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솔라시도~ 아침마다 ‘솔’에서 시작해 높은 ‘도’에서 끝이 난다. 아들을 깨우는 일. 세상 모든 일에 단계가 있듯, 녀석을 깨울 때도 내 목소리는 단계별로 레벨 업 된다. 첫 음은 평화롭게, ‘아들~일어나’ 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좀 더 소리를 가다듬어 ‘아침이야~’, 이때도 나오는 답이 정해져있다. ‘오분만요~’. 그래, 한 번에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밥상을 차리거나 이미 일어나 있는 딸의 머리를 빗겨주며 시간을 벌다가 다시 아들의 방문을 연다. ‘오분 지났어, 일어나, 눈 떠라, 어서’ 역시나 이불 안은 요지부동.

잠에서 깨어나기가 저렇게 힘이 들어서야, 저렇게 의지가 박약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오만 생각 끝에 문득 예전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자기네 아들은 깨우면 단번에 일어난다고. 얼굴도 모르는 그 집 아들이 부러워서 갑자기 속이 부글거린다. 급기야 ‘혹시 내 말을 무시하나?’ 단계에 이르면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소프라노 발성이 훅 튀어나온다. ‘일어나라고!! 아침마다 몇 번을 깨워야 돼!! 얼른 눈 뜨고 나와!!’ 폭포에 가지 않고도 득음 하는 길은 아들을 키우는 거라고 감히 추천하고 싶다.

▲ 재인 초보엄마

녀석이 부스스한 얼굴로 깨작깨작 밥알을 세는 동안, 나는 감정의 폭포를 추스르고 잔잔해지려고 애써본다. 오늘 아침 내 말이나 행동이 몇 옥타브를 넘었는지. 눈 뜨면서부터 혼이 난 채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들이 안쓰러워지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러게, 좋게 말할 때 일어났으면 좋았잖아. 녀석이 좋아하는 햄 반찬을 슬쩍 앞으로 밀어주며 되뇌인다. 아들미안 랩소디.

사실 아들은 아침 잠이 좀 많은 편이다. 굳이 저녁형, 아침형으로 구분하자면 저녁형에 가깝다. 밤이 깊어갈수록 눈빛이 또렷해지는 스타일. 하던 걸 접고 그만 자라는 말을 옆에서 몇 번씩 반복해야 겨우 잠자리에 든다. 누굴 닮았는지 물을 필요도 없다. 내가 그러니까.

저 나이 때, 나도 아침마다 비실거렸다. 무슨 맛인지 알지 못한 채로 잠결에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가다가 시내버스를 거꾸로 타서 반대편 종점에 내린 적도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일상의 잠에 취해 비틀거린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컨베이어 벨트가 철커덕 거리며 돌아가는 삶. 주어진 몫의 일감을, 책임을 수행하지 못하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열심히 달리는 수밖에. 하지만 아무리 기를 쓰고 뛰어도 1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별반 나아진 게 없는데. 그렇다고 발을 뗄 수도 없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갑갑한 패턴을 바꿔보고 싶어도 이내 제자리. 벗어날 다른 꿈 따위는 실행에 옮겨볼 꿈도 꾸지 못한다. 늘 쳇바퀴가 돌아가니까. 그 사이 포기와 단념이 몸에 익었다.

그런 내게 아침을 알린 사람. 그녀의 귀한 아들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젊은 생을 마감했다. 또다시 컵라면이 등장했고, 잠시도 눈을 돌렸다간 목숨이 위태로운, 작업장의 위험한 실상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과정. 시커먼 석탄가루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최악의 근무환경이라고, 모두가 손가락질 해댔다. 마치 처음 아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가 손석희와 인터뷰 하는 장면을 나는 끝까지 보지 못하고 채널을 돌렸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래봤자 세상은 꿈쩍도 안할 거라고 지레 짐작하면서. 다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에는 그녀가 국회에서 법안 개정을 촉구한다는 기사가 떴다. 아직도 포기를 안했구나. 저러다 몸도 마음도 엉망으로 상하고 말텐데. 그리고 또 며칠 뒤, 그녀는 누군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김용균법 국회 통과. 그녀는 아들의 희생으로 다른 이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했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이제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겠다고. 아들의 동료를 부둥켜안고 그렇게 울고 있었다.

엄마가 아들을 위대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위대한 엄마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그 순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소용없는 일이라고 포기했던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하루하루 그저 살아내기 바빴던 내게, 숱한 부조리와 불합리에 눈을 감고 말았던 내게, 고개 들어 앞을 보라고, 방향을 일깨워준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새해에는 그녀가 조금 편안해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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