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예우 받는 상머슴도 잘못하면 퇴출…꼴담살이 깜냥 같은 장관 임명한 대통령
새경을 받고 주인집의 한 해 농사를 맡아 하는 이를 머슴이라 한다. 머슴은 천민인 노비와 달리 평민이 스스로 일손이 부족한 대농이나 양반 지주와 고용 계약을 맺은 일꾼이다.
조선 중종 때 최세진의 <훈몽자회>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사관계를 맺은 노동자 계급이지 싶다. 이들 머슴 계층은 노비와 함께 조선사회를 먹여 살리는 동력원이었다. 일본의 강압으로 갑오개혁이 추진되어 노비가 해방되자 급격히 늘어났던 머슴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쳐 70년대까지 존속해오다 이농과 농업의 기계화로 점차 사라져갔다. 머슴은 노비와 달리 차별과 천대가 거의 없었다. 요즘으로 치면 기량에 따라 기술 자격 등급이 있듯이 머슴도 상머슴, 중머슴, 꼴담살이로 나누어 고용했다.
여기서 상머슴은 최고 예우와 새경을 받는데 정월 대보름이 지나서 상머슴의 노사 합의로 새경 체결이 이루어져야만 그 동네 중머슴 새경이 차등을 두고 정해진다. 상머슴은 오십여 마지기 논밭을 제 손바닥 보듯 어느 논이 구릉논인지 마른논인지 어디쯤 찬물이 나는지 큰물 지면 매양 터지는 물꼬는 어딘지 훤히 알고 있었다. 쟁기질이나 써레질을 빠르고 잘하기도 했지만 온종일 부려도 소가 지치질 않았고 아낙네들 모를 꽂는 손에 덩어리 하나 걸리지 않는다고 좋다고 했다. 가을걷이 볏짐이 고샅으로 들어오면 지게와 사람은 뵈질 않고 늘어진 벼 이삭만 들썩들썩했다. 초가지붕 이엉을 덮어도 용마름 엮는 일은 꼭 그가 했다. 중머슴은 일솜씨도 떨어지고 나이도 한창때를 바라보거나 기웃 넘긴 축으로 퇴비 장만이나 밭농사를 주로 하면서 상머슴에게 일을 배웠다. 꼴담살이, 쇠꼴을 베고 쇠죽을 끓이거나 상머슴 일심부름을 하는 어린 꼴머슴은 새경이 따로 없고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설·추석이 되면 옷이나 몇 벌 해 입히고 용돈 몇 닢 쥐여주는 게 전부였다.
제 깜냥에 맞게 부지런히 일한 머슴은 주인과 겸상 대작을 하며 늘 당당할 수 있었다. 주인은 오늘 타작하고 싶은데 '이러저러하니 내일 합시다' 하면 머슴 말을 믿고 따랐다. 올해도 우리 집에 와주게 했는데 "싫소. 다른 집 알아볼라요" 하고 머슴이 틀면 얼마나 지독하게 부렸으면 저럴까 하고 오히려 주인이 욕을 먹었다. 그런데 이런 상머슴이라도 흠결이 있거나 제 깜냥이 되지 못하면 새경을 깎거나 그 경우가 심하면 마을에서 머슴을 살 수 없도록 퇴출해버렸다. 이를테면 게을러터져 매양 늦잠이거나 일을 미룬다든지 또는 술주정이 심해 포악하다든지 일이 서툴러 낭패를 보게 한다든지 하는 경우들이다. 주인과 동리 주민이 함께 모여 머슴을 앉혀 놓고 감봉이든 퇴출이든 결정한 사항을 통보하면 군말 없이 따라야 했다.
요 며칠 동안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후보자 인사 청문회를 쭉 지켜보면서 옛날 머슴 청문회가 훨씬 윗길이란 생각이 든다. 주인의 위임을 받은 국회의원들이 흠결을 찾아 물으면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든지 차라리 흠결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게 맞거늘 구차한 변명을 하고 오히려 고소를 하니 어쩌니 되레 패악질이다.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민정수석이 검증한 후보자를 국외에서 전자결재로 임명했다. 주인의 의사를 깡그리 무시하고 꼴담살이를 상머슴으로 들인 처사다. 상머슴은 하루아침에 그냥 되는 게 아니다. 꼴담살이로 시작해서 야단맞아 가며 중머슴 일을 배우고 상머슴의 경륜을 터득해야지 깜냥에 맞지 않는 일에 덤벼들면 옳은 일꾼이 아니다.
몇 해 전 자기 지역구를 지나가는 교량의 부실 공사를 낱낱이 파헤치고 다닌 한 지방의원이 떠오른다. 깜에 맞는 의정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시의원이 국책 사업을 공약하고 국회의원이 제 고향 마을 도로 확장에 힘쓴다면 그 또한 얼치기 머슴밖에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