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기댄 해결·구조 아닌 '각자도생'서글픈 현실 비춰

자동차 영업대리점 과장 정수(하정우)는 큰 계약 건을 앞두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가던 중 무너져 내린 터널 안에 갇히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 다시 무너져 버릴지 모를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뿐이다. 그가 의지할 것이라곤 배터리 78% 남은 휴대전화와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을 위해 준비한 생일 케이크가 전부다.

구조대책본부 김대경 대장(오달수)은 꽉 막혀버린 터널에 진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구조는 더디게만 진행된다.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은 현장을 지키며 정수의 무사 생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구조가 지지부진해지면서 구조 작업을 둘러싼 여론이 분열된다. 게다가 인근 제2터널 공사 재개를 위해서도 구조를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이제 터널 밖 세상은 터널 안의 정수가 죽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터널이 무너졌어요. 터널이 무너졌다고요."

안테나가 잡히는 곳을 겨우 찾아 힘겹게 몸을 움직여 119에 전화를 걸었을 때만 해도 정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고립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곧 그를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를 버티게 하는 한 줄기 빛이었다.

"대한민국이 우리를 구하려고 총동원됐다고요".

정수의 믿음과 달리 터널 밖 세상은 너무도 빨리 그를 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논쟁한다.

구조보다 의전이 먼저인 공무원들, 제대로 된 매뉴얼조차 없는 구조 작업, 인증샷 찍기에 바쁜 윗급들, 기록 등을 운운하며 생명을 기삿거리로 취급하는 언론 등은 과장도 풍자도 아닌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다.

김성훈 감독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터널>의 시나리오가 7년 전에 나왔기 때문에 세월호를 염두에 두고 찍은 것이 아니다"라고 못 박은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를 떠올리고 거슬러 올라 삼풍백화점을 떠올린다.

설계도는 엉망이고 건설 과정에서 안전지침도 제대로 따르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에 FM대로 지어지는 건물이 어딨느냐?"라는 뻔뻔한 태도, 건설사의 이해관계가 얽히며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구조 작업, "최선을 다하세요"라는 말 이외에는 그 어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행정안전처 장관 등의 모습에서 재난 영화는 다큐멘터리로 치환된다.

우리는 매번 규모가 확장된 채 되풀이되는 재난 현장에서 한 치 앞도 나가지 못한 현실을 본다.

블랙코미디 같은 헛헛한 웃음이 터널 밖에서 연출되고 있을 때 되레 터널 안 정수는 인간성을 잃지 않는 따뜻한 웃음을 만들어 낸다.

낙천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정수는 생수와 잡음 섞인 라디오, 그리고 티격태격하는 그 무엇과의 앙상블을 통해 영화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구해줄 것이라고 믿으며 끝까지 서로 다독이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좀비재난영화 <부산행>이 그러했듯 <터널> 역시 공권력에 기댄 구조적 해결보다는 개인의 사투와 희생에 의존한 '각자도생'이라는 서글픈 현실적 결말을 택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터널 밖 그리고 터널 안 사람을 통해 <터널>은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현실적 절망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사람보다는 돈이 우선되는 세상, 그 속에서 영화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다시 묻는다.

무너진 터널 속 단 한 사람의 생존자를 위해 우리 사회는 얼마나 오래 기다려줄 수 있는가.

"아니! 계속 까먹으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저 터널 안에 사람이 갇혔습니다. 사람이."

알고 있지만 너무 쉽게 잊었던, 그래서 너무 쉽게 그만 하라고 했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일침을 가한다.

라디오 부스 안에 갇힌 채 홀로 고군분투했던 <더 테러 라이브>(2013)의 하정우는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서 희로애락과 극한의 연기를 오가며 살아 있는 인간을 그려낸다.

정우의 아내로 분한 배두나는 밥 한 공기를 처연히 내려다보는 눈빛 하나로 기다리는 자의 절박함을 표현해냈다.

"엄마, 회사에 꼭 다음주 신입사원연수회 갈 수 있다고 전해줘."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미나(남지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너무 미안하잖아요"라던 구조대장 대경 등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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