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동백서' 따지는 차례상 대신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 달라지는 명절 풍속도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5년 전부터 명절에 여행을 떠나요. 여행지에서 전통시장을 방문해 차례상을 간단하게 차리고, 가족들과 주위를 돌면서 기분을 내니 좋아하더라고요. 그간 경주, 거제, 부산 등을 갔고 올해는 삼천포에 갈 생각입니다. 아내나 제수씨도 시가댁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더니 이제는 그러지 않습니다. 명절 스트레스도 없어졌고, 이제는 명절을 기다리는 눈치예요”

“몇년 전 한 칼럼을 보고 우리가 차리는 차례상 방식이 전통적인 것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그간 전통이라 믿고 규격화된 차례상을 차려왔는데, 지킬 필요가 없어졌죠. 가족회의에서 우리가 먹고 싶은 걸 설 전날 먹고 차례상에도 올리자고 했어요. 올해는 설 전날 회를 먹을 생각이에요. 다음날 아침 차례상에도 같은 음식을 올릴 거고요. 자손과 조상이 같은 음식을 먹는 거죠”

 

▲ 간소화된 차례상의 예시

명절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가족들이 모여 호화로운 차례상을 차리던 풍습을 벗어나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간소화하고, 명절 연휴에 여행을 떠나는 가정이 점차 늘고 있다. 명절 스트레스를 줄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명절을 보다 화목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것이다.

농업진흥청이 지난해 설을 앞두고 소비자 패널 801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차례를 지내는 가구는 65.9%로 집계됐다. 2014년의 71%, 1992년의 80%와 비교하면 차례를 지내는 비율이 줄어들고 있는 것. 특히 50대 가운데 29.8%가, 60대 이상 가운데 44.7%가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상 차리기 간소화를 위해 마트에서 ‘간편식 제수용품’을 구매하는 비율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쇼핑업체 티몬이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30~40대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차례상 음식을 집에서 만든다는 비율은 54.9%, 일부 혹은 대부분의 음식을 간편식 제수용품으로 준비한다는 비율은 45.5%로 나타났다.

이같은 변화에 따라 명절 스트레스, 명절증후군 현상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명절증후군이 없다고 답한 여성 비율은 44.8%, 전업주부 가운데 명절증후군이 없다는 비율은 42%에 이르렀다. 이마트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간편식 제수용품’ 매출이 20% 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명절 풍속도가 바뀌어가는 셈이다.

지역에서도 설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차례를 간소화한 가정이 많다. 김현숙 씨는 2017년 설부터 규격화된 차례상을 차리지 않기로 했다. 신문 칼럼을 보고 규격화된 차례상이 우리 전통이 아니란걸 느껴, 가족 회의로 합의를 본 것. 그는 “전통이 아니라면 굳이 지킬 필요가 없지 않냐”며 “지금은 설 전날 가족들이 먹고 싶은 걸 먹고 같은 음식을 다음날 차례상에 올린다”고 말했다.

조영득 씨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5년 전부터 차례를 간소화해 지내다가 최근에는 절에 차례상을 맡기고 당일 절만하고 온다”며 “어릴 때 배웠던 제사상과 지금의 제사상이 좀 다른 것 같아 이것저것 찾다보니, 나물을 6가지 올리거나 생선을 올리는 등 이런 게 제사상의 표본이 아니었다. 차례상을 간소화하니 누나들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 규격화된 차례상의 모습(사진 = 네이버 방법사전)

이들의 말처럼 규격화된 차례상 차림은 전통에 어긋난다는 견해가 있다. 황교익(음식 칼럼니스트)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조선 말 가례가 돌면서 제사 상차림을 규격화했지만, 그 연원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조선말기 양반 족보가 거래돼 양반 수가 급격히 늘면서 주자가례를 모르던 이들이 정확한 근원 없이 제사방식을 표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박정희 정부시절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상차림 형식이 정부에 의해 공표됐다며, 이것이 과연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했다. 그는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상차림 형식은 1969년 3월 1일 공포된 가정의례준칙과 정부가 때때로 발표하는 이른바 '모범적 상차림'을 따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 차례상에 떡국 하나만 둬도 문제될 게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중국의 주자가례나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에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와 같은 지금의 일반화된 차례상 차림 형식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후손들이 쉽게 구해 먹을 수 있는 제철과일과 채소를 올리는 것이 예법에도 맞는다는 것. 차례의 본래 뜻도 ‘명절날이나 조상의 생일 등의 낮에 간단히 지내는 제사’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의 말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한편 설 연휴, 가족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이번 설연휴 총 103만 9천여명이 인천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추석보다 이용객 수가 15만 명 줄었지만, 이는 설연휴가 짧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신 국내 여행 수가 늘었다. 온라인 쇼핑몰 G9는 최근 한달 간 해외여행 상품 판매는 지난해 대비 22% 줄어든 반면 국내여행 상품은 3배(194%)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경남지역 거주자인 우문영 씨도 설 연휴 여행을 즐기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5년 전부터 명절마다 인근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숙소를 잡고, 그 근방 전통시장에서 장을 간략하게 본 뒤 음식 4~5가지를 올리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난 뒤에는 근처 관광지를 돌며 가족들과 시간을 즐긴다. 가족들은 이같은 변화를 반기고 있다.

그는 “아내나 제수씨의 명절 스트레스가 큰 것 같았고, 조카나 아이들도 왜 굳이 제사를 지내냐고 묻곤 했다. 명절은 가족끼리 화목하게 지내면 되는건데 음식을 준비하고 제사를 지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그만두기로 마음 먹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여행을 떠나니 모두들 좋아한다. 좋은 곳에 가 가족끼리 즐거운 마음으로 명절을 지내면 조상님도 좋아하시지 않겠냐”고 말했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