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별아가씨> 펴낸 청년 예술가 이성륙을 만나다

2014년 봄의 길목에서 작가 이성륙 씨를 처음 만났다. 어느 인디가수 공연의 뒤풀이였다. 마른 체구와 수수한 얼굴이지만, 유난히 맑은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그림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수줍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남 창원 창동의 작은 갤러리에서 소박한 개인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해서 가보게 되었다. 28살 젊은 작가답게 개성이 넘치고, 여백이 있는 수채화는 나의 마음을 훔쳤다.

우리는 예술가의 철학이 느껴질 때 그의 작품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틀에 박히지 않는 바람 같은 그의 그림과 작품들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그의 전시는 꾸민 것이라고 없고, 마치 아이들이 그려놓거나 빚어놓은 듯했다. "단순한 것은 언제나 사람을 매혹시킨다. 어린아이와 동물의 세계에서 찾을 수 있는 매력도 그 단순함 속에 있다"라고 파스칼은 말하지 않았던가.

그중 밀양의 송전탑 문제를 담아낸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밀양 할머니들에게는 총과 칼이 없다. 밀양에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들이 살아온 땅에 대한 의지와 눈물, 뿌리 받은 사람들의 숙명적인 그리움을 그는 밀양에서 보았다고 했다. 성륙 씨의 캔버스에는 그림이 아니라, 밀양의 생명들을 살리려는 마음과 울음이 담겨 있었다.

지난 2014년 6월 10일 밀양의 송전탑 반대 농성 현장에는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경찰들이 들이닥쳤으며, 고향을 지키겠다는 할머니들의 투쟁의 공간으로 쓰인 농성장이 부서졌다. 할머니들과 연대자들은 몸에 쇠사슬을 감았다.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끌려나온 사람들 앞에, 밀양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망연자실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아줌마이지만,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산 속 깊은 곳의 밀양 농성장을 방문한 적이 있던 터라 현장의 참혹함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아침에 그 뉴스를 접하고, 멍하던 순간 성륙 씨가 밀양 할머니들을 그린 그림들이 떠올랐다.

성륙 씨에게 연락을 하고,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밀양 할머니들을 위한 티셔츠를 함께 제작해보자고 했다. 성륙 씨는 흔쾌히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했다. 밀양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통해 티셔츠를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밀양대책위에 '밀양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후원금을 보냈다.

그리고 2015년 5월 1일, 그가 그동안 꾸준히 작업해온 <별아가씨>란 전자책 북콘서트를 다녀오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별아가씨의 탄생 : 별아가씨 작업중인 하는 이성륙 작가의 모습입니다. 색종이를 칼로 도려내여 예상치 못한 모습이 나오기도 하는것이 재미라네요. ⓒ 콩밭출판사

- <별아가씨>는 어떤 작품인가요?

"2013년 5월부터 시작해 2년여간 공들인 작품입니다. 구상 초기에는 '바다원숭이'란 작품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녀가 저의 고백을 거절하면서 실연의 아픔 때문에 별을 사랑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실연의 아픔이었어요. 그녀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을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월급쟁이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어요.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그녀 앞에만 서면 제 자신이 초라하고 무능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제 짧은 인생의 큰 사건이었어요. '아, 나도 이런 마음이 드는구나', '끝없이 욕망하는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기도 하는구나'라고요.

실연도 어쩌면 삶의 축복일 수 있단 생각이 듭니다. 그때의 경험으로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갖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큰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나를 성찰하는 뼈아픈 시간이 되었어요. <별아가씨>는 색종이 작품으로, 누구에게는 사랑이거나, 혹은 꿈이거나, 끝끝내 이루고 싶은 인생의 큰 꼭짓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 가난한 예술가의 고백을 듣고 싶습니다. 3포세대, 29살인 성륙씨도 자유롭지 않을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편안한 아스팔트길이 아니라 흙길을 선택한 것인가요? 교원 자격증도 있다고 알고 있어요. 미술교사라는 직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나요?

"흙길이면 산책하기라도 좋죠. 제가 가는 길은 발이 한번 빠지면 다시는 앞으로 나올 수 없는 뻘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일 하면 돈 못 번다, 결혼 못 한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 제일 많이 걱정하고,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정작 본인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생각하고, 두 개를 다 가지려고 하는 순간 힘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시골에서 텃밭 일구며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며 살아가신 권정생 선생님처럼 살면서, 전두환처럼 돈과 권력을 가지며 살 수 없는게 당연하잖아요. 근데 연애를 못하는 것은 제 능력 부족이고요. 저는 초식남은 아니고요, 지금의 상황은 그림 그리고, 그림책 만드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여자친구의 절실함은 덜한 것 같아요.

미술교사에 대한 부분은 어머니께서 미래를 위해서 저에게 강력하게 주문하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일단 교생실습을 하고, 제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미술교사는 없던 것으로 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일단 임용고사는 한번 꼭 보라고 했어요. 보긴 했지만 마음이 없던 터라 낙방했어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제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깔끔하게 포기했어요."

- 원래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와 있다고 하네요. 성륙 씨를 지지해주는 여자가 곧 나타날 것 같은데요.

"오늘 들은 말 중에 가장 희망적인 말이네요, 하하."

▲ 애들아, 밥은 먹고 싸워야지: 이성륙 작가가 그린 밀양 할머니들에 대한 그림 중에서 ⓒ 콩밭출판사

- 콩밭출판사에서 <별아가씨>를 함께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콩밭'에 대한 이야기 좀 해주세요.

"콩밭출판사는 2014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창작자 중심의 그림책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첫 출판으로는 <노순천의 하이든 인 네이쳐>라는 책을 발간했었습니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지만, 꾸준히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종이책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과 어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해 <별아가씨>는 전자책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틀을 가다듬는 작업을 하다보니, 총수입이 6400원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만큼의 호응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가야 할 길이 막연하지만, 콩밭출판사를 응원해주는 친구들, 독자들을 보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기도 합니다. 실패할까봐 불안하거나 전전긍긍하는 마음은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진심을 담아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 그림책 작업 말고 또 다른 활동하시는 게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밀양시 하남읍 소재 작은 도서관에서 그림 수업을 1년 정도 해오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약 10명 정도의 수강생들이 모여요. 인생의 과업을 한 단락 마무리하시고, 그저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분들은 제게 큰 울림을 주세요.

어느 분의 경우 새벽 3시에 매일 일어나서 그림을 그리시는 걸 보면, 그 순수한 열정 앞에 제가 감동하게 되어요. 그분들이 삶의 바라보는 자세, 늘 열려 있는 자세, 늘 새로운 것을 향해 열려 있는 자세 등을 통해 오히려 그 수강생들을 제 마음속의 선생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 얼마전 세월호 1주기였잖아요. 평범한 20대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세월호 사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얼마전 김민기 씨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김민기 씨는 '세월호, 나는 그 죽음을 묘사할 자격이 없다'라고 하셨더군요. 저도 그 말에 동감합니다. 창원 지역에서 <금요일엔 돌아오렴> 세월호 추모 북콘서트를 가게 되었습니다. 콘서트장 전체의 가슴 먹먹한 슬픔, 더 이상 감정적으로는 세월호 사고를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세월호는 슬픈 이야기, 눈물을 자아내는 이야기이기 전에, 객관적으로 진실규명이 이루어져야 하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던 2014년 4월 16일을 뒤돌아보려고 해요."

▲ 별아가씨 첫 장면입니다. 색종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록 섬세한 그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 콩밭출판사

- 현재 경남도지사가 성완종 리스트 관련하여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 중이지요. 높은 자리 양바들의 권력형 비리들을 보면 허탈하지 않나요?

"크기의 차이지 자기의 이권을 위해 비리를 저지르는 일은 주변에서 비일비재하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지역의 젊은 그림 그리는 친구들과 함께 '난세영웅전'이라는 전시를 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상 제일 극악무도한, 현존하는 제일 나쁜 놈, 지구상의 나쁜 놈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 안 했을 뿐이지, 마음속으로는 병든 자신을 만나기도 합니다.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교체된다고 이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먼저 제대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공공미디어 단잠이 <오래된 희망>이라는 밀양 송전탑 반대 기록 영상을 만들면서 함께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때 허성용 감독님께서 저를 할머니들에게 그림 그리는 친구라며, 밀양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을 거라고 이야기해주셨어요. 할머니들이 손수 지어주시는 밥을 먹으며, 할머니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밀양 할머니들의 기나긴 시간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나누기 위해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는데, 조만간 준비해보려고 해요.

사회정의나 선한 의지를 담은 작품이라 해도, 어렵게 표현된다면 그건 좀 아쉬운 것 같아요. 어린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 늘 고마운 분이 있으면, 그분에게도 한 말씀 전해주세요.

"사실, 제 기사가 나오면 저보다 더 좋아하시는 분이 바로 저희 어머니세요. 겉으로 표현은 잘 못하지만, 늘 묵묵히 저를 지켜봐주시는 어머니가 없었다면 아마 오늘의 저도, <별아가씨>도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어머니는 참 강한 분이세요. 지금도 마산의 작은 공장에서 일하고 계세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몸이 아프신 날에도 단 한 번도 결근하지 않으시고 아침이면 일터로 향하세요. 어머니는 얼굴은 고우신데, 손이 마치 다른 사람손처럼 너무 거칠어요. 어머니의 거친손이 살아오신 고된 나날을 이야기 하고 있죠. 저희 형과 저를 뒷바라지 하시느라 경제적으로 늘 여의치 않았어요.

한 번은 빨래줄에 걸린 어머니 팬티에 여기저기 구멍이 난 것을 보고는 마음 한편이 짠하기도 하고, 또 '어머니는 수더분하셔서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구나. 예쁜 것에는 관심이 없으시구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꽃장식이 달린 예쁜 신발을 구입하셔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는 '아~ 우리 엄마도 꽃을 좋아하는 아름다운 여자이구나' 생각했어요.

어머니 뿐만 아니라, 할머니와 삼촌도 제게 큰 사랑을 주신 분들이세요. 어느 시장 좌판에서 생선을 팔면서 손님이 없는 틈틈이 늘 책을 읽고 계시던 할머니. 할머니 소원이 '섬에 들어가서 책만 하루 종일 읽으면 좋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셨어요. 또한 평생을 몸으로 살아오신 삼촌, 나무를 만지고 집을 짓는 삼촌.

어린 시절 그분들을 보면서 삶의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인생은 덧없지만, 삶을 대하는 절절한 의지들 속에서 저 또한 그분들의 모습을 배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언젠가 할머니, 삼촌과 어머니를 제 캔버스에 꼭 담아내고 싶어요."

<별아가씨>는 전자책이라는 특성을 살려서 동화 그림 장면마다 움직임을 넣어 마치 살아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콩밭출판사의 대표인 노순천 작가가 몇 해 전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작곡한 기타 연주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부산 지역 싱어송라이터 '이내'가 아련한 목소리로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고, 마음속의 아련한 사랑과 꿈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어른도 읽어보면 좋은 그림책이다.

* play store에서 별아가씨를 검색하시면, 스마트폰에서 바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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