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운동 내 '피터팬주의'의 문제점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만 해야 한다'는 명제(피터팬주의)는 틀렸다.>

청소년운동에 비청소년이 어떠한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 있던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20대가 되면 청소년운동에 손을 떼고 후방의 지원자로 남아야 한다는 '피터팬주의'라는 문화가 존재했다. 당사자가 말하는 것만이 옳은 운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운동판엔 10년이 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없었고(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다) 많은 활동가들이 몇 년을 활동하다 떠나갔다. 오랜 기간 남는 활동가가 없기에 청소년운동은 몇 년(일반적으로 3년)을 주기로 과거에 했던 조직화와 논의, 행동을 반복하는 도돌이표 운동을 해왔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만 해야 한다는 ‘피터팬주의’는 겉으로 보기엔 논리적으로 흠결없어 보이며, 청소년만이 주도하고 결정하는 단체가 제대로 되고 깨끗한 것인 양 보인다. 하지만 이런 피터팬주의는 당위도, 규범도 아닌, 논리적 허상에 불과하다. 피터팬주의의 논리적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이글(박태영)

1. 당사자의 목소리만이 정당하다는 주장은 청소년-비청소년의 이분법에 근거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나이를 기준으로 한 체제-제도적 구분으로 인한 청소년 억압이다. 체제가 그어놓은 억압의 울타리를 부수자는 걸 목적으로 하면서, 그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람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울타리를 인정하는 모순이다.

(이러면 청소년-비청소년 구분법 자체도 문제적인 거 아니냐고 할 거 같은데, 청소년운동이 청소년-비청소년이라는 언어로 사회를 재해석하는 까닭은 20세라는 기준점으로 사회적, 문화적, 법적, 정치적 시민권의 박탈-보장을 결정하는 체제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비청소년 중심의 사회구조가 변혁된다면 이러한 언어표현은 아무런 전복성도 정치적 효과도 갖지 못 할 것이다.)

2. 피터팬주의는 '비청소년=억압자, 청소년=피억압자'라는 관념을 내포한다.

청소년에 대한 억압은 나이를 기준으로 이분화 할 수 없다. 청소년 중에도 청소년을 억압하는 이들이 많으며, 비청소년 중에서도 반나이주의적-나이평등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억압-피억압자에 대한 인식이 틀린 것이다. 피억압자는 청소년을 비롯한 나이주의 체제의 모든 사람들이며, 그 억압의 양상과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억압은 비청소년들이 아닌 나이주의 체제로부터 비롯되었다.

비청소년들이 그러한 체제를 유지하며 전승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투쟁의 대상이라는 주장을 하려면, 청소년운동을 하는 비청소년과 청소년억압을 하는 청소년이라는 반례에 대해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비청소년을 무조건 억압자이며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은 체제에 대한 싸움이 특정 사람들의 집단에 대한 싸움으로 인식이 전도된 형태겠다. 없애야 할 것은 체제이며, 싸워야 할 것도 체제이다. 피터팬주의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싸워내야 할 이분법적 관념에 불과하다.

3. 청소년운동은 모두가 당사자다.

일반적으로 당사자주의는 당사자의 경험에 힘을 부여한다. 계속 설명했듯이, '경험이 있는 자만이 말할 수 있다'는 명제 자체도 틀렸지만, 청소년만이 경험이 있는 자라는 인식도 틀렸다. 청소년기는 모두가 겪는 시기이다. 당연히 비청소년들도 청소년 당사자로서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오히려 비-당사자인 비청소년은 응원하고 관심을 가져주며, 후방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훨씬 위험하다. 이러한 인식은 청소년운동에 대한 비청소년의 연대와 지지를 시혜적인 행위로만 남게 만든다. 연대와 지지는 응원이나 시혜, 호의나 동정이 아닌, 억압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동지로서 함께 싸워나가겠다는 다짐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피터팬주의는 어떤가? 동지를 적으로 돌리고, 스스로 체제가 그어놓은 청소년 억압의 제한선을 강화하는 꼴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피터팬주의를 넘어서자!

피터팬주의를 말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청소년이므로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고, 비청소년이라면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나는 2개월 후면 청소년운동에서 정의하는 억압의 대상으로서 청소년이라는 주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럼 2개월 후에 내가 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은 틀린 주장이며, 해서는 안 될 비청소년의 '꼰대짓'인가? 혹은 청소년운동을 비청소년이 좌지우지하려 드는 오만한 행동인가? 비청소년 되고 나서도 청소년운동에 발화권력 챙기고 싶어서 안달 난 꼴인가? 그렇지 않다. 난 그냥 청소년억압에 맞서 싸우는 청소년운동 활동가일 뿐이다.

물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어떠한 위계를 가지고 운동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비청소년 지도부와 지도받는 청소년>, <비청소년 '쌤'들과 청소년 회원들> 같은 형태 말이다.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함께 활동하는 단체에서 더 나은 관계를 고민할 수 없다면, 그래서 청소년만이 활동하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그대의 상상력을 탓하라.

결론적으로, 말하는 이의 나이가 몇 살이냐는 주장이나 실천의 정당성을 따지는 근거가 될 수 없다. 피터팬주의를 주장하는 건 무엇이 청소년을 진정 억압하고 있는지, 청소년을 억압하는 체제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부족하기에 만들어진 결과다. 물론 청소년이 직접 그들의 의견을 내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보장하는 게 비청소년을 청소년운동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청소년운동은 모두의 운동이며, 모두가 거쳐 온 어떠한 정체성에 대한 변혁운동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주된 굴레인 나이주의를 극복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 나이주의 극복을 위해 다른 방식의 나이주의를 만들어 내다니. 그건 논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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