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선전을 노린 ‘극우정당’과 건전한 대중정당의 사이

1980년 5월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광주항쟁 또는 광주학살이라고도 불리며 공식적으로는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정리된-은 당시를 살았던 한국인들에게 원체험으로 남아있다. 전임 대통령이었던 독재자 박정희가 암살당한 후, 권력의 공백기에 전두환과 신군부 일당이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한반도의 남서부 지방 도시 ‘광주’를 봉쇄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해 총칼로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대학생 등 시민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한 이 사건은 1950년의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정치적 비극이었다.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기간에 수없이 자행됐던 민간인 학살이 20세기 후반부의 백주대낮에 재현됨으로써, 국가권력이 국민을 지키기 위해 징집된 군인들을 동원해, 자신이 보호해야할 국민을 도리어 대량학살한 악랄한 국가폭력행위였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그렇게 기록된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전두환이 창당한 민정당을 뿌리로 하는 자유한국당(이하 자유당)이 사고를 친 것이다. ‘5.18 망언’ 파동이다. 자유당의 국회의원 김진태 등이 마련한 공청회장에서 극우논객 지만원이 발언한 내용과 국회의원 이종명과 김순례 등이 광주 민주화운동 및 광주 시민들을 폄훼한 내용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다”, “전두환은 영웅이다”(이 발언은 전두환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치켜세운 이순자의 말을 연상시킨다), “폭동을 민주화운동으로 탈바꿈시켰다”,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내면서 세금을 축내고 있다” 등등이다. 도저히 제정신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는, 광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언이요, 만행이 아닐 수 없다. 단적인 예로 “5·18 북한군 개입설”은 전두환 자신도 부인한 바 있으며, 박근혜 정부 때의 국방부도 사실이 아니라고 정리했고, 전 월간조선 편집장인 조갑제도 “북한군이 우주인이 아닌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제쳐놓은 사안이다. 법원도 이미 지만원의 주장이 신빙성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자유당이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 폄훼하겠다는 고도의 계산 하에 지만원을 초청해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해괴한 것은 자유당 지도부의 오락가락하는 태도다. 비상대책위원장 김병준은 처음에는 해당 의원들에 대한 징계 요구에 대해 “보수정당 안에 스펙트럼과 견해차가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그 자체가 보수정당의 생명력이며 다른 당이 간섭할 일이 아니다”라며 짐짓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체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원내대표 나경원이 이에 앞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미 수없이 밝혀진 사실관계를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내놓은 변명이 이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었다.

이것은 명백한 논점 일탈의 오류다. 사실을 호도하기 위해 다른 논점을 내놓은 격이라는 말이다.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했는가. 문제는 “5·18 북한군 개입”이 사실인가, 아닌가이다. 그런데도 김병준과 나경원은 사실/거짓의 문제를 견해차이와 다양한 해석의 문제로 바꿔치기해 버린 것이다. 5·18을 ‘폭동’으로, 희생자들을 ‘괴물집단’으로 부르는 망언은 ‘당내 문제’나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민주화시키는데 결정적인 토대가 된 사건에 대한 역사인식의 문제며 결국은 민주주의의 핵심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이렇게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는 정당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존립할 수 없다. 군사독재정권의 용병 노릇을 한 군인들의 총칼에 맞서 저항하는 과정에서 선량한 국민 수백 명이 살해되고, 수천 명이 부상당하고 구속된 사건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시각차’ 운운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일이다. 지도부의 수준이 이 모양이니 당 소속 의원들이 ‘헌정파괴 범죄’를 옹호하고 나선 것도 이해가 된다. 또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원 추천을 방치하다 뒤늦게 추천한 위원들의 면면도 5·18정신을 역행하는 인사들로 채워져 결국 청와대로부터 2명의 임명이 거부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문제가 된 진상조사위원들은 극우이념 성향으로 부적격자라는 지적을 받은 인물들이다.

결국 이튿날 김병준은 고개를 숙였다. ‘당내 의견’이니 ‘다양한 역사해석’이니 하는 궤변으로 적당히 넘어가려다 보수 세력 내부의 거센 비난 앞에 결국 김진태 등 세 의원을 당 윤리위에 회부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5·18 공청회 문제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희생자·유가족과 광주시민들께 당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5·18 관련 당의 공식 입장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민주화운동이었다는 것”이라며 “한국당은 진실을 왜곡하거나 5·18정신을 폄훼하는 어떤 시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고도 했다. 처음엔 “당내 문제” 운운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다 뒤늦게 대국민사과를 내놓은 건 보수단체까지 비판 대열에 가세하는 등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60개 보수단체들이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옹호한 이들의 행각을 “반국가적 행위”라고 규탄할 만큼 진보, 보수를 떠나 용납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런 국민 대다수의 생각은 여론조사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5·18 망언’을 한 세 의원의 의원직 제명에 찬성하는 여론이 64.3%로 압도적이었다. 자유당의 마지막 의지처인 TK지역 대구·경북에서도 제명 찬성이 57.6%에 달했다.

하지만 그 전날의 ‘해석상의 차이’ 운운에서 갑자기 대국민사과로 180도 바뀐 사정을 감안하면 이같은 자유당 지도부의 ‘뒷북 사과’의 진정성에는 신뢰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자유당이 ‘광주학살’을 저질렀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민정당-민자당 시절의 ‘군부독재당’으로 회귀하지 않으려면, 반동을 획책하는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엄중한 단죄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소하게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유당의 징계 결과는 ‘떠넘기기’ 또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된 세 의원 중 이종명에게만 최고 수준의 징계인 ‘제명’을 의결했고 김진태와 김순례는 전당대회 후보자는 징계할 수 없다는 당규 때문에 2·27 전당대회 이후 징계 여부를 재논의하기로 했다. “전당대회가 끝난 다음에 윤리위를 다시 소집해서 징계 여부나 수위를 결정하기로 했다”는 설명이지만 전당대회 이후에는 새로운 지도부가 꾸려지기 때문에, 현 지도부가 두 사람의 징계 문제를 차기 지도부에 떠넘긴 것이란 지적이 많다. 이종명의 제명 여부 역시 당규상 국회의원인 당원에 대한 제명은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확정되기 때문에 향후 얼마든지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과거사 청산 문제가 그렇듯이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진정한 해결 대신 극우 정치인들의 터무니없는 주장과 선전이 횡행하고 일정 부분 먹혀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광주학살의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고, 그 책임자를 엄중하게 처벌하는 일을 제 때에, 제대로 못 했기 때문이다.

물타기식 솜방망이 징계에 머물고 만 자유당은 어떤 식이든 민심의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여야 4당은 세 의원의 징계안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출하면서 ‘의원직 제명’ 추진을 천명했다. 사과는커녕, 아직도 궤변으로 5·18 폄훼를 멈추지 않고 있는 자들에게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신분은 가당치 않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추방되는 사필귀정의 결과를 보고 싶다.

아울러 여야 4당이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한 ‘5·18 왜곡 처벌법’의 조기 통과도 시급하다. 독일의 반나치법안과 유사한, 악의적으로 5·18을 폄훼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한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한 법안이 마련돼야 반역사적인 극우 세력의 준동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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