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4개월 3주, 그리고 2일>

"단 한 순간도 단 한 명의 남자도 여성에게 비빌 언덕이 되지 못 했다." 가연l승인2017.10.11l수정2017.10.1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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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시공간적 배경과 줄거리는 간단하다. 영화는 낙태를 전면 불법화한 차우셰스쿠 정권 하의 루마니아에서 임신을 한 대학생 가비타와 그녀의 친구 오틸리아가 호텔 방에서 불법 낙태수술을 경험하는 하루의 풍경을 다루었다. 영화의 말미에서 주인공 오틸리아와 가비타는 하루 동안 자신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거라는 합의를 본다. 소란스러운 레스토랑 한 쪽에서 입을 굳게 다문 두 여자의 침묵을 조명하며 영화는 끝난다.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오틸리아는 불법 낙태수술을 받았으며 가비타는 불법 낙태수술의 조력자로 동참했다는 사실을. 오틸리아와 가비타가 겪은 일은 루마니아가 차우셰스쿠의 독재로부터 벗어난 지 한참 뒤인 오늘날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독재정권의 루마니아를 바탕으로 했을 뿐인 어두운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지금 이 세계의 여성들을 적확히 가리키고 있다. 그렇기에 바라보는 일이 더 고독해지는 영화다.

▲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

“만약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를 도울 사람은 네가 아니라 가비타야.”

그 시절 루마니아에서는 불법 낙태수술을 받거나 집도하다 걸릴 경우 몇 년 간의 실형을 살아야만 했다. 낙태수술을 받는 친구 가비타의 조력자 오틸리아 또한 같은 벌을 받게 된다. 위험한 일이라고 만류하는 남자친구를 향해 오틸리아는 단호하게 말한다. 내가 낙태를 해야 한다면 나를 도와줄 사람은 네가 아닌 가비타라고. 오틸리아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비타와의 우정이 남자친구와의 사랑보다 두텁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같은 억압을 공유하는 가임기 여성으로서의 연대에 가깝다. 좀 더 거칠게 말하자면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 면허증도 없는 의사 앞에 가랑이를 벌려야 하는 여성간의 품앗이다. 이렇게 여성들만이 공유하는 불안함의 연대 앞에서 오틸리아의 남자친구는 오틸리아가 임신하면 자신은 반드시 결혼을 할 것이라 약속한다. 하지만 오틸리아는 "내가 그리는 미래에 왜 함부로 너와의 결혼을 집어넣냐"며 단호하게 받아칠 뿐이다.

가비타를 임신시킨 남자는 애초에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오틸리아의 남자친구는 오틸리아가 임신하면 책임져 주겠다는 둥의 방관자적 제스처를 취한다. 가비타의 낙태수술을 집도하는 남자는 가비타와 오틸리아가 제시한 금액이 적다며 그녀들의 성을 매매한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여자기숙사의 친구들마저 가비타의 상황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시점에서 단 한 순간도 단 한 명의 남성도 여성들의 비빌 언덕이 되지 못한다. 여성들은 연대하거나 혹은 홀로 일을 처리하며 그런 일은 곧 없었던 일이 되어 사라진다. 영화는 수많은 여성들의 사라져 버린 하루를 집요하게 뒤쫓는다.

가비타의 몸속에서 나온 태아를 오틸리아는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낯선 동네의 쓰레기통에 버린다. 이 과정을 카메라는 한참이나 응시한다. 쉼 없이 흔들리는 카메라의 시선과 오틸리아의 거친 숨소리, 암흑 같은 어둠이 뒤섞여 관객을 불안하게 만들지만 오틸리아는 무사히 검은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다시 돌아간 호텔 방에 가비타가 없어서 오틸리아는 놀라지만, 가비타는 죄책감에 도망을 친 것도 슬퍼서 혼자 산책을 한 것도 아니다. 수술을 마친 후 허기가 져 조명이 나른한 레스토랑에서 홀로 저녁을 먹고 있던 것뿐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의 한국 포스터 문구는 ‘어린 생명이 세상에 머문 시간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다. 이 문장은 다시 쓰여야만 한다. ‘한 여성이 고통 받아야만 했던 시간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가연  yeondu_bi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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