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디편집실에서>

“다시 진주정신으로!”

인류의 역사는 저항의 역사이다. 역사의 굽이마다 저항이 있었다. 가끔은 승리하고 자주 패했지만 저항이 없었던 적은 없다. 그러면서 역사는 만들어졌고 인권은 조금씩 신장됐다. 저항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요즘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저항은 압박을 전제로 한다. 압박이 없으면 저항도 없다. 압박은 누가 하는가. 가진 자들이 한다. 기득권을 가진 자, 권력을 가진 자, 사회적 부를 독과점한 자 등등이 이들이다.

저항의 주체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호칭을 얻었다. 왕조시대에는 백성, 전근대에는 민중, 요즘은 시민이다. 이들은 가지지 못 한 자들이다.

▲ 박흥준 <단디뉴스> 상임고문

백성은 일방적인 통치대상이었다. 가렴주구에 시달렸고 노역에 동원됐다. 오랜 세월 이들은 저항해 왔고 조금씩 받아내면서 민중이 되었다. 그리고 의회에 대표를 보내면서 시민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랜 저항으로 시민이라는 당당한 호칭을 얻었는데도 세상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먹고 자고 입고 숨 쉬는 모든 행위에 세금이 붙어 있어서 과거의 가렴주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민들은 힘들어 한다. 열심히 일하지만 노동의 대가는 대부분 생활임금에 미치지 못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일은 노역이다. 따라서 노역은 지금도 계속된다. 의회에 대표를 보내게 됐지만 의회는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교육의 부재, 착취구조의 재생산, 왜곡된 선거제도, 이뤄지지 않는 재분배, 이를 감시하지 못하는 언론, 이 모든 것을 유지하는 데 동원되는 정책 등을 들 수 있다. 그 결과는 시민들의 고통과 사회의 불안정이다. 저항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흔히들 진주정신을 얘기한다. 논개(7만 민.관.군)의 순절과 진주농민항쟁, 형평운동을 거치며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고 이어져서 진주정신이 되었다. 논개는 외세에 저항했고 농민항쟁은 착취에 저항했으며 형평운동은 차별에 저항했다. 진주정신은 따라서 저항의 표상이다.

요즘 진주정신은 그러나 학자의 글에서 가끔 호명되고 특정행사의 주제어에만 머물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국정농단 단죄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진주정신이 사용되기도 했다. 시민들의 의식 기저에 깊이 가라앉아 있는 진주정신을 현실의 장에 길어올려야 한다.

진주정신은 자주이며 공평이다. 정의이며 미래지표이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진주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그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언론만 언급하려 한다. 언론이 잘 했으면 세상은 벌써 공정해졌을 것이다. 언론이 잘 했으면 시민들의 고통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 언론이 잘 했으면 탄핵도 없었을 것이다.

잠시 중단됐던 단디뉴스 발행이 5달 만에 재개됐다. 진주정신의 구현이 단디뉴스의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단디뉴스의 주인인 시민들은 지금 명령하고 있다. “다시 진주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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