의 현장은 안전한 정당의 당사나 안락한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이나, 피안의 청와대 비서실에 있지 않다.

정당의 진실은 정당 밖의 민생현장 최전선에서 온통 발휘되고 실증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철탑고공농성 투쟁현장에서,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으로 밀려나는 도시 자영업자들의 구멍가게에서. 도시 빈민들의 뒷골목 쪽방이나 고시원 지하방에서, 늙은 농부들만 생물학적으로 겨우 살아남은 농촌마을의 쭉정이 같은 빈 들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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