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만큼 청춘이란 시대가 불안정한 시기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용불안으로 인한 청년실업 현실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최근 청년들은 학생이 아니면 수험을 준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종의 대세가 됐다.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거나, 수험준비만 하는 청춘들로 나뉘지만, 그것을 동시에 하는 알바도 있다. 그것은 바로 독서실 알바다. 지난 회 기사가 일과 학업이 병행가능한가를 물었다면, 이번에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알바생의 삶은 어떠한지 알아보았다.

 

"공부를 하니 이 정도 급여는 당연하다? 말인지 글인지."

독서실 총무를 지낸 선웅 씨의 이야기

대학을 졸업한 선웅(가명) 씨는 소위 ‘문과’ 출신이라 취업이 막막해 공무원시험 준비를 했지만, 생활비가 부족해 수험생활과 병행할 수 있는 수단으로 최근까지 6개월간 독서실 알바를 선택했다.

“학교 다닐 때 장학금 받아 남겨둔 돈도 있었는데 책 사랴, 강의 들으랴, 독립해서 사느라 공과금 내랴 점점 통장잔고가 밑바닥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무턱대고 공과금이라도 낼 수 있을 정도의 일이라도 할 수 있음 좋겠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제 동네에서 독서실 총무라고 뽑는 걸 보고 바로 시작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독서실은 소위 ‘알바생’이라는 단어보다는 ‘총무’라는 단어로 통일이 돼있었다. 선웅 씨는 아무래도 근로자 혹은 노동자로의 권리는 인정하기 싫고, 뭔가 대우는 하고 싶어서 쓰는 면피용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근로계약서는 안 썼죠. 임금에 나름 체계가 있어요. 총 4명이 교대로 일을 하는 구조였거든요. 첫 번째로 평일 오픈부터 6시까지 하는 사람이 일당 2만원, 두 번째로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하는 사람이 2만 5천원, 주말에 토, 일로 나눠져 있었는데 하루 종일 하는 구조였고 3만원이었어요.

하는 일들은 오픈이나 닫는 거 말고는 기본적인 책상청소와 건물청소부터 화장실 청소나 분리수거, 컴퓨터로 사람들 등록하고 관리하기, 자판기 음료수 넣기, 커피자판기 관리 등 잡다한 건 다 했다고 봐야죠.“

선웅 씨는 일 자체는 힘들지 않았지만 화장실 청소를 하다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질 뻔한 적이 잦았기 때문에, 가입되지 않았던 산재보험 탓에 다치게 되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고 이야기한다.

“저는 사실 사장하고 시작할 때부터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어요. 첫날에 인수인계를 받았는데, 안내도 없이 다음 월급 줄 때 인수인계는 일한 것에 포함되지 않으니 돈을 못 준다고 했는데 따졌거든요. 그나마 제가 있는 독서실은 사장이 상주하는 곳이 아니었고, 한 번씩 오던 편이어서 마찰이 적었지만 적어도 만날 때마다 업무지시를 계속 해대서 다툰 기억이 나요. 한 번은 제가 이제 손님이 안 오는 시간에 카운터를 비우고 전화번호 쪽지를 붙이고 다른 데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절 부르더니 엄청 화내더라고요. 니 자리는 여기다! 이러면서. 그 밖에도 분리수거나 자기한테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은근히 계속 부딪쳤죠.”

독서실 알바를 하면서 가장 힘든 시즌은 중고등학생 시험기간이라고 했다. 시험기간에는 독서실 자리가 남지 않을 정도였고, 쓰레기를 치워도 끝이 없었고, 떠드는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고, 학부모들의 문의전화를 계속 받아야만 했다.

“그래도 시험기간은 잠깐 반짝하고 힘든 거지만, 제일 힘든 건 일상적인 부분인데 아무래도 새벽까지 밤을 새야 한다는 부분이이죠. 2시까지 청소를 하고 집에 가서 씻고 자면 최소 3시에 잠드는 거예요. 원래 2시까지인데 힘들다, 다른 독서실은 한시까지라고 따지니 1시로 그나마 바뀌었어요. 어찌됐든 공부를 할 때는 생활리듬이라는 게 있는 건데, 보통 2시까지 공부하는 생체리듬으로 잡는 사람은 없는 거거든요. 주말만 하는 사람은 좀 낫지, 평일 저녁시간대 총무는 약속도 못 잡고 매일 그래야 되니 맨날 힘들다고 타령했죠. 이게 워낙 피로가 쌓여 힘들다보니 잠깐 하고 도망가는 사람도 많아서 대타해주는 일이 잦았어요.”

매일 나와 마감을 해야 하는 평일 알바가 돈은 가장 많이 받아도 누구 한명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공부보다 일에 투여해야 하는 시간이 많고, 새벽에 일을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웅 씨는 사장과 사이는 좋지 않아도, 총무끼리는 함께 수험생활을 준비하는 동료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안 되는 시간을 조율해 대타를 해주는 방식으로 협업을 했다.

“그게 웃긴 거죠. 넌 공부를 하니까 이 정도의 푼돈만 받아도 된다는 건데, 사실상 우리는 앉아있는 것도 노동인 거고, 독서실 관리는 우리들이 8할은 하고 있었고, 이게 알바를 그만 두고 싶을 때 그만두지도 못하는 게 총무가 구하고 그 자리를 채우고 가야 돼요. 대부분 독서실들이 이런 식으로 알바몬 이런 데나 정부사이트에 올리면 최저임금도 안주는 게 뽀록 나니까 그런지 학교 자유게시판 이런 데 총무가 셀프로 올리고 임금은 추후협의 이딴 식으로 올리는 거죠. 그런 게 상식이고 관행이라면 오히려 그게 잘못된 것 같아요.”

선웅 씨는 독서실도 학원과 같이 교육청에 설립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렇게 임금구조가 엉망인 곳을 국가교육기관에서 묵인해주고 방조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제가 알바를 하면서 정말 기억나는 날은 제가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어느 날은 누가 제 자전거 안장을 훔쳐갔더라고요. 근데 내 통장잔고엔 4000원이 있어서 정말 마음속으로는 울면서 자전거를 끌고 집에 갔던 기억이 나요. 제가 푼돈이란 걸 알면서도 들어왔지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저임금은 법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만든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선이고, 합의잖아요 ? 근데 근무지에서 공부를 하니 이정도 급여는 당연하다? 그런 건 사회가 만들어낸 허황된 주술이죠.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만든 규칙도 아니고 말이죠.”

타지에서 진주로 온 선웅 씨는 적절한 급여도 급여지만, 경제적 약자들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충격이 완화될 수 있는 복지시스템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제가 노동부 취업상담센터에서 취업상담도 받고 했는데 정말 형식적이고 쓸모가 하나도 없었어요. 최저임금은 진짜 만 원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요즘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뭐 청년수당인가 배당인가 그거 준다고 하잖아요. 차라리 그런 거라도 받고 싶단 생각이 계속 들었죠. 근데 제가 언제 시장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청년들에게 공짜로 돈을 주면 안 된다느니, 해이해진다느니 복지병 걸린다는 취지의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적어도 제가 청년일 때는 그런 돈은 꿈에도 못 꿀 것 같네요. 복지병이 존재라도 한다면 좀 걸려보고 싶네요, 하하.”

선웅 씨는 얼마 전까지 계약직으로 일해 모은 돈으로 계속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서 가능하다면 계속 진주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기자는 타지에서 진주로 유입된 청년들이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공무원 외에 무엇이 있는지 떠오르지 못했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런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주는 것이 지역사회의 의무이자 역할이 아닐까한다.

기자는 실태기획 2편에서 컵밥집을 다룬 기사를 내고 메일로 “최저임금에 맞춘, 일은 힘들지만 좋은 고용주들이 많다.” “진주 전체를 나쁘게 말했다.” 등과 같은 의견을 메일로 받았다. 좋은 지적이었다. 하지만 보편적 경험을 사적인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공론장을 만들어 함께 머리를 맞대야만 어떤 ‘일반화’와 ‘선한 사람들’의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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