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 맞은 편, 대곡중학교

//뼈대만 남은 학교를 보셨습니까. 멀리서 보면 학교이되 가까이 가면 그냥 건물인 곳 말입니다. 교문은 닫혀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합니다. 교문 옆 쪽문을 비틀고 들어가면 지금은 겨울이니 말라죽은 잡초의 잔해가 군데군데 있겠군요. 칠이 벗겨진 이승복 상이 눈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반길 거구요.

청군 백군으로 나눠 기마전을 했지요. 운동장 가에 천막이 쳐지고 천막 안 가마솥에서는 더운 김이 쉼 없이 올라왔구요. 동네어른들이 거의 모두 오셔서 막걸리를 마셨지요. 펄럭이는 만국기 사이로 조각난 가을하늘은 얼마나 파랗고 높던지. 릴레이 경주는 어땠나요.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지요. 연필 한 다스 공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모두들 1등을 한 양 교문을 의기양양 나서던, 그 때를 기억하십니까.

▲ 박흥준 상임고문

새똥으로 얼룩진 구령대 옆을 지나 교사 현관 앞에 서 보셨습니까. 깨지거나 금이 간 유리문 사이로 트로피 대여섯 개 들어있던 장식장이 텅 빈 공간에서 망막에 흐릿하게 재생됩니다. 바닥에는 휴지조각과 각목 등이 이리저리 굴러다닙니다. 맞은 편 작은 유리문 뒤로는 숙직실 건물이 아직은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습니다. 역시 낡기는 했습니다.

현관 앞 시멘트 바닥에서 우리는 무릎 꿇고 두 손을 드는 벌을 섰지요. 청소를 하지 않고 도망가다 붙잡혔습니다. 가설극장이 왔거든요. 공놀이 하던 아이들은 영화 보러 모두 떠나고 선생님들도 퇴근하셨지요. 땅거미는 서서히 지는데 어찌 해야 할 지 우리는 알지 못 했습니다. 바람이 차가워서 하나둘 건물 안으로 들어왔던가요. 벌을 주신 선생님이 어둠 속을 달려오셨습니다. 트로피 장식장 앞에서 숨을 참으며 우리를 하나하나 껴안던 선생님. 지금은 아마 돌아가셨겠지요.

복도에서 창문 너머로 교실을 들여다 보셨습니까. 교훈이 비스듬한 액자에 그대로 있군요. “성실 근면...” 칠판에 분필글씨도 지워지지 않고 몇 자 있습니다. “떠든 사람 번호, 주번, 숙제...” 아마 저보다 먼저 들렀던 동창녀석의 장난인 듯합니다. 뒷편 게시판은 떨어지고 없네요. 반공포스터를 만들어 붙이던 곳이지요. 구석에 빗자루가 보입니다. 뚜껑 없는 쓰레기통도 하나 있구요.

유리창을 호호 불며 닦았지요. 동전으로 성에를 긁어내기도 했구요 입김을 씌우고 글을 쓰는 장난이 유행했지요. 대걸레가 없어서 마룻바닥을 엎드려 닦았습니다. 두 손으로 손바닥만 한 걸레를 잡고 무릎걸음으로 길게 밀고 갔지요. 분필가루를 마시며 지우개를 탈탈 털었습니다. 걸레 던지기 놀이가 느닷없이 시작됐는데 ‘무찌르자 공산당’ 포스터가 더러운 물걸레를 정면으로 맞았지요. 얼룩덜룩 포스터 앞에서 다음날 선생님은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학교 앞 거리입니다. 흙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됐습니다. 길 옆 건물이 절반쯤 부서져 있습니다. 담장이 무너진 곳도 있구요 깨진 블록 조각 사이로 들국화 한 송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네요. 세월을 붙잡은 낡은 달력이 여배우의 나신을 안은 채 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거미줄 사이로 가격표가 보입니다. “짜장면 짜장면곱빼기 짬뽕 우동 탕수육...”

길 모퉁이 좌판은 방과 후 놀이터였지요. 소다를 푼 설탕과자를 양철모서리로 꾸욱 눌러주면 두 손으로 소중하게 받아서 한땀한땀 바늘로 떼어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탄식을 하기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뻥과자와 오뎅국물도 빼놓을 수 없네요. 맞은 편 중국집에서 탕수육 한 접시에 소주를 드시던 선생님이 분통을 터뜨리며 뛰쳐나와 뒤통수에 알밤을 먹일 때까지 우리는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지요. 나란히 서서 언 손바닥을 회초리로 맞았지요. 그리고, 그리고...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습니다.//

 

지난 80년대 들어 학생 수가 줄면서 문을 닫은 학교는 2016년 5월 현재 전국에 천3백50 곳, 경남에는 2백50곳이다. 도내의 경우 이 가운데 백64곳은 사회복지시설이나 문화시설 등으로 활용되고 있고 86곳은 건물과 운동장이 그냥 남아 있다. 폐교는 계속될 전망이다. 면단위 학교들이 대부분 재학생 50명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교를 살리려는 지역사회의 노력은 당국의 재정효율화 논리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진주시 대곡면이 요즘 대곡중학교의 혁신도시 이전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총동창회 쪽은 혁신도시로 들어가서 학교 이름이라도 살리자는 의견이고 학부모들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곳곳에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전단지가 나뉘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고 있다. 학교는 지역사회 문화의 중심이었다. 운동회가 면 단위의 유일한 축제마당이기도 했다. 학교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지역민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추억을 공유하고 학교에 가는 자식들을 밭을 갈다가 흘낏흘낏 쳐다보며 앞날을 설계했다. 학교는 마음의 고향이다. 학교가 사라지면 마음의 고향도 사라진다. 인간과 평생 함께 하는 게 마음의 고향,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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