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평화, 경남 일본군‘위안부’피해여성 기림상을 찾아

“옷은 화사한 거로 미리 챙겨두세요.”

카카오톡으로 날라온 박혜정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상 건립을 위한 진주시민모임(이하 기림 사업회)> 집행위원장의 당부에 하루 입은 검은 색 겨울 잠바를 벗고 다소 밝은 톤의 잠바를 장롱 속에서 꺼내 입었다.

 

▲ 진주인권교육센터(센터장 권춘현) 주관으로 열린 ‘경남 인권로드- 길에서 만난 평화’에서 경남 내 일본군‘위안부’ 피해할머니를 기리는 기림상을 찾아보고, 피해할머니를 직접 만나는 시간을 통해 이 땅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11월 26일 있었다.

 

진주인권교육센터(센터장 권춘현) 주관으로 열린 ‘경남 인권로드- 길에서 만난 평화’에서 경남 내 일본군‘위안부’ 피해할머니를 기리는 기림상을 찾아보고, 피해할머니를 직접 만나는 시간을 통해 이 땅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11월 26일 있었다.

 

▲ ‘경남 인권로드 – 길에서 만난 평화’ 행사 웹자보

 

이날 경남 진주시청 앞에서 모인 초중고 학생을 비롯해 합천에서도 함께한 26명의 사람은 관광버스에 올라 거제로 향했다. 서도성 기림사업회 대표는 인사말에서 “20만 조선 여성들이 끌려갔다. 피해자로 정부로 등록된 이는 불과 238명이다. 숨어 있는 숫자 속에 부끄럽고 가슴 아픈 사연이 꼭꼭 숨어있다. 이분들이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한국·일본 정부의 행태를 보인다.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가슴에 담아오는 발걸음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 거제시 거제문화예술회관 한켠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심인경 진주인권교육센터 교육팀장은 일본군‘위안부’는 “일본이 만주사변(1931년)을 일으킨 이후부터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 1945년까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치한 위안소에 강제 동원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라며 “UN 인권위원회에서는 ‘전시하 군대 성노예’라고 규정했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명칭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기 적합하지 않지만, 당대의 특수한 분위기를 전달해주고 생존자들이 자신을 ‘성노예’로 부르는 데 정신적 상처를 입을 수 있어서 한국 정부가 제정한 법에서도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정확한 명칭 사용을 당부했다.

 

 

 

심 팀장은 기림상 제작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에 대해 이웃의 따뜻한 마음을 내지 못했던 시민사회가 반성해야 한다. 다른 지역과 달리 우리지역은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라는 할지라도 학교와 진주시 이름으로 일본군‘위안부’를 모집한 것도 반성해야“고 했다.

 

▲ 거제시 거제문화예술회관 한켠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창 너머 산들은 회색빛 하늘에도 굴하지 않게 노랗고 붉은 색을 입었다. 아파트 숲이 나오고 거대한 골리앗이 보인다. 거제다. 시멘트벽에 파란색으로 붙은 <평화의 소녀상> 가는 길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경남남부세관 주차장 경계 부근의 거제문화예술회관 한쪽에 <평화의 소녀상>이 나뭇잎 떨군 느티나무 아래 바다 너머 일본을 향해 두 눈 가득 응시하며 서 있었다. 길 건너편 유람선터미널에서 외도로 가는 여객선 한 척이 막 떠난다.

 

▲ 거제 <평화의 소녀상> 소녀는 단발머리다. 머리가 강제로 뭉뚝 깎인 듯 뒷머리는 거칠다. 그녀의 그림자는 부서진 삶처럼 조각조각 나 있다. 조각난 그림자 속에서도 하얀 나비를 평화를 염원하며 날갯짓을 한다.

 

소녀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이지만 신발도,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두 손으로 파랑새를 포근하게 안은 채 서 있다. 소녀 옆에는 빈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의자 옆에는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군 “성노예”의 삶을 강요당했던 이 땅 여성들의 한 맺힌 역사를 함께 기억하며, 다시는 전쟁과 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인권과 평화가 넘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거제시민들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고 적혀 있다.

 

▲ 거제 <평화의 소녀상> 근처에는 푸르렀던 나뭇잎은 풋기와 물기를 털어내고 낙엽 돼 흩어진 계절에도 엄지 손톱 크기의 하얀 털별꽃아재비꽃이 피었다. 우리가 잊지 않고 소녀상을 찾았듯 작지만, 번식력이 왕성해 기적처럼 생생하게 꽃을 피우는 ’털별꽃아재비‘는 ’용감한 전사‘다. ‘쓰레기풀’이라고 불려도 털별꽃아재비는 매년 그 자리에서 묵묵히 피고 지는 일을 거듭한다. 늘 그랬듯이.

 

단발머리 소녀는 머리가 강제로 뭉뚝 깎인 듯 뒷머리는 거칠다. 그녀의 그림자는 부서진 삶처럼 조각조각 나 있다. 조각난 그림자 속에서도 하얀 나비를 평화를 염원하며 날갯짓을 한다. 푸르렀던 나뭇잎은 풋기와 물기를 털어내고 낙엽 돼 흩어진 계절에도 엄지 손톱 크기의 하얀 꽃이 피었다. 털별꽃아재비다. 아주 흔한 꽃이지만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일본명 ‘하끼다메기꾸(掃溜菊)는 ’버려야 할 쓰레기를 모아둔 곳에 피는 국화과식물‘이라는 의미가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가 잊지 않고 소녀상을 찾았듯 작지만, 번식력이 왕성해 기적처럼 생생하게 꽃을 피우는 ’털별꽃아재비‘는 ’용감한 전사‘다. ‘쓰레기풀’이라고 불려도 털별꽃아재비는 매년 그 자리에서 묵묵히 피고 지는 일을 거듭한다. 늘 그랬듯이.

 

▲ 내년 1월이면 100세를 맞는 김복득 일본군‘위안부’피해 할머니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합의한 뒤 설립한 화해·치유 재단에서 주는 피해자 현금 지원 1억원을 거부했다. 범죄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사과를 먼저 요구하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했다.

 

거제를 나와 통영에서 점심을 먹고 경남도립 통영노인전문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는 내년 1월이면 100세를 맞는 김복득 일본군‘위안부’피해 할머니가 있었다. 좁은 병실에 인사를 드리며 들어갔다. 분홍빛 시트와 이불을 덮고 있는 할머니 머리 위로 ‘할머니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종이판에 여러 사람이 적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마침 보청기가 고장 나 우리 일행을 안내한 송도자 일본군‘위안부’피해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가 통역하듯 말씀을 전했다.

 

▲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

 

할머니는 한·일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합의한 뒤 설립한 화해·치유 재단에서 주는 피해자 현금 지원 1억원을 거부했다. 당시 검은 정장을 입은 재단 쪽 사람들이 에워싸고 현금지원 수용을 설득하자 검은 옷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한다. 재단은 정부에 등록·인정된 피해자를 대상으로 생존피해자에게 1억 원, 사망피해자에게 총 2000만 원 규모의 현금을 각각 지급할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오히려 범죄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사과를 먼저 요구하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했다.

 

▲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는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환송했다.

 

진주기림사업회에서 7월 29일 발표한 성명에서 “인권이 유린당한 잔혹한 역사 앞에 가해자인 일본은 범죄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일본 정부 자신도 배상이 아니라고 버젓이 밝히며, 사과는커녕 '합의'라는 이름으로 피해자들의 인권을 다시 짓밟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합의를 전면 무효로 하고, 피해자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 피해자들의 요구를 실현 하라"고 요구했다.

큼직한 눈이 아름다운 할머니는 우리가 병실을 나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환송했다.

 

▲ 통영 남망산 공원 한켠에 있는 정의 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통영항을 가로질러 이른 곳은 남망산공원이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추운 겨울 문턱에 들어선 우리에게 희망을 전달하듯 붉고 아름답게 빛나는 동백이 먼저 반긴다. 올라가는 길에서 사철나무와 탱자나무 사이로 사철나무와 탱자나무 사이로 통영항은 비에 촉촉이 젖어 있다.

50여m 올라가자 오른쪽 모퉁이에 두 팔을 벌리며 반기는 조각상이 나온다. ‘정의의 비’다. 알고 있던 소녀상과는 달랐다. 소녀도, 아줌마도 아닌 두루뭉술한 듯한 표정이 낯설었다.

 

▲ 정의 비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당당함과 정의로움을 상징하며,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와 화해의 손짓을 담고 있다. 또한, 모든 여성폭력 피해자들을 감싸 안으며 전쟁과 폭력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함과 동시에 이 지구 위에서 자행되고 있는 소녀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경종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세웠다고 한다.

 

“우리가 너무 민족적, 국가적 관점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바라봤다.”며 안타까워한 송도자 대표는 “ ‘소녀’라는 틀에 갇혀 있다. 몇 년 전부터 발굴되는 자료에서는 10대 소녀부터 20~30대 유부녀를 포함한 여성들이 끌려가 피해를 봤다. 우리나라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상들이 한결같이 한복차림에 단발머리다. 이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틀을 넘어선 여성 인권의 문제”로 시야를 넓히길 부탁했다.

 

▲ “우리가 너무 민족적, 국가적 관점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바라봤다.”며 안타까워한 송도자 일본군‘위안부’피해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틀을 넘어선 여성 인권의 문제”로 시야를 넓히길 부탁했다.

 

정의비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당당함과 정의로움을 상징하며,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와 화해의 손짓을 담고 있다. 또한, 모든 여성폭력 피해자들을 감싸 안으며 전쟁과 폭력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함과 동시에 이 지구 위에서 자행되고 있는 소녀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경종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세웠다고 한다.

 

▲ 통영 강구안 거북선 옆에 기림상을 건립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는 송도자 일본군‘위안부’피해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는 수시로 보고 이 문제를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에 건립”되길 진주기림사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당부했다. 사진은 기림상에서 바라본 통영 강구안.

 

기림 사업을 하면서 ‘천주의 한이 있다는 송 대표는 “강구안 거북선 옆에 세우려 했지만, 문화마당이라 한산대첩 축제가 열리는 8월 15일 행사를 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조용하고 외딴곳에 세웠다. 장소가 좁아 살풀이춤도 출 수 없다. 수시로 보고 이 문제를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에 건립”되길 진주기림사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당부했다.

 

▲ ‘인권로드- 길에서 만난 평화’ 시간에 오늘 내가 돌아본 곳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가슴으로 배우는 곳이다. 치욕의 시간에서 희망의 물을 길어 올린 시간이다. 역사는 사람이 만든다.

 

오늘 내가 돌아본 곳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가슴으로 배우는 곳이다. 치욕의 시간에서 희망의 물을 길어 올린 시간이다. 역사는 사람이 만든다.

한편, 진주기림사업회는 형평운동의 성지, 진주정신에 ‘위안부’피해할머니들의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는 의미에서 가칭 ‘평등평화소녀상’을 내년 3월 1일 건립할 예정으로 지역 시민들의 성금을 모금하고 있다.

(문의 전화 055-761-0411 / 010-9238-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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