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민심의 향배가 궁금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방선거 지원유세 포기를 선언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홍 대표가 지원유세를 한 지역의 후보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홍준표 패싱’이다. 지원이 필요없다고, 안 오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손사래를 치는데 어거지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1야당 대표가 선거를 불과 열흘 남겨놓고 현장의 거부로 지원유세를 포기한 것은 정치사상 초유의 사태다.

이렇게 된 것은 홍 대표의 일련의 정제되지 않은 막말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비근한 예로 잇따라 열리고 있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은 제쳐두고라도, 최근 지도부더러 백의종군할 것을 권유한 전 원내대표 정우택에게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며 일축한 것을 들 수 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들출 것도 없이 한 마디로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이다. 얼마 전까지 자유당을 같이 이끌었던 파트너를 거두절미하고 ‘개’에 비유했으니, 이를 이해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도 자유당 대표 홍준표의 입심은 여전하다. 지원유세를 중단한 다음 날, 난데없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의 극우 보수세력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미국은 무오류의 국가’, ‘미국 대통령은 무비판 대상’이라는 금기를 깬 것이다.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 이렇게 순조롭게 진척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홍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미북회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다. 남북은 합작하여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고 있고 미북은 합작하여 미 본토만 안전한 ICBM 폐기만 협상 하려고 하고 있다.”면서 1910년 한일병합 전에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과 한국을 식민지배하는 것을 양해한 태프트-가쯔라 협약과 애치슨 라인 선포 등에 북미정상회담 합의를 비교했다.

그러니까 홍준표의 인식에 따르면 미국이 북한과 합의한 것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지배하던 한국을 북한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도록 한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이야 말로 한국 극우세력의 대미의존적 사대주의가 약여하게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외교도 장사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호언장담하던 북핵 폐기는 간데없고, 한국의 친북 좌파 정권이 원하는 대로, 한국에서 손을 떼겠다는 신호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동안 쉬지 않고 다양한 부문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음에도 약발이 먹히지 않던 끝에, 이제 드디어 남한을 배신한(?) 미국 대통령을 도마에 올린 것이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홍준표는 올 초에도 미국을 직접 찾아 전술핵 도입을 주장하는가 하면, 평창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이라고 음해하는 주장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이를 ‘남북 위장평화쇼’라고 폄훼하는가 하면,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두고 ‘북핵 폐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적은 것’이라고 모욕하기까지 했다.

국민감정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홍준표의 삐뚤어진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퇴할 것과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잇따라 올라왔다. 정치인들의 비판도 줄을 이었다. 민주당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에서 “한반도에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속이 뒤틀려도 좀 참으시라”고 조롱했으며, 이재명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도 “북한에 돈 줘가며 총격 도발을 부탁하고 시도 때도 없이 남북대결과 긴장을 부추기며 안보악용 대국민 협박정치를 해왔던 적폐정치세력다운 태도"라며, “진정으로 판문점 선언이 위장평화쇼로 보이고 휴전선의 총격과 포성이 그립다면 대한민국을 떠나시라 말하고 싶다”고 했다.

북미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던진 충격은 비단 자유당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유당과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조선일보에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자중지란이 일어난 것이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자유당 국회의원이 양상훈 주필의 파면을 요구하는 편지를 방상훈 사장에게 띄웠고, 조선일보 기자들은 이를 다시 언론자유 침해라고 맞받아치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 강효상은 “양 주필은 칼럼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은 기적이니 북한 체제의 붕괴를 기다려보자는 주장을 폈지만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일어나기 힘든 기적”이라며 “양상훈 칼럼은 패배주의자들의 말장난이고 속임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미 당국자들이 이 칼럼을 보고 한국 보수의 한 축인 조선일보가 북한에게 항복했다는 시그널로 인식하게 되면 그 책임을 어쩌려고 하느냐”면서 “조선일보가 역사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문제가 된 칼럼 <역사에 한국민은 '전략적 바보'로 기록될까>(조선일보 주필 양상훈, 2018.05.31.)는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하면서 국제사회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북한을 이스라엘과 같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취급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강효상도 지적했듯이 그렇게나 철석같이 믿었던 미국의 태도 변화(?)로 조선일보는 풀이 많이 죽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이 핵의 실체를 속이겠다고 작정하면 막을 방법이 없으나, 북에 국제 자본이 들어가면 개혁·개방해 폭력성·위험성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겨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북이 무너질 수도 있다.”, “지금 북핵 급류는 어느 굽이를 돌고 있다. 이 고비에서 시간과 역사는 결국엔 노예제 스탈린 왕조가 아니라 자유와 인권의 편일 것으로 믿을 뿐이다.” 강효상은 이 칼럼이 청와대 대변인의 공개적인 협박(?)이 있은 지 이틀 뒤에 나온 점을 지적하고 조선일보가 백기투항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규정한 것이다.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합의가 보수세력에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충격으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대미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또 다른 사례가 있다. 4일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자유당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이 체결돼, 만약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한국은 “적화”될 것이며, 그럴 경우 자신은 북한에 의해 총살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김문수의 답변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듯, 질문을 던진 기자가 “왜 미군이 철수하면 공산화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묻자 김문수는 “북한을 막아낼 힘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게 한국의 극우 세력의 대표적인 대미, 대북 인식이다. 이들은 매년 북한보다 엄청나게 많은 국방비를 수십 년간 지출해오면서도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유사시 북한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미군 철수는 상상할 수조차 없으며, 주권국가라면 당연히 행사해야 할 작전통제권도 우리가 행사할 수 없는 권한이다.

지난 2006년 12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당시 대통령 노무현이 예비역 장성들을 앉혀놓고 질타했던 것이 바로 그 내용이다. 북한보다 10배도 훨씬 넘는 국방비를 근 20년간 써왔는데도-지금은 30년이 넘었을 것이다-국방력이 약하다면,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느냐는 것이다. 김문수는 무슨 근거로 한국이 유사시 북한을 막아낼 힘이 없다고-북한보다 최신형 무기를 훨씬 많이 갖추었는데도 불구하고-생각하는 것일까? 그 뿌리깊은 패배주의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그리고 그 이전에 왜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에 의해 공산화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남-북-미 정상회담은 이렇게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간 완강하게 고착돼 온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일대 변화를 불러올 사건이다. 기존의 미국 외교 기득권층이 좌우해오던-군산복합체만이 한반도의 불안한 정전상태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대한반도 정책이 트럼프라는 예측 불가능하고, 자국의 이해타산을 앞세우는 인물의 등장에 의해 새로운 국면이 열리려 하고 있다. 미국 사회의 주류는 북한이 체제유지의 수단인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북한은 자체모순으로 붕괴할 것이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 같은 기존의 두터운 벽을 뚫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곳곳에 지뢰밭이다. 동시에 남북분단 이후 70년 만에 찾아온 천재일우의 호기이기도 하다. 한국과 미국 사회 모두, 처음 접하는 사태에 당황하면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자신이 비주류로 미국 내 주류세력의 공격대상이다. 북한이 아무런 비핵화 양보 조치를 하지 않았는데도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중지시키고 관계 개선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사한 현상이 앞에서 본 조선일보 출신 국회의원의 주필 파면 요구에서 드러난다. 구보수와 신보수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민심의 향배가 드러날 것이다. 분열보다는 화해를, 전쟁보다는 평화를 추구하는 세력이 다수를 점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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