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이를 우리가 데리고 있다!!!”

***시작은 순수했지. 물려받은 묵정밭 농사 짓기는 죽기보다 싫었고 취직도 하기 싫어서 저기에 뭐를 해야 하지? 하다가 그걸 생각해 냈지. 엊그제 뉴스데스크에 나오신 이순자 여사께서 마침 유아교육이라는 화두를 던지셨지. 잘 하면 돈을 불리겠다 싶었지. 아니. 까먹지는 않겠다 싶었지. 하지만 힘들었지. 당장 유치원 인가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원장 자격은 무엇인지. 원아는 어떻게 모집하는지. 교육비는 얼마를 책정하는 게 적정한지. 모르는 게 너무 많았지.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일단 시작했지. 어찌어찌 지목변경하고 건축허가는 받았는데 그 다음이 어려웠지. 교과서적으로만 생각하느라 더 이상은 막막했을 때 고등학교 동기가 삭막한 자본주의의 어느 길 모퉁이에서 우연히 ‘짠’ 하고 나타났지. 처음엔 몰라봤지. 삐쩍 말라서 싸움만 펄펄 날던 짜슥이 그 날 보니 볼살이 퉁퉁했지.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었으니 그 건 목소리였지. 가느다라면서도 걸걸한. 걸걸(傑傑)!!

▲ 박흥준 상임고문

“니 전교 1등 하던 아무개 아이가!” “응 그래. 주먹으로 한 시절 풍미했던 뭐꼬. 글마네. 니 요즘 뭐 하노?” “대충 그냥 산다.” “그래서야 되나? 아직도 뒷골목에 관여하나?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지.” “의미 있는 일이 뭔데?” “마 돈도 되고 사회에 기여도 하고 몬 사는 사람 밥도 멕이고... ” “그런 거라모 내도 나름으로 하고 있다. 내 사는 게 딱 글타. 내 요즘 밥은 묵는다. 내 덕에 밥 묵는 애들도 제법 있다.” “머 하는데?” “그냥 업(業) 한다. 노태우가 우리를 살맀다 아이가. 2백만호. 그란데... 니 얼굴이 쪼매 안 좋네. 애로사항이 뭐꼬? 말해바라. 왕년의 주먹쟁이라도 혹시 아나. 내가 도움이 될 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힘들게 떼었지. 건설업을 하는 친구였지. “니 우예 건설업을 하노? 니 집 가난했다 아이가.” 잠시 멈칫 하던 동기가 쐬주 한 잔 들이켜더니, 삼겹살도 젓가락으로 집더니 마치 비법을 전수하듯 귓속말로 흔쾌히 한 말은 이것이었다. “다 살게 돼 있다. 절대 굶지는 않는다. 니는 공부만 잘 했지 세상물정은 전혀 모르네.” “건설업 그 거 힘들 낀데. 자본이 쪼매 있어야 될 낀데.” “아이다. 불알 두 쪽만 있으모 누구나 하는 게 건설업 아이가.” 도대체 이해가 불가능한 말만 띄엄띄엄 내뱉는 동기에게 혹시나 하며 물었다. “니 내 도와줄 수 있나” “먼데?” “ ”유아교육을 한 번 해 볼까 하는데 장애물이 한 두 개 가 아이다. 우야몬 좋노?“ ”땅은 있나?“ ”그건 있다.“

“내가 알아서 할 게. 걱정 마라. 일단 시작하고 돈이 쪼매 되모 니는 가끔씩 다찌노미 한 잔만 사모 된다.” “그래서야 되겠나?” “니 요즘 어렵다 아이가! 당분간도 어려울 끼다. 포크레인 한 대 보내 주께. 자재도 쪼매 돌리주고...” 하긴 세상이 불필요하게 딴은 복잡하니 이것도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다 싶었지. 아니. 눈 앞이 확 밝아졌지. 나중에 다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 뒤에도 쉬운 건 아니었지. 포크레인 부르고 터파기 하고 철재 빔을 박고 콘크리트 쏟아 붓고 인부 모집해서 질통 지우고 비계 설치하고... 포크레인은 공짜이니 그렇다 치고 문제는 인건비였지. 단층건물 하나 짓고 2-30평 땅 고르고 잔디 심는 데 돈이 이렇게 들어가서야. 당연히 은행에서 대출도 했지.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었지. 마감재를 들여오고 인테리어를 해야 하는데 돈이 다 떨어졌지. 당시에는 금리가 장난이 아니었지. 어찌어찌 건물이 지어지고 드디어 문을 열었지. 빚도 조금씩 갚아나갔지.

한 동안은 괜찮았지. 유아교육 붐이 일었는데 맞벌이가 갓 일반화되고 남녀평등이 이상한(?) 방향으로 출발하던 시점이었지. 독박육아 얘기가 서서히 힘을 얻고 초코파이 하나 새우깡 한 봉지로 간식이 충당되던 좋았던 시절이었지. 노다지는 아니었지만 세 끼 밥은 넘길 만 했지. 유아교육과 나온 19살짜리 헐값에 쓰고 청소 아줌마 1주일에 한 번 부르면 다찌노미 한 잔 값은 남았지. 가끔씩 교육청 주사님이 점검은 하셨지. 그 분도 워낙 바쁘셔서 처음에는 현장출장을 두 어 번 오시는 것 같더니 조금 지난 뒤에는 전화로 모든 걸 가끔 점검하셨지. 말씀을 낮추셨지.

“A유치원이지요?” “아이고 주사님. 점심 한 그릇 모셔야 할 낀데 우예 이리 뜸하심미꺼?” “응 그래 B원장. 내 요즘 몸이 두 개라도 모지랜다. 밥 무러 오라카는 데가 워낙 많아 가.” “그래도 제 진지는 한 번씩 잡수셔야지요. 우예 이리 섭섭하게 만드능교?” “그래. 별 일 없제?” “별 일 있을 게 있겠심미꺼. 걱정 붙들어 매이소. 다 알아서 잘 함미더.” “하여튼 조심하고. 특히 M방송 글마 조심하래이. 왜 엊그제 들어온 놈 있다 아이가. 짜리몽탕한...” “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왔심미더. 두어 달 만에. 커피 한 잔 맥이고 만 원 짜리 한 장 찔러 줏다 아임미꺼. 참말로 순진하데예. 끝까지 뿌리치는데 제가 누굼미꺼. 손 힘은 쎄다 아임미꺼. 우격다짐으로 꽈악. 모리겠심미더. 풀밭에 버리고 갔는지. 주머니에 넣고 갔는지. 풀밭이든 주머니든 그건 내 책임이 아이지예” “그래도 글마가 독사새끼다. 언제 어찌 될지 모른다. 조심해라이.” “걱정 붙들어 매이소. 알아서 함미더. 자아. 들어가이시데이.”***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건 자고로 시간문제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순수하다.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내 땅 한 조각 흔쾌히 이 사회에 바쳐서 평등세상 이루는 데 조금만 기여하면 사회가 은근히 요구하는 내 역할은 다하는 게 아닐까. 물려받은 분들 가운데 착한 분 몇몇은 그런 생각으로 인생을 시작한다. 인문학도로서... 그런데 살다 보니 교과서가 무용지물인 세상이 어마어마하게 펼쳐진다. 뜯어먹는 놈이 한 둘이 아니고 인건비도 만만찮은데 나가기는 한 없이 나가면서 들어오는 건 콧구멍이니...

“스을 슬 본전 생각이 나기 시작하네. 교비 조금씩 축내는 게 무슨 대수야. 누리과정 예산도 정부가 지급한다 뿐이지 결국은 우리 교육의 댓가 아닌가. 교육의 댓가로 들어온 돈 교육에 99% 재투자하고 1%는 내가 조금 썼기로서니 세상이 이리 시끄러워서야 되나. 몬테소리며 삐아제며 프뢰벨이며 내 돈 들여 교육방식 연구.도입하고 시설 개선하고 내 돈으로 통학차량 마련해서 내가 운전하고 나름으로 애 썼는데 그 공로는 모르고... 문 닫는 척 한 번 해? 아니면 원아모집 중단한다고 발표해 버려? 워킹맘들 자지러지게 한 번 해봐?”

노무현 대통령이 사학비리를 줄이려고 당시의 4대 악법 가운데 하나인 사학법을 개정한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봤자 사외이사 한 명 포함하자는 건데 사외이사 한 명을 무슨 바이러스 한 마리로 인식한 많은 분들이 땡고함을 지르며 일제히 뛰쳐나왔다. 그 대빵은 그 유명한 박근혜. 조선조 후기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인 경주 최 씨에게서 빼앗은 모 대학교의 이사장을 한 때 역임하고 당시에는 이사 직함으로 잠시 물러나 있던 야당 대표 박근혜가 사정이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 모아 거리로 나섰다. 아울러 절규했다. 그들의 당시 주장을 이렇게 요약해 봤다. “사학비리 인정하라. 인정하라. 인정하라!!!”

비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로 풀이된다. “이치에 맞지 않는 게 어디 한 두 가지인가. 그러니 이치에 조금 맞지 않아도 웬만큼은 인정하고 대충 넘어가자” 라는 게 당시 그들의 주장이었는데, 정말 이런 식이라면 이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바가 하나도 없게 된다. 이완용도 이지용도 박제순도 용서해야 하는데, 그러면 김산과 이회영과 김일성과 김구는 어찌 되는지. 그냥 근현대사에서 바보나 병신 취급을 받고 말아야 하는지.

박근혜에 이어서 이번에는 그들이 외치고 있다. “유치원 비리 인정하라. 인정하라. 인정하라!!!” 이 구호는 내용적으로 이렇게 구체화될 수 있겠다. 목소리 변조에 전화음으로 표현한다. “...당신의 아이를 우리가 보호하고 있다. 지금은 안전하고 밥도 주는 대로 꼬박꼬박 잘 먹는다. 소시지 1/3 개 감자 반 알 계란후라이 1/10 조각 방울토마토 한 개... 저임금 우리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서 알밤을 먹이거나 살짝 밀거나 하면 과장되게 넘어져서 가끔은 울기도 하는데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그러니 일단 안심하라. 그리고... 이런 말은 안 하려 했는데 나도 살아야 하니 한 없이 망설이며 말해야겠다. 경위 따지지 말고 즉각 입금하라! 아니면 워킹맘을 그만두든지... 당신의 아이를 우리가 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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