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 쓸쓸히 진행된 가장행렬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1980년대 가수 이용이 불렀던 ‘잊혀진 계절’이다. 이별의 밤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노래이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10월이면 이 노래를 떠올리고 라디오에서는 앞다퉈 이 노래를 틀고 있다.

진주시민들에게 10월은 자부심 가득한 ‘개천예술제’의 계절이었다. 49년 정부 수립 1주년을 기념하고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처음 개최된 개천예술제는 50년 한국전쟁과 79년 10.26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어떤 어려움에도 그 맥을 이어온 국내 최대, 최고의 예술제였다. 지난 시절 대통령이 개회식에 두 번이나 참석하는 등 진주시민들에게는 자부심 가득한 행사였다. 올해 67회 째인 개천예술제는 그동안 경연을 통해 수많은 예술가를 배출하고 각종 공연과 전시회 등으로 문화를 풍성히 함으로써 대한민국 축제사와 문화예술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한 개천예술제가 대한민국 종합예술제의 효시라는 위상만 간직하고 있을 뿐, 어느 순간 진주남강유등축제에 자리를 내 주고 말았다.

5년 연속 최우수 축제, 대한민국 명예 축제, 세계 5대 축제, 해외로 수출하는 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의 화려한 경력이다. 진주시는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축제를 관람했고, 입장수익도 상당하다고 발표한다. 시민들 역시 유등축제가 진주의 축제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제로 발돋움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유료화 논란과는 별도로 유등축제가 진주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성장하는 사이에 개천예술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가장행렬에만 사람들이 모일 뿐 예술경연과 공연, 전시회 등은 썰렁한 분위기에서 치러진다. 

개천예술제는 숱한 질곡의 역사를 겪으면서 척박해진 우리나라 문화토양에 새로운 예술의 씨앗을 뿌리고 문화를 풍성하게 한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따라서 개천예술제는 우리가 계속 키워나가야지 이름만 남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10월6일 개천예술제의 백미인 가장행렬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주 시가지를 수놓았다. 어린이에서 어르신까지 다양한 참가자들이 역사를 재현하고 현대 공연을 펼치며 예술제의 개막을 알렸다. 예전 같았으면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렸을 터이다. 아무리 부슬비가 뿌렸다 해도 구경꾼들은 턱없이 적었고 사람들의 환호보다는 경찰의 교통통제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예술제의 쪼그라든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은 가장행렬이 비를 맞고 있었다.   

남강유등축제는 개천예술제의 부문행사였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쯤 해서 우리는 예술제를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잊혀진 계절'은 노래로만 머물러야 한다. 축제기간은 아직 남아 있다. 경연장이든 공연장이든 전시회장이든 모두들 한 번씩 둘러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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