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선거구 확대는 공익의 자리에 사익이라는 이름을 채운 것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드려면 게임의 룰을 정하는 자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과 그 주변의 이해관계에 입각해 게임의 룰을 정하다보면 그 룰이 특정세력에게 유리하게 짜이곤 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정의론>의 저자인 존 롤즈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지의 베일'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무지의 베일'이란 게임의 룰을 정하는 당사자가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떠나 오직 공정성과 합리성만을 필두로 의사결정을 하게 하는 장치다.

게임의 룰을 정함에 있어 '무지의 베일'을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사람과 세력에는 각자가 처한 상황이 있으며, 그 상황에 따른 이해관계를 룰에 반영해 이득을 취하고 싶어 하는 이유다. 인간이란 본디 이해타산적인 존재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러한 경향은 일견 이해된다.

하지만 공적영역에서 '게임의 룰'을 정할 때 우리는 '무지의 베일'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무지의 베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익에 앞서 공익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공정'이 있어야 할 자리는 '특권'과 '반칙'이 대신하게 되며, 이는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 김순종 기자

지난 16일 경남도의회는 경상남도 시군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4인 선거구를 대폭 늘려 제출한 경남지역 시군의원 선거구 획정안을 수정, 가결시켰다. 이들은 수정안에서 2인 선거구의 규모를 지난 2014년 지방선거보다 더 확대했다.

이는 선거구를 획정하는 도의회가 '무지의 베일'의 원칙을 철저히 저버린 것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4인 선거구는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결정을 수용해 적은 수의 시민이 선택한 후보자를 의회에 보내는 기능을 한다. 반대로 2인 선거구는 한 지역구에서 두 명의 당선자만을 선출하기에 거대정당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를 낸다.

최근 이재명 성남시장(더불어민주당)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1,2당 공천을 받으면 살인자도 당선이고, 공천 못 받으면 공자님도 낙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 시장의 말처럼 2014 지방선거에서 전국 기초의원 지역구 당선자 가운데 87.2%가 거대 두 정당 소속 출마자였던 것은 2인 선거구가 많았던 탓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번 시군의원 선거구 획정과정에서 2인 선거구 확대를 고집한 것은 지난 2014년 지방선거와 같은 결과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는 이유다.

민주주의란 다수결의 원리에 기초하지만 소수자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짓밟는 게 아니다. 2006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며 시군의원 선거구가 중대선거구제로 바뀐 것은 지방의회에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의원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민주주의를 지역에서 한 발 더 확충시키기 위해 소수의견이 의회에 반영돼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이 다수인 경남도의회는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대변할 후보를 의회에 보낼 4인 선거구를 대폭 줄이고 2인 선거구를 확대했다. 한경호 경남지사 권한대행이 이후 제의를 요구했지만, 압도적인 수의 논리로 수정안을 가결시켰다. 그들의 행위가 '폭거'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2018년 지방선거의 룰은 특정세력의 입맛에 맞게 결정됐다. 그리고 그 결정의 대가는 이제 도민들이 오롯이 져야 한다. 이번 결정으로 도민들은 자신들의 다양한 정치적 이해를 대변할 대표를 가지기 힘들어졌다. 이는 공익을 추구하며, 공정한 게임의 룰을 설정하기 위해 '무지의 베일'을 활용해야 하는 자들이 그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해만을 좇기 바빴던 이유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경남도민들은 누가 이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정했는지, 그리고 그 룰을 정하는 권한을 그들에게 준 것이 누구인지 잊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4년 뒤 또 다른 누군가가 공정의 가치가 가득해야 할 자리를 '사익'과 '특권'이라는 이름으로 채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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