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준 칼럼] 고행(苦行)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그러나 점과 선은 대등하다" 박흥준 상임고문l승인2019.05.24l수정2019.05.2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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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원대한 꿈이 있었지. 박정희 대통령 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 공부해야 했지. 무조건 쓰고 무조건 달달 외웠지. 책이 가르쳐 주는 것만 받아들였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었지. 공부 못 하는 짜슥들이 내 앞에서 주눅 드는 모습을 보는 건 즐거움이었지. 국정교과서와 정통종합영어, 그리고 해법수학, 아 참. 삼위일체 영어도 목록에 들어가지. 내가 안 읽은 책은 없었지. 문사철(文史哲)은 제외하고. 수학의 정석도 웬만큼은 풀었지.

팬맨십과 문천사의 학습지를 꼬깃꼬깃 큰 돈 들여 사 주시던 어머니의 흐뭇한 얼굴을 뒤로 하고 중학교에 들어갔지. 어머니 덕분에 알파벳은 떼고 들어갔지. 열심히 공부했지. 교과서에 밑줄을 치면서.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머리를 수시로 쓰다듬어주셨지. 인수분해에서 막힐 때 분해서 눈물을 흘렸지. 존심이 상해서 선생님께 물어 볼 수도 없고. 학력이 별무인 부모님은 처음부터 논외였고. 자습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해법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래서 고등학교는 문과를 택했지.

▲ 박흥준 상임고문

문과를 택한 건 정말 잘 한 일이야. 지금 생각해 보니. 1학년 공통수학 선생님이 어느 날 칠판에 한 일(一)자를 쭈욱 그으셨어. 그리고 하시는 말씀. “점과 선은 대등하다. 더 나아가서 선분과 우주는 대등하다. 이게 수학의 원리이다. 수학은 철학의 영역이다.” 중학교 때 일찌감치 인수분해에 잠시 막혔던 나. 2차 방정식까지는 어찌어찌 달달 외워서 중간고사 문제를 찍었던 나. 받아쓰기에는 뒤지지 않았던 나.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감이 안 오는 거야.

아니 수학 선생님이면 수학 선생님답게 집합과 확률, 미분과 적분, 인테그랄과 ‘제로에 어프로치’ 등등이나 가르쳐 주실 일이지 도대체 무슨 황당한 선문답이야?

나는 지금도 그 엉터리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 한다. 점과 선이 어떻게 대등할 수 있으며 선분과 우주가 무슨 수로 마주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수학을 간단히 무시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편해지며 다른 과목의 점수가 서서히 올라갔다. 아울러 내 꿈도, 저 높은 곳을 향한 내 희망도, 내 염원도 내가 외우는 영어단어 숫자가 늘수록 그만큼 서서히 영글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확신했다. 이 길이 최선이다. 나에게 차선(次善)은 없다.

외우는 데 일가견이 있다 보니 그 다음 공부는 장난이었지. 육법전서를 그냥 달달 외우고 판례를 통째로 외워서 시험을 쳤더니 그 시험 별 거 아니더만. 달칵 붙더만. 물론 나랑은 사뭇 다른 성분의 동기들도 여럿 있었지. 은연중 나를 경멸하는. 법 역사와 법철학을 중시하는. 점과 선이 대등하다고 우기는, 헌법 조문 한 구절 한 구절에 배어있는 핏방울과 핏자국과 피 냄새에 사뭇 예민한 그들을 보는 순간, 그 엉터리 수학 선생님의 겨울철 노가리처럼 말라비틀어진 몰골이 생각나서 끔찍했지.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지. 침착을 유지하며 엷은 미소로 그들을 대하며 처음으로 힘들어 했지.

돌아보니 그 순간부터 내 힘든 삶은 계속됐지. 전대협에 전노협에 전교조에 전철연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그런데 일련의 힘든 과정이 지나니 그런 날도 오더만. 일인지하 만인지상. 이제는 쭈욱 내 세상이다 싶었는데 그게 또 아니더만. 오랜 세월 힘든 삶을 웬만큼은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그 힘든 삶이 다시 시작됐지. 환갑진갑 훨씬 넘은 요즘에 말야.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오체투지로 ‘고행 2019’를 시현케 하는 건? 나로 하여금 결기를 다시 세우게 하는 건? 백면서생인 나에게 호미를 쥐어주고, 한 때는 대합실을 가로질러 승강장까지 승용차로 질주하는 걸 예사로 생각했던 나에게 뚜벅이를 강요하고, 염천 하늘에 나를 땀 흘리게 하는 건?

그건 바로 '저 높은 곳'이지. 요즘은 '저 높은 곳'에 오르려는 일념 하나로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지. 힘들지만 자신 있지. 지금까지 그래왔듯 나는 항상 옳으니까. 나는 항상 승리했으니까. 이번이 마지막 고행이지. 목하 ‘2022’를 기대하고 있지. '2022'가 펼쳐 줄 저 높은 곳에서는 한여름에도 선선한 바람이 내 땀을 식히고 북풍한설 겨울에는 원자력 전기가 내 몸을 덥히지. 게다가 저 높은 곳에서는 아래를 일별할 수 있으며, 저 높은 곳에서는 인자한 미소만 은은히 지어도 아랫것들 모두가 감복할 터이니. 그야말로 좌파독재를 물리치고 ‘최고 존엄’이 되는 거지. 이 땅에 공안민주주의를 다시 가져 오는.

하여 나는 오늘도 힘을 낸다. 뚜벅이 생활은 잠시 멈출 생각이다. 서너 달 잠시 쉬고 선선한 바람이 불 때쯤 다시 나가서 걸어야지. 왜? 지금부터는 너무 더우니까. 더우면 짜증나니까. ‘저 높은 곳’이고 뭐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서 도무지 생각이 안 날 테니까. 잠시 장내로 복귀해서 에어컨 바람 맞으며 이것저것 트집 잡으면서 대충 훼방만 놓으면 가을이 곧 올 테니까. 그러면 그들은 조급해 하다가 돌아버릴 테니까. 좀 좋아?

가는 곳마다 어린 백성들이 눈물로 반기고 손만 잡아도 황감해 하고... 아아. 힘들여 민생투어 한 보람이 있었다. 흐트러졌던 대오가 어느 순간 갖춰지며 서서히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내년까지 갈 필요도 없이 세상을 뒤집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고행? 고행이 절대 아니다. 그냥 투자하는 것이지. 대박을 꿈꾸며...

그래. 너희가 몽매에도 그리던 그 날이 드디어 임박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내가 너희의 족쇄를 풀어 주리라. 너희를 좌파독재로부터 해방하리라. 너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한 숟가락씩 내리리라. 하지만 저 북쪽의 승냥이들에게는 한 푼어치의 은혜도 흩뿌리지 않으리라. 노동자라 이름하는 현대판 노비들. 너희는 고맙게 먹으라. 내 손을 잡으며 경배하라. 설령 먹고 남더라도 북쪽 그들에게는 밥 한 술 쌀 한 톨도 주지 말라. 명심하라.

설령 그들이 굶어 죽더라도 너희와 나의 잘못은 아니다. 너희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지금 나는 하고 있을 뿐. 너희와 그들의 꿈이 나를 저 높은 곳에 밀어 올릴 것이며, 나는 높은 곳에 임해 이 땅의 ‘최고 존엄’이 되어야 하며... 내 이름 석 자 기억하라. 그러면 너희들은 살 수 있으리니... 그 날이 오면 “점과 선이 대등하다. 선분과 우주가 대등하다”고 아직도 믿고 있는 무지한 무리들도 '너희'에 너그러이 포함하리라.


박흥준 상임고문  840039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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