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MBC의 성취를 기대한다"

지난 7일 최승호 PD가 MBC에서 부당해고된 지 5년 여 만(정확하게는 1,997일)에 MBC 사장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한국 언론계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기나긴 군사독재 기간, 한국사회에는 언론자유를 외치다 정권의 압력으로 집단으로 해고당하는 언론인들이 적지 않게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의 동아투위와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쫓겨난 80년 해직자들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재직하던 언론사로 원상복귀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고, 게다가 해직기간의 처우를 제대로 인정받는 경우는 더더욱 흔치 않았던 것이 한국 언론계의 현실이었다. 그나마 MBC와 KBS 등 공영방송의 해직자들이 호봉을 제대로 인정받았을 뿐, 대부분이 사기업인 신문, 통신사의 경우는 사주들의 전횡으로 복직이 안 되거나 되더라도 처우는 ‘주는 대로 받는’ 식이었다.

그러니 최승호 PD가 일약 ‘조직의 톱’인 사장으로 복직한 것은 한국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간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는 여야 어느 정파가 집권을 했는지와 관계없이 정권의 의중이 반영되는 인물이 선임돼 온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계를 움직이는 막후의 실세가 있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재인 정부가 MBC 사장 선임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보이지 않는다. 최승호라는 인물이 MBC 사장으로 최종적으로 확정될 때까지의 과정이 이를 입증한다. 최승호가 살아 온 현재까지의 이력, 특히 PD저널리즘의 상징적인 아이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최승호가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 등 외부의 입김에 흔들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왜 그런가?

2005년은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사건이 일어난 해다. 국민으로부터 나라를 구할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던 사람이 사실은 지능적인 사기꾼에 불과했다는 ‘희대의 역설’을 밝혀낸 매체가 MBC의 <PD수첩>이었다. 프로그램을 이끌어간 한학수 PD와 최승호 팀장의 고난과 분투, 헌신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정치권력이나 재벌 등 자본권력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권력 -과학권력 혹은 문화권력- 으로 등장한 황우석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갑남을녀만이 아니었다. 당시 대통령 노무현은 2003년 12월10일, 황우석의 연구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중에 사기로 밝혀진) 줄기세포를 보고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기술이 아니라 마술입니다. 동북아 시대, 2만 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실히 발견했습니다.… 감동에 몸이 떨릴 만큼 감전됐습니다."

‘언론 플레이의 귀재’ 황우석에게 포섭된 정치인과 관료, 언론에 의해 성역화된 황에게 감히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나 세력은 있을 수 없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일하게 문제를 제기한 MBC <PD수첩>이 집단따돌림을 당한 것은 당연했다. 성역을 침범한 대가인 셈이었다. 줄기세포 조작이라는 본질과는 무관한 한학수 PD의 취재윤리 위반을 문제삼아 악의적인 왜곡보도를 일삼던 YTN 등 언론들의 마녀사냥에 떠밀려 MBC는 12월4일, 임원회의를 통해 세 가지 사항을 결정한다. 당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대 국민 사과를 하는 한편, <PD수첩> 불방, 그리고 최승호 팀장과 한학수 PD에게 인사조치를 내린다는 것. 사실상의 항복선언이었다. 여기서 최승호의 유명한 멘트가 나온다.

“인간 최승호의 진가는 YTN 사태 이후에 더 빛을 발했다. 그는 확고했다. 여기서 취재내용을 덮는 것은 죄악이며 어떻게든 수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 우리가 취재한 내용이 방송되지 못하면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다. … (검찰의 수사를 자청하면) 우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 확대는 불가피하다. 배수의 진을 치고 황우석이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물고 들어가자는 작전이었다. 팀장은 아주 간명하게 표현했다. “학수야, 네가 구속돼라.”(한학수,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 431~432쪽, 사회평론, 2006)

YTN의 갑작스런 미국출장 -안규리 교수 등과 함께- 에 이은 MBC <PD수첩>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MBC는 사장 이하 간부들이 맥없이 백기를 들었다. 아직까지도 당시 YTN이 왜, 누구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고, 특히 일군의 교수들과 함께 움직인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그 전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자사의 PD들과 그들의 취재결과를 신뢰하기는커녕 근거가 부족한 비난 공세에 쩔쩔매던 당시 MBC 간부들과는 달리 최승호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후배에게 검찰에 구속될 것까지(?) 주문하는 뚝심을 지닌 선배였던 것이다. 결국 조중동 등은 모두 사과문을 쓰고 겉으로나마 왜곡보도를 해 온 데에 반성하는 척 했고, <PD수첩>은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근성을 가진 PD저널리즘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황우석의 사기극’을 다룬 <PD수첩>을 계기로 PD저널리즘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 사태가 전통적인 기자저널리즘의 망신과 신생 PD저널리즘의 승리라는 대조적인 결말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PD저널리즘 공격대열의 선봉에 서 왔던 조선일보는 <뉴스데스크>의 사과방송이 나간 이튿날, 1면 톱으로 <PD수첩 협박·함정 취재>를 올렸고, <스타PD와 노조위원장 출신 CP의 과욕>에서는 최문순 사장의 ‘코드 인물’로 꼽힌다는 두 PD들의 전력을 들추어냈다. 특히 한학수에 대해서 PD(민중·민주) 계열 운동권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들춰내며 이념공세를 폈다. 그 다음날부터 시작된 ‘브레이크 없는 PD저널리즘’이라는 시리즈의 기사 제목은 <결론 정해놓고 ‘짜맞추기 제작’ 관행>이었다.

이로부터 2년 반 정도 지난 2008년,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광우병 사태’에서 기자저널리즘과 PD저널리즘의 두 번째 대회전이 벌어지게 된다. 2008년 4월29일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의 방송을 계기로 당시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던 조중동과 검역주권 포기와 국민건강권을 무시한 졸속협상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린 MBC, KBS 등 공영방송 및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의 진보언론 사이에 새로운 진실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조중동은 그동안 PD저널리즘을 비판하는 논거로 “결과에 짜 맞추기 위해 그에 맞는 사실을 선택한다”, “고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분별한 폭로를 일삼는다”, “사실보다는 주장을 앞세운다” 등을 들어왔다. 그런데 ‘광우병 사태’에서는 이러한 비판을 조중동이 주로 받았다는 역비판을 스스로 자초했다. 한미 FTA를 '조속' 처리하기 위해 광우병 위험성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졸속'으로 들여오려 했던 것이 광범위한 촛불시민들의 저항을 불러온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리하게 이명박 정부를 감싸기 위해 <PD수첩>을 맹공격했다. 자신들이 PD저널리즘을 규정할 때 쓴 “사실보다 주장을 앞세운 언론”이라는 주장은 도리어 자신들에게 부메랑이 되었다.

‘광우병 사태’ 보도로 미운 털이 박혀, 조중동과 정권의 협공을 당해 온 <PD수첩>은 외부의 압력에 덧붙여 정권의 하수인이었던 MBC 회사 측의 제작진 교체와 민감한 소재의 제작 방해 등 내부 압력까지 더해져 최악의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2005년은 MBC에 대형 특종이 넘쳐났던 해다. 그해 시사교양국 <PD수첩>팀에서는 ‘황우석 사기극’을 특종했고, 보도국에서는 이상호 기자가 삼성그룹의 비자금 수수와 관련된 안기부 X-파일 사건을 알아냈다. 앞의 사건이 ‘국가적 영웅’으로 거짓 포장돼 온 인물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까뒤집는 것이었다면, 뒤의 사건은 한국 최대의 재벌기업의 정.관계에 걸친 전방위 로비사실이 드러나는 것이어서 두 사건 모두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이 명약관화했다. 상대방으로부터 불어닥칠 압력과 비난, 공격의 강도도 예상키 어려웠지만 명예훼손 등으로 걸릴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각오해야 했다. 한 마디로 보도행위 자체에 대단한 용기와 배짱, 확신이 필요한 세기적 특종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대조적이었다. 시사교양국 <PD수첩>프로그램이 광고가 떨어지고 폐지 압력이 쏟아지는 등, 온갖 역경을 뚫고 결국 황우석 사태를 보도하는 데 성공한 반면, 보도국은 사건의 폭발력에 미리 겁을 먹은 간부들이 ‘자체적인 보도지침’을 설정해 놓고 시간을 끌다가 조선일보에서 안기부 도청팀 기사를 터뜨리고 나오자 이를 따라가는, 초라하고 비겁한 행태를 보였다. 만일 <PD수첩>팀에서 안기부 X-파일 사건을 알았다면 어떻게든 방송을 내보냈을 것이라는 뒷담화가 오랫동안 파다했다.

최승호 PD가 MBC 사장으로 결정되자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MBC가 완전한 노영방송이 됐다"고 개탄했단다. 이에 대해서는 6년 전 했던 <PD수첩>소속 어느 PD의 인터뷰를 참고하면 될 것 같다.

“공영방송은 재벌이나 조중동에 있는 전제군주같은 사주가 없는 회사다. 중요한 것은 87년 이후 실질적인 공영방송으로 전환되면서 회사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대등한 지위의 노조가 나왔다는 것이다. 조중동 등의 기득권 집단은 노조가 회사 운영을 좌우하는 것처럼 ‘노영방송’이라고 악선전을 하고 있지만 ‘평생 바뀌지 않는 사주의 노예’들이 돼 있는 자신들의 한계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또 사장 최승호와 더불어 공영방송 MBC를 같이 이끌어 갈 어떤 구성원의 목소리 -역시 6년 전 MBC 인트라넷- 도 들어볼 만하다.

“우리는 명색이 공영방송의 언론노동자다.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최후적인 자유로서의 언론자유까지 주장하지 않더라도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하고 싶은 보도를 하고,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서 저항한다. 다른 어떠한 것을 양보하더라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이것이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이유가 없다. 우리가 구속되더라도, 해고되더라도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 불가피하게 벌어질 한국사회 지배집단과의 대회전이 기대된다. 공영방송 본연의 목표인 힘없고 목소리 작은 사람들을 위해 9년여의 공백을 뛰어넘는 성취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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