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들과 우리는 서로의 꽃이 된다. 평화가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김춘수, 꽃)“

그의 이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줄여서 ‘조선’이었다. 48년부터 조선이었으니 오래도 되었다. 같은 민족인 우리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조선이라고 부르는데 80년대 초반까지 우리만 북괴((北傀)라 칭했다. 위에서 끈을 달아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북쪽의 꼭두각시라는 뜻이었다. 위는 소련, 꼭두각시는 조선. 우리는 어린 나이에 그렇게 배우며 나이를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기네 구역에 들어왔다고 푸에블로호(68년)를 제멋대로(?) 납치하고 그 배에 타고 있던 미군의 뺨을 태권도 앞발차기로 찰싹찰싹 갈겨 제풀에 무릎을 털썩 꿇리는 결기의 사나이들이었다. 70년대 초반, 동네 형(고등학생)에게 그 얘기를 들으며 누가 옆에서 듣고 있나 조마조마했다. 그 덩치 큰 미군을 무릎 꿇리다니. 삼촌이 북에서 내려왔나. 신고를 해야 하나. 만화에서 보았던 고구려 싸울아비가 갑자기 생각났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햇빛 쏟아지는 운동장. 반공웅변대회. 뭣도 모르는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소리 높여 멸공을 외친 뒤 공책과 연필, 등사기로 밀어 조잡하게 만든 상장 등을 입상한 순서대로 나눠받아 가슴에 품고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가던 시절. 가면서도 우리는 외쳤다. “때려잡자 김일성!!!”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이어서 그는 다만 무찔러야 할 붉은 적(敵)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박흥준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해. 평양. 부르는 이름이 ‘북괴’에서 ‘북한’으로 바뀐 그들의 의장대가 “받들어 총”을 하며 “‘대한민국’ 대통령 로무현”을 외쳤다. 우리보다 먼저 그들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름이 불리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가서 꽃이 되었다. 2000년에 이어 분위기는 또 한 번 화기애애했고 ‘대통령 로무현’은 ‘고난의 행군’을 겪은 그들의 형편에 맞게 정성으로 차려진 대접을 융숭하게 받고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만들어 NLL 논란을 종식하기로 약속한 뒤 휴전선을 다시 넘어 돌아왔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어리석은 사람들 같으니... 민족의 시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잠시 동안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초등학생 시절. 무찌르자 오랑캐! 우리는 악을 쓰며 운동장을 돌았다. ‘중국’이 아닌 ‘중공’으로 배웠고 우리는 뜻도 모른 채 “싸우고 싸워서 세운 이 나라. 중공 오랑캐의 침략을 받아. 중공 오랑캐의 침략을 받아...” 경쾌하게 나풀거리며 고무줄놀이를 즐겼다. 남한 땅 비좁은 곳에서 거대한 중국을 오랑캐라 불렀으니 우리도 나름으로 자존심(?)을 세우고 그 쪽 아저씨들처럼 결기(?)를 내뿜었지 싶다. 또 한 번 나중에 알고 보니 ‘중공 오랑캐’는 무찔러야 할 오랑캐가 아니라 두 차례에 걸친 국공합작 시절부터 우리와 함께 일제에 맞서 싸운 동지였다. 물론 한국전쟁 때는 서로 총칼을 겨눴지만.

80년대 후반. 다시 동지라고 불러다오. 그러면 너에게 한달음에 달려가서 동지가 되어 줄 게. 노태우는 비록 군부독재의 후예였지만 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한 그의 북방외교는 오늘날 시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김영삼은 노태우보다도 못하고, 하물며 이명박근혜는 노태우의 앞발도 핥지 못한다. 노태우가 없었다면 남북기본합의서도 없었고 조미정상회담도 한참은 늦춰졌을 것이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이데올로기를 장악하고, 매체를 틀어쥐고, 끊임없이 간첩을 조작한 그들(박정희 전두환 등등) 탓에 우리는 오랜 세월 형제를 몰라보고 꽃을 꽃이라 부르지 않았다. 통혁당이며 인혁당이며 남민전이며 민청학련이며, 서승이며 서준식이며 김남주며 이철이며, 안재구와 김근태 박종철과 이한열 등등의 이름들이 그렇게 역사에 새겨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알지 못 했다. 이름만 불러주면 되는데. 북조선이 아니라 그냥 조선이라고 불러주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그걸 모르는 우리에게 질곡(桎梏)의 세월은 참혹하게 이어졌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현충원을 먼저 참배한 그들이 이번에도 빗장을 먼저 열었다. 우리의 화답이 남았는데 우리는 아직 그들의 혁명열사릉을 참배하지 않고 있다. 쓰라린 지난 세월, 왜 이러는지도 모르고 목숨을 바쳐 싸운 것은 인민군이든 국방군이든 똑같다. 스러져 간 빨치산이든 전몰군경이든 그들의 희생을 똑같이 기려야 한다.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프랑코 이후의 스페인이 그랬던 것처럼.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자. ‘북괴’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다. 그냥 ‘조선’이다. 유엔에 함께 가입했고 나름의 정체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들은 한반도의 북쪽을 오랜 세월 실효적으로 지배해 왔다. 그들의 이름을 ‘조선’이라고 부르자. 언론이 먼저 앞장서자. 마음속의 휴전선을 먼저 지우자. 김씨 왕조를 그들이 쳐부수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하든, 체제를 그냥 유지하며 자본제적 성장에만 집중하든 그 다음의 몫은 오로지 그들에게 있다. 우리는 그냥 이 땅의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으로 그들을 간접적으로만 도와주자. 함께 가자.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들과 우리는 서로의 꽃이 된다. 평화가 된다.

*사족 - 김춘수 선생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0년대 초반에 ‘꽃’이라는 절창을 일찌감치 읊어 우리의 사표가 되었다. 비록 30년 뒤에는 민정당 국회의원을 하며 전두환 헌정시를 짓는 등 몸을 버렸지만. ‘꽃’은 ‘꽃’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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