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계속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든 일단 잘못했으면 주눅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나이 60 훌쩍 넘겨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과거에 잘못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요즘은 하나하나 반추하며 옷깃을 여미는 것은 물론 내 잘못으로 마음이 심히 상했거나 피해를 보신 분들께 속죄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 가운데에는 검찰과 관련한 잘못도 있었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기자들이 검찰을 우습게보기도 했고 검찰은 그 대척점에 서서 여차하면 잡아넣으려고 기자들의 죄악을 차곡차곡 파일에 쌓아놓고 기회만 엿보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나도 두어 번 검찰에 불려간 적 있다.

▲ 박흥준 상임고문

#1. 아나운서 한 명과 PD 한 명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결혼과 함께 퇴직을 강요당했다. 노조가 갓 출범했고 당시 나는 노조신문 편집장이었다. 고백한다. 그 무엇을 내세우며 아무리 변명을 하더라도, 당시는 그런 분위기였고, 누구도 피해가지 못 할 상황이었다는 게 당시의 내 판단이었더라도, 그래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나는 깊은 고뇌 없이 노조신문에 써 갈겼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주로 선배들이 나에게 넣어주었다. 어쨌든 나는 부끄러운 선택을 했고 죽을 때까지 부끄러워하며 후배 2명에게 속죄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곧바로 검찰이 나를 불렀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처음 당하는 일이라 검찰의 통지를 받아들고 나는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2. 아무리 기자가 술자리에서 검사와 맞장 뜨던 시절이었더라도 검찰청사는 내게 두려움 그 자체였다. 오전 11시쯤으로 기억한다. 고개를 숙이고 청사 1층 사무과와 징수과 앞 복도를 지나치는데 아니나 다를까. 양 옆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어지러이 들렸다. 당시에 나는 검찰출입기자였다. “박 기자님. 이 시간에 우얀 일임미꺼. 뭘 도와드릴까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검찰 패트롤(검찰청사에 들러 밤사이 벌어진 사건을 챙기는 일)을 새벽에 일찌감치 돌면 더 이상 그 날은 검찰에 들어갈 일이 없던 시절이었다. 요즘처럼 뻗치기도 없었고, 타사 기자선배들은 아예 들어오지도 않고 제보만 받아 기사를 쓰던 그 시절. 대답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2층 검사실로 뛰어올라갔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땅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은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3. “두 분이 원하는 게 뭡니까?”

“노조의 진솔한 사과와 복직입니다”

“그럼, 박흥준 씨. 두 분에게 사과할 의향 있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사과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구요. 하지만 노조의 사과는 제 소관이 아닙니다. 제가 노조 대표도 아니구요. 노조 차원의 사과는 제가 할 수 없습니다.”

“노조 차원의 사과는 안 될 것 같은데 두 분 어쩌시렵니까.”

“박 선배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응? 나오면... 우리는 계속 가야지요.”

 

검사는 합의를 이끌어내려 애를 썼고 후배 두 분은 자존심을 회복하려 애를 썼고 나는 죄스러운 마음을 후배 두 분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던 과정이었지 싶다. 후배 두 분에게는 지금도 죄스런 마음을 안고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이와 비슷한 일로 검찰에 두 번 불려갔다. 그러니 지금까지 합쳐서 세 번이다. 앞에 소개한 장면에서는 벌금 약식기소, 다음번은 무혐의, 세 번째는 ‘죄가 안 됨’ 처분을 받았다. 무혐의와 ‘죄가 안 됨’ 처분을 받으러 검찰에 불려갔을 때는 “내 잘못 전혀 없다”였지만 벌금 처분 때와 똑같이 검찰청사 앞에서 주눅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기자가 검사와 맞장 뜨던 그 시절에 기자였던 내가 그렇게나 주눅이 들었다면 빽 없고 돈 없는 많은 분들이 뜻하지 않은 일로 검찰의 부름을 받았을 때는 과연 어떠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 잘못도 없는데, 주눅이 드는 것을 넘어 검사 앞에서 바들바들 떨며 “억울합니더. 저는 아임미더.”를 외치지 않았을까.

그래서도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별건수사를 하면 안 걸릴 사람 없고, 탈탈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어서 그동안의 검찰은 먼지 한 알을 문제 삼겠다고 오랜 세월 을러댔지 싶다. 물론 수사기법 가운데 하나였겠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막걸리 한 잔에 방광이 부풀대로 부풀어서 참지 못 해 노상방뇨 한 번 한 게 걸릴지도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위스키 한 잔에 동네방네 고성방가를 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다음날 검사가 신속히 보자 하면 한없이 줄어드는 게 우리 모두였다.

물론 의심이 가면 수사를 해야 한다. 증거도 끌어 모아야 하고. 문제는 인권이다. 천부인권. 개혁을 하면서 조국 수사는 수사대로 하시기를 장삼이사 자격으로 검찰에 바란다. 무릇 조심하면 국민들이 우리 검찰을 자랑스러워하며 사랑하지 않을까. 죄는 지었는데 이춘재처럼 벌은 아직도 안 끝난 놈들만 빼고.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검찰개혁이 이달 들어 뜸해진 것 같아서 마지 못 해 한 마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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