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최고의 바텐더를 꿈꾸다가 이제 백발의 바텐더를 꿈꾼다.

바텐더가 된 지 햇수로 18년이 됐다. 그동안 엄청난 양의 술을 팔고. 만들고. 마셨다. 열여덟 미성년자이던 시절 형이 데리고 간 bar에서 처음으로 칵테일을 마셨고 바텐더를 보았다. 술과 음악, 어른들의 세계를 구경했다. 

지하에 들어앉은 자그맣고 음침한 가게였는데 미혼의 남자 마스터가 아르바이트생과 주방 이모를 두고 수입맥주와 칵테일 따위를 팔고 있었다. 외국인 손님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그들은 맥주병과 술잔을 들고 자유로이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내기 다트를 던지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음악은 흐느적거렸으며 tv에선 모르는 외국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그런 곳.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이질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짜릿한 첫 경험을 한 뒤 그 당시 얼마 되지 않던 용돈을 긁어모아 혼자서 그곳을 들락거렸다. 오너 바텐더를 보며 저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해가 지나고 우연치 않은 기회에 바텐더에 입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게 지금까지 18년의 세월이 되었다.

▲ 백승대 450 대표

강산이 거의 두 번이나 변할 시간을 지하에서 루프탑까지 이 가게 저 가게를 전전하며 술을 만들고 파는데 집중했지만 타고난 반골 기질에 삐딱한 심성, 괜한 똥고집까지 있는 내가 술을 팔아 돈을 벌고 모으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직원들에겐 손님 편에서 행동하라 가르치고 무례한 손님에겐 직원의 인권과 자존감을 얘기하며 그들을 쫓아내기 바빴다. 취객들과의 멱살잡이, 드잡이는 생활이었고 파출소와 경찰서는 목욕탕 드나드는 만큼 정기적으로 드나들었다.

손님에게 맞는 일은 부지기수였고 깨지면 흉기가 되어버리는 술병들과 유리잔들에 숱하게 살점이 잘려 나가고 피를 보았다. 결국 손가락 하나를 다 펴지도 못하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술을 팔고 손님을 기다리며 칵테일을 만든다.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든 중년의 남자 바텐더가 되었지만 잘 될 때든 안 될 때든 나는 여전히 바텐더로 살고 있다. 가게를 몇 번씩이나 옮겨 다니면서. 18년 전 처음 품었던 진주 최고의 바텐더라는 꿈은 어느새 진주 최고령 바텐더가 되어버렸고 이제 동네에서 바텐더라는 사람을 찾아보기도 힘들어졌다.

그때 한국 최고의 바텐더를 꿈꿀걸, 세계 챔피언 바텐더를 꿈꿀걸. 촌스럽고 소박하게 동네최고의 바텐더가 꿈인 이십 대 초반의 청년은 이제 사십 대의 아저씨 바텐더가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바닥도 유행이 몇 번이나 돌고 돌아 지나갔다. 여성 접대부가 바텐더 행세를 하는 곳이 bar라고 인식되는 요즘에도 나는 여전히 bar를 지키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새로이 품은 꿈, “백발의 바텐더”가 되기 위하여 오늘도 가게 문을 열고 닫으며 책을 읽고 인터넷을 들락거린다. 자료를 찾고 공부한다. 열시면 인적이 뜸해지는 구도심. 죽어버린 상권의 동네 구석에 처박혀 간판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건물을 찾아 꾸역꾸역 밀고 들어올 한 사람을 위해 내 자리를 지킨다.

돈도 남들보다 못 벌고 매일 술 마시기 위해 하는 가게지만 동네에 이런 가게 하나쯤. 이런 정신 나간 바텐더 한 명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손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바텐더, 손님에게 유창한 언변으로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바텐더.

누구라도 좋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습관처럼 들려 좋아하는 술 한 잔 홀짝이며 넋두리할 수 있는 곳. 내 얘기를 들어주고 저녁은 먹었냐고 물어 봐주는 사람이 있는 곳. 때로 친구처럼 동생처럼 애인처럼 같이 늙어가는 사람이 있는 곳. 그곳이 bar다.

내가 사는 동네 우리 집 근처에 그런 사람이 있는 가게 어디 없는지 찾아보시라. 바텐더는 당신이 언제 어떻게 무슨 생각을 갖고 찾아오든 변함없이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그들은 그러려고 존재하는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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