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짓’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지난 14일 기자실을 찾은 이창희 시장은 또 한 번 막말을 쏟아냈다. 자신의 잦은 목욕탕 출입을 지적한 언론을 ‘사이비’로 규정하고, 수개월 동안 추적해 사진을 찍은 행위에 대해 ‘사찰’이라는 표현도 썼다. 그러면서 기자단에 가입 안 된 기자들이 기자실에 들어오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아무나 와서 취재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보도를 한 기자에게 반말은 기본이고, 나이가 새까맣다느니, ‘그럼 야 이 새끼야라고 할까’라며 저잣거리 잡배들이나 쓸 말을 연달아 쏟아냈다. 불과 2년 전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시의원에게 ‘까불고 있어’라며 막말을 한 시장이니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 서성룡 편집장

그런데 유독 ‘사이비’라는 단어가 목에 컥하고 걸린다. 이창희 시장 눈에는 시설과 인원, 규모를 번듯하게 갖춘 잘 알려진 언론사 외에는 모두 ‘사이비 언론’으로 비쳤을 테다. 아니, 그보다는 진주라는 고을에서 제왕적인 위치에 있는 자신에게 머리 조아리지도 않고, 겁도 없이 비판기사를 써대는 ‘버르장 머리 없는 기자’는 모조리 ‘사이비’라고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그날 이창희 시장의 입에서는 ‘이명박’이라는 구속된 전직 대통령의 이름도 나왔다. “이명박이 불법사찰을 했느니 보도를 해 놓고 자기들은 그렇게 해도 되나?”라고.

공교롭게도 8일 후인 지난 2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구속수감됐다. 110억 원대 뇌물 수수와 340억 원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다. 비리 혐의와는 별도로 ‘다스’ 사무실(영포빌딩)에서는 이명박이 언론 관리에 쓴 접대비 출금전표가 발견돼 주목을 받고 있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의하면 출금전표에는 2006년 8월 한 달 동안 기자들을 네 번 접대하며 206만6천200원을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접대 명단에는 연합뉴스 추 아무개, 한국일보 김 아무개, 조선일보 권 아무개, 동아일보 박 아무개, YTN 김 아무개 등 기자 5명의 실명까지 등장한다.

다음 달 출금전표에도 여지없이 기자들 밥값으로 쓴 돈들이 기록돼 있었다.

이 전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을 지낸 김유찬씨에 의하면 이명박은 언론사 기자들에게 술접대와 성접대, 별도의 촌지까지 돌려 한달에 약 4천만 원씩 썼다고 한다.

나는 늘 왜 검찰과 언론은 부정한 권력에게는 무력하다가도, 정도를 걸으려는 권력에는 날선 칼을 들이대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건 너무 쉬운 산수 문제였다. 그들에게 ‘옳고 그름’은 아무런 관심사가 아니었다. ‘입금’이 곧 선이고 ‘불입’은 곧 악인 것이다.

이런 사정은 지방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비판하면 기자고 시의원이고 가리지 않고 막말을 퍼붓는 ‘제왕적인’ 시장이 존재할 수 있었던 배경에 침묵하는 언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장이 기자실을 찾아 사이비 언론 출입봉쇄 ‘지시’를 내리고, 비판 기사를 쓴 기자에게 막말을 쏟아붓는 동안 출입기자들은 누구하나 제지하거나 항의하지 않았다.

어떤 기자는 마치 시장의 부하직원이라도 되는 양, 타 자치단체 예까지 들어가며 맞장구를 쳤다. 그 장면을 생각하니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단디뉴스>가 수 차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진주시는 지난 3년간 기자들 밥값으로만 1억원에 이르는 돈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지출한 밥값과 맞먹는 돈이다.

이창희 시장이 내뱉은 '사이비'라는 말을 다시 곱씹어 본다. 

‘겉으로 그럴싸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을 일러 ‘사이비'라고 한다.

‘사이비’라는 말은 얼핏 외래어 같기도 하지만 맹자에서 유래한다. 공자가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좋은 사람이 아니다’고 말한 뜻을 제자에게 설명하면서, ‘공자는 같아 보이지만 아닌 것을 미워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고 말한다.

공자는 자로편에서 ‘착한 사람은 좋아하고 나쁜 사람은 미워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흔히 지식인이 가져야 할 덕목인 ‘당파성’을 설명하는 예로 인용된다.

다시 말하자면 맹자가 말한 ‘사이비자’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구분 없이 두루두루 인정받는 자를 말한다. 오늘날에 빗대어 말하자면 비판할 대상을 제대로 비판하지 않고, 두루두루 ‘마사지’ 해 주고 대접받는 언론인에 해당한다.

행색은 언론인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권력 주변에서 접대와 촌지를 챙기는 기자들이 바로 ‘사이비’인 것이다. 겉으론 올바른 척 권위 있는 척 하지만 실상은 시정잡배보다 못 한 도덕률과 탐욕으로 불법을 일삼는 정치인들도 물론 ‘사이비’다.

애국자인 척, 국민을 섬기는 척 하면서 뒤로는 온갖 불법과 탈법, 전횡을 일삼으며 부정한 돈을 챙기던 두 전직 대통령은 지금 감옥에 있다. 그들에게 뒷돈 받고 귀여움 받던 부끄러운 기자들 이름도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사이비짓’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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