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캔을 들고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자.

"4캔에 만 원? 12캔에 만 원??"

요즘 광고나 마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문구들이다. 4캔에 만 원이라는 건 수입 캔맥주 4개에 만 원이라는 건 알겠는데 12캔에 만 원은 또 뭐란 말인가? 만 원에 12캔이나 주면 맥주회사는 남는 게 있나? 질이 떨어지니 싸게 파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지만 싸니까 일단 한 번 사볼까 하고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맥주 냉장고 앞에서 호갱이 되지 않을 몇 가지 사실을 알려 드리려 한다.

수입 캔맥주는 어떻게 500ml 4캔에 만 원이 가능한 것일까? 국산 맥주의 경우 출고가가 거의 정해져 있기 때문에 소매점에서 출고가 이하로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세청에서 가만두지 않는다. 수입 캔맥주의 경우 수입할 때 수입 원가를 낮게 책정하여 적은 세금을 부과받은 후 판매가를 높게 설정하면 그만이다.

▲ 백승대 450 대표

그런 뒤 소매점에서 몇% 할인 또는 얼마 할인이라고 광고해 버리면 상대적으로 국산 맥주에 비해 할인율이 높아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가뜩이나 국산맥주는 맛이 없는데 이름난 수입 캔맥주가 가격도 저렴해 보이니 소비자의 선택이 4캔에 만 원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 녹색 코끼리가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12캔에 만 원은 또 무슨 소리일까? 하이트진로에서 작년에 출시한 "필라이트"라는 제품인데 만 원에 12캔이라고 하더니 벌써 1억 캔을 팔았노라 으스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 라이트는 맥주가 아니다. 법적으로 맥주, Beer라고 표기할 수도 없다. 흔히 발포주라고 부르는데 맥주의 핵심 재료인 맥아(보리)의 함량을 낮추거나 옥수수, 고구마 등의 재료들을 첨가하여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발포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되어 있다. 맥주가 아니라 기타주류로 분류되면 맥주보다 훨씬 적은 주세율이 적용된다. 맥주가 72%의 주세를 부담하지만 기타주류는 30% 주세가 부가되므로 맥주에 비하여 엄청난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맥아의 함량을 줄여 제조원가를 낮추는 대신 좋은 홉을 썼노라 말장난을 하지만 국산 맥주와 맛 차이가 크지 않고 알코올 도수는 오히려 조금 더 높으니 소비자로부터 '가성비 갑'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발포주는 96년 일본에서 출시되었고 이십여 년이 지난 현재 시장점유율이 맥주를 위협할 수준에까지 올라와 있다. 주머니는 가볍지만 취하고 싶은 젊은 소비자를 위한 제품이고 불경기의 산물로 탄생하였다. 현재는 알코올 도수를 점점 높여가며 싸고 적게 마셔도 취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이제 발포주 시장이 갓 시작된 우리나라는 앞으로 발포주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해갈지 두고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4캔에 만 원이든 12캔에 만 원이든 결국은 다르지만 같아 보이는 것. 세금에 따른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4캔에 만 원 하는 수입 캔맥주를 마시든 12캔에 만원 하는 발포주를 마시든 그건 오롯이 소비자의 선택이다. 하이트 카스만 마시던 우리에게 수입 캔맥주와 발포주라는 다른 선택이 생겼고 그 폭이 점점 다양하고 넓어지고 있다.

구미에 맞게 골라 마시며 국내 맥주회사들이 어떤 제품과 전략으로 대응할지 느긋하게 지켜보면 그만이다. 손에 캔을 들고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자. 그것만큼 재미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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