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후의 한국 축구는 그만저만했다. 그러므로 애어른 할 것 없이 그저 붉은 티 한 장씩 걸치고 팔짝팔짝 뛰던 2002년의 성취는 다만 ‘기적적’이었음을 증명해주는 듯했다. 크고 작은 대회마다 4강이 원대한 목표였으나 4강이란 것이 한번 해봤다고 단골로 오를 수 있는 높이는 아니었다. 당차게 벼르고 장도에 올랐으나 빈번히 16강의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그때의 번뜩이던 기운으로 솟아올랐던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도 이미 은퇴했다. 박항서 감독이 일으킨 바람으로 동남아의 ‘용’이 된 자국의 전사에 환호하며 붉은 대열을 이뤄 경적 울리며 도심을 휘젓는 베트남 인민의 모습을 외신으로 보며 다만 그때를 회상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불쑥 나타났다. ‘불쑥’이라니. 듣는 아이들로선 이 언사가 온당치 않고 서운하겠지만 전혀 기대치 않았던 등장이었으니 어쩌랴. 그걸로 밥을 먹는 스포츠 기자 그 누구도 이 아이들의 선전을 예상하는 기사 한 쪼가리 낸 적 없으니 말이다. 이들이 누군가. 그 해, 온 백성이 ‘붉은 악마’가 되어 숭어 뜀을 뛸 때 아장걸음을 놀던 꼬꼬마들이 아닌가. 그해 여름 강토가 붉은 열기로 한마음이 된 기운을 자양으로 ‘슛돌이’란 이름의 꿈나무로 심어지더니 우뚝 자라 이윽고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타난 것이다. 막내 ‘강인’이 2001년생이라니 흐르는 세월과 그것이 만드는 조화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그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남미와 유럽의 쟁쟁한 강호들을 누르고 결승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마치 만화 같았다. 그건 가히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로써 한국 축구는 ‘4강 신화에의 도전’이란 수사는 ‘쪼잔한’ 것이라 여겨 초개같이 폐기해도 켕길 것 없이 되었다. 간 크게 “우승이 목표다”라고 외고 펴도 되는 이력이 붙은 것이다. 이 청년들은 새로 돋아나는 ‘슛돌이’들이 그런 배포를 갖게 만든 새 역사를 썼다.

일껏 어렵게 골문 언저리까지 몰고 가서 결정적 순간에 ‘똥볼’로 날려버리는 것이 우리 ‘국대’의 고질적 문제라는 ‘문전 처리 미숙’에 관한 분석은 특히 경상도 관전자들의 고전적 불만이다. 그러나 내가 항시 못마땅한 것은 수비수들의 행태였다. 공격 시작의 절차는 페널티 에어리어 모서리에 공을 놓고 차거나 골키퍼가 들고찬다. 중원에 직접 연결하려는 그 시도는 그러나 아군이 잡을 확률이 5할에도 훨씬 못 미치니 수비수를 통한 전진 패스를 꾀함이 당연하다. 그런데 4·4·2건 3·5·2건 풀백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수작하며 미드필드까지 잇는 그 과정이 너무 어설프고 아슬아슬하다. 센터백이 공을 쥐고 어르다가 좌우를 번갈아 가며 날리는 횡패스가 너무 뻔하거니와 상대 공격수가 압박이라도 해올라치면 백패스를 하는데 그 빈도가 잦은 것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 뺏기면 단독 기회를 내주고 영락없이 골을 먹으니 넣을 땐 천신만고 어렵게 겨우 넣으나 실점은 너무 쉽게 당하는 것이다.

분단은 체제경쟁에 스포츠를 우겨넣어 국제대회서 남북이 사생결단의 기세로 서로에게 덤비며 남우세스런 꼴을 보였다. 권력자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으려면 북한에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것이 ‘국대’의 목표였고 스포츠 행정은 그걸 위해 복무하는 마름이었다. 성과를 위해 선수촌을 짓고 엘리트를 양성해 성적에 따른 포상을 했다. 자율은 없다. 엄격한 규율과 가혹한 체벌이 있을 뿐이다.

축구는 딱히 갖추어야 할 장비가 필요 없는 운동이니 범세계적이고 또한 우리 성정에도 맞아 일찍부터 국민스포츠로 첫손꼽던 종목이었다. 그러나 본시 서양 사람에 비해 작은 쳇수에다 채식 위주의 섭생 탓에 체력 또한 그들에 비할 바가 못 됐으니 마당에서 맞붙으면 나동그라지기 일쑤였다. 게다가 맨땅에서 차고 구른 아이들이 잔디에 적응하는 것도 시간이 걸렸다. 지도자 명색은 욕설에 주먹질을 달고 사는 폭군들이었다. 자율은 없고 주눅만 잔뜩 든 거친 ‘범생이’들이었다. 책망과 힐난이 일상인 풍토에 창의성이 들어설 자리는 없는 것이다.

이번 U20 경기에선 백패스가 거의 없다. 중원에서 상대가 달라붙어도 삼각패스와 리턴으로 전진을 이루는 품이 자신감에 차 있다. 특히 ‘지단’이나 ‘마라도나’에게서나 보던 ‘마르세이유 턴’을 일 같잖게 해내며 두셋을 가볍게 따돌리는 ‘강인’이 미드필드를 지키고 있으니 전방 공격의 활로도 여물다.

4강전서 이긴 후 강인은 인터뷰에서 “시합을 뛰지 않은 형들과 뛴 형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라고 말했다. 여태 수많은 인터뷰를 지켜봤지만 시합에 뛰지 않은 동료의 헌신에 공을 돌리는 모습은 처음 봤다. 어린 스타플레이어의 합류를 따뜻이 맞아주고 그런 형들에게 겸손하게 엉겨 이룬 팀 분위기가 여기까지 오게 했구나 하는 짐작이 드는 대목이다. 도착을 기다린 TV 3사의 카메라가 공항에서부터 따라붙고 시청 앞 광장엔 환영인파가 몰렸다. 하나하나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하는데 아직 앳된 티가 역력하나 밝고 분방하다.

도보다리 지나 새소리 청량한 벤치에 앉은 남북 정상의 ‘무언극’ 이후 금방 풀릴 것 같은 매듭은 또다시 배배 꼬이고 경제 사정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전에 못 보던 엽기적 사건이 연신 터지는 와중에 다뉴브강의 비보까지 겹친다. 이래저래 고달프고 스산한 심사에 저 진화된 반도의 청년들이 보여준 역동적 기상은 큰 위로가 됐다. 고된 훈련을 함께 겪었으면서도 벤치를 지킨 선수들에 더 큰 박수를 보내며 슛돌이 모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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