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맥 입문기

맛은 단맛처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맛이 있고, 엄마의 된장찌개처럼 어릴때 만들어지는 맛이 있고, 커가면서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형성되는 추억의 맛이 있다.

고3 때 잠깐 중단됐던 음주가 대학에 들어 가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와 주당들의 술 이야기는 밤새 마셔가며 해도 끝이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 생맥주와 치킨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밥과 라이스가 다르듯이 닭과 치킨은 나에게 다른 의미이다. 나에게는 닭이 삼계탕이나 찜닭이라면, 치킨은 생맥주와 한 세트로 각인 되어있는 튀김닭, 즉 후라이드 치킨이다.

▲ 황규민 약사

요즘은 각종 튀김옷으로 새로운 자극이 가미 되었지만 내 기억에 80년대 중반의 치킨은 그런 것 없이 기름으로 튀기기만 했던 것 같다. 치킨 한 조각을 시키면 닭다리 하나 또는 닭날개 하나가 소금과 함께 따라나왔다.

생맥주 500cc, 치킨 한 조각, 소금 약간.

30년 전 지방에서 올라간 20대 초반의 촌놈에게 시원한 생맥주와 부드럽고 고소하고 기름진 치킨 세트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고 별천지였다. 나는 생맥주와 치킨을 그때 처음 만났다.

그러나 새로운 별천지는 쉽게 다가 갈수 없었다. 돈도 문제였지만 처음부터 맥주와 치킨을 먹을 수는 없었다.

선배들은 막걸리와 소주로 1차와 2차의 선별 과정을 거쳐서 살아남은 자들만 이끌고 3차의 치킨과 생맥주의 신세계로 안내했다. 물론 내가 선배가 되었을 때도 후배들에게 동일한 과정의 신세계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해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수업과 시험과 자연과학도로서의 실험과 시대정신의 실천으로서 (비록 가끔 이지만) 시위 참여도 열심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깨고 나면 어제 먹은 치킨과 생맥주의 그 황홀한 맛이 온전히 기억나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주말 학교 근처가 조용할 때면 혼자서 (또는 진짜 절친한 지방 촌놈 친구와 함께) 1, 2차의 과정을 생략한채 바로 생맥주 집에 가고는 했다. 아무 말없이 기쁨과 쾌감에 몸을 떨며 생맥주와 치킨의 맛과 향과 느낌을 뇌세포에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그 맛과 향과 느낌은 아직도 뇌세포에 그대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아직도 나에게 술은 생맥주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그렇게 순수하고 담백하지는 않지만, 달고 맵고 짠 튀김옷으로 변형되지 않은, 30년 전 추억을 불러올 만한 제법 괜찮은 치킨집을 발견했다.
물론 생맥주도 제법이다.

지금 그 사람들 이름은 잊었지만 30년 전 치맥의 맛과 분위기는 아직도 내 머리와 가슴에 남아있다. 그 맛과 분위기를 지금은 아내와 함께 즐기고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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