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진나라로 가던 도중 양식이 떨어져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적이 있었다. 제자 안회가 가까스로 쌀을 구해와 밥을 지었다. 공자는 밥이 다되었는지 알아보려고 부엌을 들여다 보다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웅큼 떠서 먹고 있는 안회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안회는 제자 가운데 도덕수양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공자가 아끼는 학생이었다. 공자는 크게 실망하고 곧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안회가 밥이 다 되었다고 하자 공자가 말했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구나." 밥을 몰래 먹은 안회를 뉘우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 말을 들은 안회는 곧장 무릎을 꿇고 말했다. “스승님! 이 밥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여는 순간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 제가 그 부분을 먹었습니다.”

공자는 안회를 잠시나마 의심한 것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다른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 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 구나. 너희는 보고 들은 것이 꼭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공자와 수제자 안회의 일화 中-

▲ 배경환 진주교육공동체 결 상임대표/진양고 교장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오해에 부딪히기도 하고 진실의 왜곡을 경험하기도 한다. 기술의 발달로 의사소통 수단은 더욱 편리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소통에 더 어려움을 겪는다. 들으려고 하는 것 보다 말하려고 하는 욕구가 앞서서인지, 듣는 사람의 입장보다는 자기 입장만을 내세워 거침없이 말하곤 한다. 자기가 보고 들은 것만을 사실이라고 하며 그 외의 것은 사실로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읽고 싶은 것만 읽기도 한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나이가 들고 직책이 오를수록 남 앞에 설 기회가 많아진다. 그리고 말할 기회도 많아진다. 늘 조심스런 자리지만 말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을 되돌아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요즘 들어 생각의 차이를 많이 경험한다. 교직원 회의에서 안건으로 다루기로 해 놓고서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논의는 사라지고 업무는 지난해와 동일하게 실행되고 똑같은 전철을 밟는다. 학교는 늘 정신없이 바삐 돌아간다. 조직 내에서의 빅 마우스로 인해 민주적인 절차가 무너지기도 한다. 대부분 말없는 다수에 비해 소수이지만 목소리가 큰 빅 마우스에 의해 문화가 흘러가는 조직도 있다. 중요한 안건이 있는데도 대충 의견을 수렴하고 눈앞에 보이는 휴식을 유도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결론의 방향이 보이는 것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고 늦게 가더라도 논의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합의한 후에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디지만 더 멀리 갈 수 있다.

작년 1학기 말에,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가 찬성하는 분위기라서 과정과 절차를 생략하고 일을 진행했는데 그 한 명이 피해의식을 느껴 정당성과 교권침해 등을 이유로 온갖 기관에 문의를 하는 바람에 갈등을 겪었다. 올해는 논의과정을 거쳐서 진행하니 작년과 같은 결론이 나왔음에도 일이 평화롭게 진행되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가끔 민주주의적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학교에는 법정위원회와 비법정위원회가 무수히 많다. 모두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한 방향으로 가자는 취지인데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때론 공문에 근거해서 위원회의 의견을 반드시 수렴해서 결정하고 회의록을 첨부해서 보고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도 󰡒주인의 결정이 중요하지 객한테 왜 묻느냐󰡓고 하는 경우도 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그와 반대로 학교장이 함부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각종 매뉴얼과 규정이 연일 공문으로 들어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류에는 민주적으로, 실제로는 학교장 주변 몇몇의 의견이 학교전체의 의견으로 되어버리고, 말 없는 다수는 늘 말없이 주어진 업무와 수업으로 일 년 나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일들은 학교 내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아이의 말만 듣고 모든 것을 판단해서 막무가내로 화를 내고, 심지어 초면에 막말로 대하는 민원까지 발생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뜬금없이 찾아와서 화를 내고 녹음부터 한다며 일방적으로 질문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나중에 오해가 풀리고 잘 해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심한 경우는 아이의 사소한 다툼이 어른싸움으로 확대되고 법정 분쟁까지 가기도 한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녹음하고 꼬투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그때 학교는 이미 바람에 흔들리는 힘없는 갈대에 불과하고, 결국에는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피해가 가기도 한다. 그래서 갈등조정위원회라는 것도 생겼다.

요즘 학교는 교육공동체와의 소통을 위해서 학부모 자치를 위한 학부모 총회, 교육과정 설명회, 학부모 아카데미, 각종 학부모 동아리, SNS밴드 등을 통해 학부모가 교육파트너, 교육 서포터즈로서 교육과정에 참여하도록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내 아이를 여러 관점에서 이해하고, 학교와 교사와의 소통과 공감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개선하고, 신뢰를 쌓고 학부모도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소통의 첫 출발은 경청이다. 경청(傾聽)을 한자로 풀이하면 남의 말을 귀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듣기의 수준에는 무시-듣는 척하기-선택적 듣기-적극적 듣기-공감적 경청이 있다고 한다. 선택적 듣기는 누군가 말하는 내용을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듣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것을 말하고, 적극적 듣기는 언어적 반응은 물론이고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방의 말에 짧게 맞장구를 치는 비언어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한 단계 위인 공감적 경청은 상대방의 말, 의도,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비우고 잠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듣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말을 들음으로 의도나 문제에 대해 한층 더 깊게 이해 할 수 있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시작도 듣기에서 시작된다. 듣는다는 것, 들어준다는 것은 관계와 소통의 시작이고 민주주의 시작이다.

* 진주교육공동체 ‘결’은 진주지역의 마을교육공동체를 함께 꿈꾸고 마을에서 활동하는 회원들로 구성된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지역안에서 교육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청소년 진로모색과 자치활동, 진주행복교육지구활성화, 마을학교지원, 교육의제발굴과 공동방안 모색의 진주지역 교육생태계 조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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