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밀레니엄을 얼마 남겨두지않은 1999년의 어느 날 ‘접속하라’ 라고 외치던 공중파 CF를 기억하는가?

당시에는 너무나도 생소하던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공중파를 통해 공식적으로 세상에 선을 보이는 날이기도 했다. CF의 주인공은 쌈장 이기석이었다.

블리자드가 주최한 몇 번의 세계대회에서 한번을 우승했을 뿐이었지만 광고는 배짱 넘치게도 ‘99 스타크래프트 부르드워 세계챔피언’ 이라고 카피를 박아주는 기염을 토했다.

쌈장의 혜성과 같은 등장으로 말미암아 온갖 유사 아이디들이 난무하였다. 간장, 된장, 고추장, 초고추장, 막장, 청국장 등등 온갖 장들의 창궐이었다. 그와 함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도 폭발적인 인기(전세계 판매량 중 절반이 한국에서 판매되었다. 당시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하던 본인도 스타크래프트로 전향을 하였다)를 얻고 그 인기에 힘입어 비공식 대회를 개최하고 이를 케이블에서 방송하였다. 이마저도 엄청난 호응을 얻자 게임만을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두개의 게임전문 방송채널을 출범시키게 되었다.

한편으로 게임의 인기는 PC방으로 번져 우후죽순처럼 PC방이 들어서게 되었고 그에 발맞추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모든 것이 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적어도 커다란 핵폭발을 일으킨 첫 단추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쌈장 이기석을 20세기말의 혁명가라고 생각한다.

담배연기 자욱한 어두침침한 PC방에 틀어박혀 오락만 하는 하찮은 덕후들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그들에게 희망과 빛을 주었으며, 당시에는 허무맹랑해 보였던 ‘게임으로 호구를 해결하겠다’ 는 그의 생각을 일정정도 이루어 냈었다. 누가 그런 전인미답의 꿈을 쉽게 꿀 수 있겠는가?

경기조작 파문으로 급격히 인기가 추락하고 결국은 스폰서를 구하지못해 중단되었던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최근 다시 시작됐다.

참으로 기쁘고 반가웠다. 옛추억을 더듬어 보다가 문득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혹시 PC방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을까? 아니면 PC방에 파묻혀 이게임 저게임을 전전하며 부활의 날개짓을 준비하고 있을까? 그도 아니면 자라나는 차세대 게이머를 발굴․육성하는 후학양성에 힘을 쏟고 있을까?

혹시나...... 순창고추장 쌈장개발부에서 더 맛난 쌈장을 연구,개발하는데 전력을 쏟고 있는건 아닐까?

2. 개천예술제를 떠올리면 나는 그 옛날 고딩시절의 흑백 사진같은 그 때가 그립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런 정비가 되지 않아 무질서하고, 사람들로 넘쳐나서 이동조차 쉽지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시절의 축제가 더 좋다고 느낀다. 지금의 잘 정비된 축제는 왠지 밋밋하다는 느낌마저 들어 조미료가 빠진 맹탕 국물을 먹는 느낌이다.

약간의 일탈을 꿈꾸며 참가한 축제장에서 아름답고, 경이롭고, 신비하며, 봐도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언니님들의 사진집을 구했으며.

친구와 함께한 날에는 거침없이 걸어가는 친구의 뒤를 따라 빙고게임장을 들어섰다. 꺼리낄 것 없이 게임을 시작한 놈은 게임 몇 번 만에 당당하게 빙고를 외치고 상금을 받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서는 달콤한 음료와 기름진 안주를 제공해 주었다.(기특한 놈!)

그의 화려한 성공을 보며 한껏 고무되어 6개의 숫자판 위에 동전을 던졌다. 지극히 단순한 게임. 6개의 숫자 중 하나를 선택하고 6각의 팽이가 엎어져 선택한 숫자가 나오면 먹고 아니면 잃는다. 일명 야바위라는 이 단순한 게임이 축제장에서 가장 나를 매료시켰던 것 같다. 아마도 더 이상 축제에 흥미를 느끼지않게 된 시점도 이 육각의 겜블러가 축제장에서 사라졌던 때와 일치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숫자판과 6각 팽이 하나로 호구를 해결하셨던 그 마력의 아저씨는 어디에서 무얼 하실까?

정선 카지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계실까? 아니면 라스베가스를 호화롭게 누비며 연승의 신화를 쌓아가는 유명 겜블러가 되어 있을까? 그도 아니면 유명 연예인들이 종종 그랬듯이 마카오에서 가산을 탕진하고 억류되어 있는건 아닐까?

이도저도 아니면 숫자판을 더 이상 펼칠 수 없는 한을 절절히 담아 팽이 깎기에 전념, 팽이 제작 장인이 되신건 아닐까?

▲ 포스터는 본문의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예전에 보았던 B급 영화가 생각이 나서 넣어 보았다. 믿을 수 없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유병언의 시체가 확실하다고 경찰에서 발표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하고 같을 지도 모르겠다.

3. 그의 신출귀몰함은 신창원을 연상시켰다.

그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듯한 소문들은 호부호형을 못한다는 하찮은 이유로 가출을 했다는 홍길동이라는 청년을 연상함에 충분했다.

연인원 150만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하고도 털끝하나 잡지 못했던 그가, 너무나 신이하게 우리에게 시체로 돌아왔다.

어느 종단의 교주답게 모든 죄와 책임은 홀로 다 안고 너무도 신이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왔다.

20여일이 채 안 된 시간에 반백골이 되는가 하면 온 몸이 썩어가는 와중에도 오른쪽 검지손가락만은 온전히 보전시키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않았으며, 온갖 유류품들 까지 친절하게 챙겨서 배치하는 안배를 행하였다.

이런 그의 눈물겨운 안배에 화답이라도 하듯 과학마저 그를 입증해 주었다.

참으로 교주다운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미 80%의 백골화가 진행된 상태로 발견된 그는 이미 금수산 뒷산에서 완전하게 백골이 되었거나 혹은 흑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명약관화 한데도.....

나는 어리석게도......

그의 근황이 궁금하다. 몹시.

※사족: 예전에 페이스북에 같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래서 이글은 두 번째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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