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Skateboard P X Snoop D. O. Double G, 고급스럽고 세련된 두 개구쟁이들의 말이 필요 없는 조합

5월 12일, 여행을 끝내고 평화로운 기분으로 부산으로 돌아오던 나는 버스 안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스눕 독의 신보 소식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초록색 배경에 아기자기하게 표현된 관목들과 묘한 느낌의 파란색 개. 감각 있는 앨범 아트부터 마음에 들었다. 중학생 시절, ‘Drop It Like It’s Hot’으로 순식간에 내 취향에 큰 변화를 이끌었던 스눕 독과 퍼렐 윌리엄스가 제대로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사고를 낸 것 같다. 음반에 수록된 전반의 곡들을 퍼렐과 넵튠즈(Neptunes)의 동료 멤버인채드 휴고(Chad Hugo)가 맡아 그들의 색채로 마무리를 지었다.

2002년 발매된 Snoop Dogg의 [Paid Tha Cost To Be Da Bo$$] 음반 속 ‘From Tha Chuuuch To Da Palace’, ‘Beautiful’, 2004년 발매된 Snoop Dogg의 [Rhythm & Gangsta] 음반 속 ‘Drop It Like It’s Hot’, ‘Let’s Get Blown’, ‘Perfect’, ‘Signs’, Pass It Pass It’, 2006년 발매된 Snoop Dogg의 [The Blue Carpet Treatment] 음반 속 ‘Vato’, 그리고 같은 해 Pharrell의 솔로 데뷔 앨범인 [In My Mind] 속 ‘That Girl’에서 그려져 왔던 스눕 독과 퍼렐의 환상적인 조합은 이미 증명이 되고도 남은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도기 독의 물 흐르듯한 읊조림 래핑과 고급스러운 비트감을 좋아했었고, 예술에 있어서는 퍼렐 윌리엄스가 언제나 내게 가장 큰 영감 덩어리였기 때문에 둘의 콜라보가 싱글로 하나씩 공개될 때부터 기대감이 충만했었다. 스눕 독이 2012년 자메이카 여행 이후 레게의 기운에 매료되어 이름까지 ‘Snoop Lion’으로 바꾸고 나섰을 땐 마음속에 번지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자(Lion)의 역할을 할 때도 있고 이렇게 다시 개(Dogg)로 돌아올 때도 있으니 음악적으로 다양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아티스트라 생각하고 그의 행보를 흡족하게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첫 트랙에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따스한 석양을 닮은 하모니카 소리와 퍼렐 특유의 음성이 미드템포 속에 녹아 흐르는 ‘California Roll’이 자리하고 있다. 스티비 원더는 스눕 독의 전화 한 통에 곧바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제목만 들어서는 예전에 스눕 독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케이티 페리(Katy Perry)의 ‘California Gurls’가 생각이 난다. Katy의 캘리포니아 노래가 트로피컬한 분위기를 냈다면 Snoop Dogg과 Pharrell의 캘리포니아는 좀 더 부드러운 도시의 느낌을 가졌다. 마음을 녹여내는 편안함에 더해진 세련미와 알 수 없이 들뜨게 만드는 무드가 잔뜩 버무려져있다. ‘Girl, you could be a movie star in Los Angeles. Get yourself a medical card in Los Angeles.’ 하는 파트에 함께 흐르는 스티비의 하모니카 소리도 안성맞춤이다. 둘은 얼마 전 TV 프로그램 “The Voice”에서 이 곡의 무대를 선보였는데 이 때 퍼렐의 표정을 잘 살펴보면 오랜 친구와 함께 하는 무대에 퍼포먼스를 넘어선 행복감이 만연하게 드러나 있다.

LA에 대한 사랑은 두 번째 트랙 ‘This City’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망울거리는 신디음이 로스 앤젤레스의 화려한 야경 속 불빛들을 형상화한다. 당장 LA가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동네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어도 비슷한 기분이 든다. 음악이 부리는 마법이란! 이 노래는 래핑도 퍼렐의 스타일을 따라가는데 상대방이 스눕 독이라서 더욱 자연스럽게 서로의 스타일에 합체가 되는 것 같다. ‘담백함’과 ‘블링블링’을 이렇게 잘 섞는 건 아무래도 퍼렐이 가장 영리하게 해내는 듯하다.

세 번째 트랙 ‘R U A Freak’는 이전에 ‘Sensual Seduction’과 찰리 윌슨(Charlie Wilson),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Signs’가 묘하게 섞인 것처럼 들린다. 두 곡 다 참 좋아하는 노래라 그런지 이 트랙도 흡족하게 들었다. 보컬리스트의 역할에 가까운 스눕 독의 음성에 백업 보컬이 함께 따르니 상당히 매력적이다.

네 번째 트랙 ‘Awake’는 왠지 모르게 엔이알디(N.E.R.D) 때의 느낌이 들었다. ‘All the girls that’s in this room’ 하는 가사에서는 ‘All the girls standing in the line for the bathroom’이라는 파트가 인상적인 N.E.R.D의 ‘Everyone Nose’가 생각이 났다.

다섯 번째 트랙인 ‘So Many Pros’는 ‘R U A Freak’에서 보여주었던 브렌트 패스키(Brent Paschke)의 감각적인 기타연주 위로 스눕 독의 읊조리는 음성과 레아 덤밋(Rhea Dummett)의 백업보컬이 차곡히 쌓인다. 찰리 윌슨의 두껍고 섹시한 음성이 돋보인다. 인트로에 진입할 때부터 비트가 쫄깃하다. 퍼렐이 [G I R L]에서 보여준 음악들과도 잘 어울리는 트랙 같다. 손에 칵테일을 한 잔 들어 올리고 싶어지는 노래다. ‘Escort for alcohol!’

먼저 뮤직비디오가 제작된 여섯 번째 트랙 ‘Peaches N Cream’은 ‘Let’s Get Blown’과 섞인 ‘Sensual Seduction Part 2’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형광과 탁한 빈티지 컬러가 함께 쓰인 색감이 음악의 분위기와 사뭇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퍼렐의 BBC(Billionaire Boys Club) 디자인에서 등장할 것만 같은 우주 배경이 재밌다. 호루라기 소리를 닮은 퍼커션 효과음은 은근 중독성이 있다.

일곱 번째 트랙은 티아이(T.I.)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Edibles’. 스눕 독의 G-Funk 스타일답게 좀 더 노골적으로 마약과 섹스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여덟 번째 트랙 ‘I Knew That’도 미니멀한 느낌으로 전개된다. 음반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까지 차분한 비트감을 유지하니 전체적으로 부담스럽지 않고 더욱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그웬 스테파니(Gwen Stefani)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아홉 번째 트랙은 ‘Run Away’. 퍼렐의 ‘Can I Have It Like That?’에서 다소 뜨겁게 호흡을 맞췄다면 스눕 독의 음반에서 그녀는 꽤 시크한 움직임을 보인다. 두 곡을 연달아 들어도 재밌다.

마지막 트랙인 ‘I’m Ya Dogg’은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릭 로스(Rick Ross)가 참여해 마무리를 훌륭히 함께 하고 있다. 거침없이 몰아치는 랩 스타일을 구사하는 켄드릭은 퍼렐과 스눕 독의 녹아 흐르는 비트에 맞추어 절제력 있는 래핑을 들려준다. Rick Ross의 걸쭉하고 무게감 있는 보이스는 트랙의 전체적인 안정감을 더욱 높인다. 여전히 ‘나는 당신의 Dogg’이라는 인상을 이번 음반에서 확실히 심어주는 스눕 독. 음악적인 변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고, 어느새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서 자신의 저력을 은근슬쩍 펼쳐놓는 그는 참 매력적인 아티스트임에 틀림없다.

20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의 근원은 어쩌면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넉넉한 여유’에 있지 않을까. 오랜 친구이자 최고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퍼렐 윌리엄스가 동행하는 스눕 독의 발걸음은 여유로우면서도 자연스럽게 정상으로 향할 것 같다.

스눕 독과 퍼렐 윌리엄스의 [Bush]를 위한 사운드그래피. 퍼렐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관목들 사이에 섞여 있고, 스눕 독은 그 가운데에서 멋지게 차려입은 채 세상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퍼렐의 턱 선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스눕 독의 머리모양에 묘하게 겹쳐진다. 예전에 파격적인 양갈래 머리로 Drop It Like It’s Hot 춤을 추던 그가 생각나 피식 웃었다. 스눕 독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놓으면서도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퍼렐의 영향력을 표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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