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맘이면 설렜다.

한때는 해마다 하는 축제라 무시했다. 요즘은 신성한 의무감이 깃들고 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아침 이슬보다 더 고운 ‘진주’에서 보석처럼 열리는 유등축제를 찾아 10월 4일 어둠이 몰려올 무렵 집을 나섰다.

 

▲ 진주 남강유등축제

 

진주농산물도매시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를 탔다. 진주농산물도매시장에서 출발한 셔틀버스는 진주성 인근에 재깍 나를 데려다줬다. 퇴근 시간대인 오후 6시 20분쯤 출발했지만 정체는 없었다. 진주교를 지나며 건너편 앵두등 터널도 봤다. 멋지다. 지난해와 달리 완전 가림막이 아니라 드문드문 남강과 유등이 보였다. 옆에 지나가는 시내버스에 승객이 몇 없다.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야간가장행렬이 진주교 북단에서 공북문 도로 사이로 펼쳐진다. 진주대첩 승전 재현 행사를 따라 옛 진주보건소 앞까지 걸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비롯해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기록매체로 풍경을 담는다. 인도가 널널하다. 사람이 적다. 덕분에 예전처럼 까치발을 하며 구경할 필요가 없었다. 옛 진주보건소 주차장 건너편에서 두 아이와 함께 온 엄마도 인도에 쪼그리고 앉아 누구의 방해도 없이 구경 편하게 했을 것이다.

▲ 진주교 북단에서 공북문 도로 사이로 펼쳐진 진주대첩 승전 재현 행사 야간가장행렬

 

공북문 앞 매표소가 줄 설 필요가 없다. 신분증을 보이고 공북문으로 들어갔다. 진주유등축제의 시작과 끝은 진주성이다. 진주성에 들어서자 공기부터 다르다. 까만 밤을 수놓은 등들이 여기저기 반기는 모양새가 지저귀는 새 같다. 아이를 목말 태우고 성벽에서 가장행렬을 구경하는 사람 곁에서 덩달아 구경했다. 사람 물결이 없어 성벽에서 사진 찍기도 진주성을 둘러보기도 편했다.

▲ 진주성 내 진주성대첩·전투 재현등

 

공북문 지나 오른편에서 내려다보는 충무공 김시민 장군동상은 언제나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항전을 독려하고 있다. 내려다보이는 진주성대첩·전투 재현등은 그나마 사람들이 북적인다. 재현등(燈)에 있는 성문을 지나자 오른편에 의병등이 보이고 그 옆에 주먹밥을 나눠주는 아낙등이 보인다. 진주대첩은 민관군이 함께 싸워 적을 이겨낸 전투다. 조선군이나 관리들이 저 잘났다고만 했다면 아마도 적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 진주성 우물터에 ‘진주난봉가’를 연상하게 하는 아낙네들 빨래하는 풍경 사이로 말 탄 사내가 보인다.

 

우물터에 ‘진주난봉가’를 연상하게 하는 아낙네들 빨래하는 풍경 사이로 말 탄 사내가 보인다. 남편도 없이 며느리 혼자 시집살이하며 3년 동안 진주 낭군을 기다렸다. 얼굴도 몰라볼 정도로 시간이 지난 뒤 낭군을 첩을 데리고 왔다. 첩과 희희낙락하는 진주 낭군은 아내에게 권주가를 청하지만 아내는 목매 죽었다. "기생 정은 삼 년이요, 본댁 정은 백 년인데 / 내 이럴 줄 왜 몰랐던가/ 사랑 사랑 내 사랑아 / 어화 둥둥 내 사랑아“ 라며 때늦은 후회를 남긴 남편의 노랫가락이 들리는 듯하다.

 

▲ 나무에 매달린 등들이 눈처럼 내린다.

 

나무에 매달린 등들이 눈처럼 내린다. 그 사이를 혼자 거닐기에 가슴이 시리다. 울울창창한 숲처럼 등으로 빛나는 진주성은 오아시스처럼 편안한 휴식처로 변했다. 아름다운 등에 사진찍기 바쁜 아빠 등 뒤로 고개를 아래로 길게 축인 아기가 잠이 들었다. 진주성에서 바라보는 유등은 아름답고 곱다. 진주성 내를 곱게 밝힌 등을 따라 한 바퀴 돌아도 지겨울 틈이 없다. 남강으로 내려가 부교를 건넜다. 일렁이는 부교에도 사람이 별로 없어 천천히 남강에 비친 유등의 물결을 구경하며 건너기 좋았다. 더구나 진주성과 음악분수 사이 부교는 대숲을 활용 구간이 대폭 줄고 성벽과 대숲이 어울려 구경하기 운치를 더 했다.

 

▲ 음악 분수대 광장에는 진주시 자매도시인 중국의 시안에서 만든 등이 웅장하게 반긴다.

 

음악 분수대 광장에는 진주시 자매도시인 중국의 시안에서 만든 등이 웅장하게 반긴다. 시안(西安)은 중국 산시성(陝西省)의 성도(省都)로 장안(長安)이라고 불린 곳이다. 주나라 문왕부터 한나라, 당나라까지 13개 왕조의 수도였다. 덕분에 자매도시에서 웅장하게 마련한 진시황릉의 병마용갱을 등으로 만날 수 있다.

12간지 동물 등에 솔로 탈출 소원과 취업 기원 등을 담은 저마다의 소원이 적힌 리본에 바람이 일렁인다. 소원 담은 등 뒤편으로 ‘진주의 진주 같은 책전(冊展)’도 있다. 작은 부스 안에는 팝업북을 만드는 가족의 흥겨운 재잘거림이 들린다. 남명 조식 선생이 1555년, 단성 현감에 제수되자 이를 사직하면서 조선 명종에게 올린 《단성현감사직소(丹城縣監辭職疏)》처럼 상소문 쓰기 체험도 있다.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없어졌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미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비유컨대, 마치 1백년 된 큰 나무에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다 말랐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언제 닥쳐올지를 전혀 모르는 것과 같이 된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남명선생이 살았다면 어떤 상소문을 쓸지 궁금하다.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소설 <설국> 첫 문장처럼 천수교 위에 놓인 ‘앵두등’ 터널로 하얀 설국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부스를 나오자 때마침 음악 분수대에서 경쾌한 음악과 함께 시원한 물줄기가 밤하늘을 가른다. 속이 다 시원하다. 분수대를 나와 천수교쪽으로 걸었다. 유등은 물론이고 남강마저 보지 못하게 만든 지난해 가림막과는 달리 올해는 유료축제장을 구분하는 철조망이 대신한다. 철조망을 지나 천수교 이르자 탄성이 나왔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소설 <설국> 첫 문장처럼 천수교 위에 놓인 ‘앵두등’ 터널로 하얀 설국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깜한 밤이 새하애졌다. 앵두등 터널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경치다. 단지 터널 안에서 남강과 유등을 보기에는 불편하다. 오직 터널 속을 거니는 이들에게만 좋은 설국이라 아쉽다.

 

▲ 남강에 펼쳐진 구름조각 같은 유등은 내게 그리움을 깨운다.

 

설국으로 가는 터널을 나오자 철조망이 유료와 무료입장을 가른다. 신분증을 보이고 축제장으로 들어갔다. 진주시민에게는 평일에만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음식 부스에 이르자 사람들의 체온이 가득하다. 아마도 반가운 이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이 아름다운 풍광을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 밀려드는 사람들이 만든 인파로 남강과 유등을 보기 힘들었던 유료 이전의 그때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시원한 강변을 따라 보석 같은 유등을 만나는 즐거움은 일상의 스트레스가 훨훨 날아가 버린다. 유등의 붓질로 남강은 이미 한폭의 수채화로 변했다. 진주 남강을 소망등 터널을 거닐며 소망을 적은 시민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나또한 기원했다. 미어터질 사람 속에서 구경하기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나는 이번에는 망경동 수상무대에서 촉석루와 남강, 유등을 벗 삼아 삼바도 구경했다. 일부 음식 판매 부스를 제외하고는 줄 설 필요가 없다. 연꽃봉오리 모양의 진주 유등빵을 맛보았다. 진주시화(市花)인 석류에서 뽑은 성분을 앙금에 담았다는 설명처럼 석류 맛과 향이 난다.

 

▲ 진주시 망경동 수상무대에서 촉석루와 남강, 유등을 벗 삼아 삼바도 구경했다.

 

유·무료의 경계를 나와 진주교 아래를 지나 귀빈예식장 남강변을 걸었다. 경남문화예술회관까지 사람의 물결이 이어지지만, 체온이 그리울 정도다. 진주교를 건너 시외버스 터미널 아래 남강변에서 열리는 드라마페스티벌 현장으로 걸었다. 축제 중에는 시민들에게 차량 정체를 이유로 자가용 안 타기, 대중교통 이용하기를 권장한 진주시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덕분인지 시내를 오가는 차들은 붐비지 않는다. 지나가는 시내버스에도 사람이 없다. 드라마 페스티벌 부스들이 있는 곳은 더욱 을씨년스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전과 달리 진주교 아래에서 진주 남강과 유등을 구경하는 데는 돈을 받지 않는다.

 

▲ 왜적을 물리치기 위한 군사 전술과 함께 진주성 병사들이 성 밖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이었던 유등의 의미가 퇴색된 느낌이다.

 

1592년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일본군과 싸울 때 성 밖의 지원군과 군사 신호로 풍등(風燈)을 올리고 횃불과 함께 남강에 유등을 띄운 데서 유래했다.

진주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사는 내게는 가림막과 유료화가 시행된 지난해와 올해는 무척 낯설다. 유등축제를 유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처지에서도 지난해와 올해의 유등축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왜적을 물리치기 위한 군사 전술과 함께 진주성 병사들이 성 밖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이었던 유등의 의미가 퇴색된 느낌이다. 유료화와 가림막으로 멍든 진주시민에게는 불통의 축제로 전락한 느낌이다.

 

▲ 진주교~동방호텔 앞 남강변

 

진주성을 중심으로 남강을 거닐었던 3시간은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유등과 남강이 빚은 아름다운 빛의 향연은 걷는 내내 평안하게 한다. 다만, 해마다 기다리며 보아온 아름다운 풍광을 나만 구경하는 게 미안하다. 유등축제 동안에만 34만의 진주시민이 열 배로 늘어났던 기적이 지난해부터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물결에 휩쓸렸던 쏠쏠했던 재미가 이제는 추억으로 남을 모양이다.

 

▲ 남강에 펼쳐진 구름조각 같은 유등은 내게 그리움을 깨운다.

 

남강에 펼쳐진 구름조각 같은 유등은 내게 그리움을 깨운다. 싱싱한 삶의 기운을 북돋운다. 슬렁슬렁 걷다 보면 ‘진주’라는 보물을 찾는다.

‘아침이슬보다 더 고운’ 진주로 떠나는 진주 나들이에는 이 밖에도 가볼 곳이 많다.

 

▣ 진주성 이외 꼭 가볼 곳

- 진양호 : 아침 물안개, 저녁 노을이 멋진 인공호수다.

- 경상남도 수목원 : 산림박물관을 비롯한 열대식물원, 야생동물원, 무궁화공원, 화목원, 생태온실, 민속식물원, 삼림욕장이 있다.

- 용호정원 : 1922년 당시 거듭되는 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헌경(朴憲慶)선생(1872~1937) 자신의 재산을 털어 만든 정원이다.

- 망진산 봉수대 / 선학산 전망대 : 남강과 진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성전암 : 이반성면 여항산 중턱에 있는 절. 조선 인조가 이곳에서 100일 기도 후 왕에 올랐다는 전설이 있다. 저녁 노을에 물든 능선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 : 국내 유일의 청동기 전문 박물관이다. 당시 생활상을 재현한 야외전시장은 산 교육문화의 현장이다.

진주는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전주비빔밥 뿐 아니라 진주비빔밥도 유명하다. 진주성 전투에서부터 유래됐다고 하는 진주비빔밥은 꽃밥 또는 칠보화반으로 불린다. 진주비빔밥을 비롯한 맛집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운치를 더해보면 좋겠다.

 

▣ 진주 맛집

- 천황식당 : 중앙시장 내. 일제 강점기에 지은 허름한 목조건물 외양과 달리 진주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진주비빔밥은 나물에 육회를 얹어 나온다.

- 진주실비 : 통영다찌, 마산통술에 견주는 것이 진주실비다. 신안동사무소 뒷골목 주택가에 실비집들이 늘어서 있다. 맥주 5000원, 소주 1만원이면 안줏값이 필요없다.

- 수복빵집 : 중앙시장 내 70년이 된 허름한 빵집이다. 단팥죽에 찍어 먹는 찐빵 맛이 최고다.

- 장어집 : 진주성 인근 남강 변 언저리 장어구이집들이 즐비. 연탄불로 초벌구이하는데 이 냄내의 유혹을 이겨내며 지나가기는 어렵다.

- 하연옥 : 이현동 소재. 만화 <식객>에도 소개된 진주냉면집. 두꺼운 육전을 고명으로 올렸다.

- 아리랑 : 신안동. 밤늦도록 공부를 해 출출해진 조선시대 유생들이유생들이 밤에 글공부하다 배가 고프자 거짓으로 향을 피워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었다고 전하는 헛제사밥이 딱이다.

 

▣ 진주 유등축제

유등축제는 10월 1일부터 16일까지 진주 남강 일대에서 펼쳐진다. 진주교~진주성~천수교 구간은 돈을 내야 한다.

- 보통권이 성인 10,000원(학생 5,000원)이며 예매하면 8,000원(학생 4,000원)이다.

- 평일에는 진주시민은 신분증 지참한 진주시민은 무료이며 경남도민과 남중권발전협의회(순천,여수,광양,보성,고흥) 시민들은 5,000원이다.

- 만 65세 이상과 국가유공자, 장애인, 병장이하 의무복무자는 축제기간 5,000원이다.

- 만 7세 미만 어린이는 무료다.

개천예술제와 코리아드리마페스티벌은 무료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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