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우리 어떡할까요. 카페 문 여는 거요.” 아침밥상머리에서 보름이가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그러게,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니 문을 열어도 걱정이고 안 열 수도 없고.” 아내의 말 속에 섞인 걱정이 더한 듯했다.

며칠 전부터 보름이는 겨우내 쉬었던 카페 문을 열기 위해 이런저런 준비에 바빴었다. 야외테이블에 모양 좋은 타일을 붙이고, 조그만 식기세척기도 들여놓으며 주방 구조도 바꾸었다. 나도 덩달아 카페 일을 도왔었다. 산언저리에서 싸리나무 두어 짐 잘라 와 울타리를 손질해 주었다.

▲ 김석봉 농부

지난 가을 마을 뒷산에서 따온 오미자 효소도 걸러 담고, 가까운 딸기농장에서 직접 골라온 딸기로 딸기청도 담갔다. 가마솥에 대추탕을 끓였고, 모과효소는 항아리를 바꿔 담았다. ‘그나저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잘 지나갈 건지 모르겠네’ 가족들의 바쁜 손놀림을 지켜보면서 나는 내내 이런 걱정을 했었다.

엊그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귀에 익은 목소리로 봐서 두어 번 우리 집을 다녀간 듯했다. “우리 가족들 내일 모레 이박삼일 산촌민박에 가서 쉬고 싶은데 빈방 있나요?” “빈방은 있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워낙 세상이 위험하다고 해서요.”

“그래서 우리도 많이 망설이고 있어요. 가도 괜찮을까요?” “우리는 괜찮습니다만 오시기에 마음이 켕기면 어떡하나 싶어서요. 기침만 해도 눈살을 찌푸리는 세상이잖아요.” “그러게요. 왜 세상이 이리 되었을까요.”

“그 참, 우리마저 사람 피하고 문 닫아걸면 어쩌나 싶지만 막상 오시려는 분도 어쩌나 싶긴 마찬가질 것 같아요.” “우리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러나 그 집에선 연락이 없었다.

“우리 민박도 쉬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밥상을 물리고 딸기청 담글 딸기를 손질하면서 우리 가족은 또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였다. “여기 지리산마저 도시 사람들 안 받으면 도시 사람들은 어디로 가?”

“그건 그래. 답답하고 갑갑해서 어디로든 가서 쉬고 싶어 할 건데.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도 그래.” “그래도 외지 사람들 들락거리면 마을 사람들 눈치도 보이잖아.” “경로당도 문을 닫은 판국인데 사람들 찾아들면 마을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올 거야.”

대화의 끝은 난감했다. 그렇다고 뻔히 아는 사람들이 온다는데 문을 닫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말에도 몇몇은 예약을 취소했지만 꼭 온다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코감기에 이따금씩 기침을 쏟는 아내가 더 난감해했다. 열도 없고, 마른기침도 아니고, 농어촌버스정류장에서 점검을 받고 이상 없이 통과한 아내였다. 손님 앞에서 기침이라도 하게 될까봐 지레 걱정하는 듯했다. 엄혹한 세상이었다.

어제 이빨치료차 읍내에 나갔다. 오 리 길 밖 버스정류장에 와서야 마스크를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낭패였다. 다행이도 버스 속에는 승객이 거의 없었다. 맨 뒷자리에서 죄인처럼 웅크리고 앉았다. 혹시 기침이라도 날까봐 가는 내내 조바심을 댔었다.

읍내 종착지에 내리자마자 방호복차림의 두 젊은이가 다가왔다. 이마에 대고 열을 재더니 다시 귓구멍에 체온계를 밀어넣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혹시라도 열이 감지되어 이대로 끌려가지나 않을까싶었다. 어디론가 끌려가 밀폐된 공간에 버려지면 어쩌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 방역인들 손아귀에서 벗어난 나는 두리번거리며 약국을 찾았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옷소매로 입을 가리고 세 곳 약국을 돌아도 마스크는 없었다. 그러다 외진 골목 안에 있는 조그만 약국에서 마침내 마스크를 만났는데 방한용 마스크였다. 2,500원이었다.

마스크를 하자 마침내 나도 사람으로써의 모습을 갖춘 듯했다. 추적추적 봄비 내리는 거리는 고요했다. 밥집에 들어도 손님은 거의 없었고 주인은 울상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날일을 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질펀하게 낮술이라도 마실 날씨였지만 마스크를 낀 채 드문드문 앉아 국밥을 기다리는 몇몇이 전부였다.

목욕탕도 그랬고 치과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에서 하루하루 벌어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이웃들의 삶이 걱정스럽게 다가왔다. 기침만 해도 이웃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하는 비정한 생활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지 미래를 불안하게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더 따뜻한 배려와 믿음으로 관계해야할 이웃이건만 주위 모든 여건은 그런 인간애마저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우산 아래 깊이 얼굴을 숨기고 바쁜 발걸음을 옮기는 쓸쓸한 뒷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보았다.

보름이는 카페 문을 열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문을 열어봤자 손님도 거의 없을 거란 걸 모를 리 없는 보름이었다. 날씨만큼이나 건조한 세상이지만 혹여 찾아드는 이에게 따뜻한 차를 내주고 촉촉한 감성으로 마주앉아 대화하기를 선택한 보름이가 참으로 고마웠다.

꽃밭에 올 봄 처음으로 꽃망울을 터뜨린 꽃송이를 보면서 바이러스도 봄날 꽃향기에 실려 사라질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그때까지 세상 사람들이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따뜻함 잃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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