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2018년 수첩은 변화할 MBC의 모습을 예언하는 것인지도"

매년 이맘때쯤 아버지는 아들에게 수첩 두 권을 주었다. 하나는 공책 크기와 비슷한 큰 수첩, 그리고 다른 하나는 들고 다니기 편한 작은 손수첩. 그 수첩에는 공영방송 MBC의 로고가 적혀있다.

아들의 수첩에는 1달에 한 번 쓸까 말까한 일기가 쓰이기도 했었고, 읽었던 책의 좋은 문구, 참석한 회의 내용을 적어 내려가곤 했다. 그렇게 매년 아버지가 주신 수첩과 함께 한 지 어느덧 10여 년. MBC수첩은 아들의 가방 한 구석에 없으면 섭섭할 정도의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랬던 수첩을 아들은 사용하기 꺼려질 때가 있었다. 점점 추락하는 MBC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MBC는 아버지를 해직시켰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흘린 아버지의 눈물을 군대 한 편에 마련된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접하게 되었을 때의 그 허탈함과 분노는 ‘만나면 좋은 친구’가 아닌 ‘가장의 슬픔과 고난, 절망’을 가져다준 ‘보고 싶지 않은 친구’가 되었다.

아들은 MBC를 보지 않았고, MBC를 응원하지 않았다. 아니 응원할 수 없었다. 응원하면 할수록 아버지는 힘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아들이 우연히 보게 된 MBC기자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의 입은 지침과 절망을 말하고 있었다.

▲ 정종택 자유기고가

그렇게 MBC는 취재현장에서 밀려 나와야만 했다. 이름조차 사람들에게 거론조차 되지 않았고, 거론되더라도 MBC는 “엠비씨”로 불리지 않았다. 주변에 보는 사람보다는 안 보는 사람이 더 많았고, MBC를 시청하는 식당을 우연히 찾더라도 순식간에 다른 채널로 돌려지곤 했다. 그런 MBC를 두고 사람들은 말했다.

“잘 안 봐. 무한도전이나 가끔 볼까 뉴스는 별로.”

“왜 안 보는지 다들 알지 않나? 예전에는 진짜 많이 봤는데, 요즘은 안 봐.”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던 2015년 이맘때쯤,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수첩 필요하나?”

그의 질문에 아들은 쉽사리 무엇이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필요 없다’라고 할까. 아니면 ‘누군가 다른 수첩을 주어서 괜찮다’라고 할까. 아버지의 질문에 몇 초인지, 몇 분인지 모르는 시간이 흐르고 아들은 답했다.

“MBC수첩을 쓰기가 좀 그래요 이제는.”

‘“MBC는 되돌아갈 수 있다”라는 느낌표가 부쩍 물음표로 바뀌어 간다’라는 아들의 우회적인 답변에 아버지는 내심 섭섭함을 몇 초간의 짧은 침묵으로 표했다. 그 침묵은 마치 “MBC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하는 MBC 정상화에 피를 나눈 아들이 응원을 해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네가 그러면 되나.”

아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충분히 힘들었고, 부당했으며, 그 부당한 대우를 하는 MBC가 아버지를 다시 한번 절망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뒤이어 생각해 보면, 그런 부당한 대우를 MBC구성원 모두가 견디는 중이었고, 그 견딤의 끝이 언제 완전히 끝이 날지 모르는 미지 속에서 지금 MBC는 말한다.

“돌이켜 보면 국민을 위한 방송,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한 공영방송을 자처했지만, MBC는 권력으로부터 온전히 독립하지 못했습니다. 권력에 장악되면서 허물어져 버린 MBC의 7년간의 몰락사는 저희에게도 소중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MBC의 존재는 권력자에게 인정받을 때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공정방송을 할 때 비로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성하겠습니다. 국민을 위한 방송,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위한 방송,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방송 그런 MBC로 거듭나겠습니다.”  - PD수첩 1136회 엔딩멘트 -

그리고 지금 아들의 책상 위에 놓인 수첩 두 권. 아들은 끝까지 응원하지 못한 채, 물음표를 품었던 순간을 반성한다. 그리고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 MBC, 더 나아가 KBS가 우리 곁에 “만나면 좋은 친구”와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으로 온전히 돌아와 주길 응원한다.

어쩌면 아들이 지난 해 받아든 MBC의 2017년 암울한 잿빛색 수첩과는 달리, 하늘색과 분홍색의 화사한 2018년 수첩은 변화할 MBC의 모습을 예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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