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여행하는 법>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지음
가택연금형에 떠난 내 방 여행 '여유·통찰·공감' 기회로

여행(격주로 여행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이 어쩌다 일이 되고 보니 여행의 맛을 잊은 지 오래다.

누군가는 일탈을 위해 혹은 비우려고 여행을 떠난다지만 나에게 여행은 일의 연장이요, 시작부터 머릿속이 복잡하다.

여행지 선택에서부터 상당히 전략적이다. 기껏 떠난 곳이 애초 생각과 맞지 않았을 때의 좌절이란. 마감의 압박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감상은 딴 세상 이야기다. 카메라 렌즈를 이리저리 들이대며 가장 괜찮은 풍경을 프레임에 담아내려고 오감을 모은다.

▲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생각하고 상상하고 통찰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 여행은 시작된다.

시시각각 떠오르는 기사의 첫 줄을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댄다.

타인(내겐 독자다)의 시선을 의식하는 강도는 다르겠지만 언젠가부터 현대인의 여행하는 모습은 참으로 천편일률적이다.

맨눈으로 담기 전에 카메라부터 들이댄다. 셀카봉으로 마주하는 자신의 매무새를 다듬기 바쁘다. 여기에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행복에 겨워 죽겠다는 표정까지.

렌즈만 바라보던 눈은 곧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누군가의 댓글을 기대하며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올리기까지 여념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42일 동안 내 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사람을 만났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 -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 드 메스트르는 1790년 토리노에서 결투를 벌였다. 토리노에서 결투는 불법이었기에 그는 42일간 가택연금을 받는다. 그는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대신 자신의 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살짝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저자는 가택연금형을 받지 않았더라도 내 방 여행을 이미 계획하고 있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무엇보다 돈이 한 푼 들지 않는 점이 이 여행의 미덕이요, 날씨와 기후의 변덕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한다.

소심한 사람에게 특히 이 여행을 추천하는데 도둑을 만날 걱정도 없고 낭떠러지나 웅덩이를 만날 걱정도 없단다.

"로마와 파리를 보고자 그 먼 길을 수고스럽게 떠났던 여행자들을 비웃으며 우리랑 하룻길 조금씩 가자! 우리를 가로막을 게 무언가. 우리 자신을 기꺼이 상상에 내맡기고 그가 이끄는 대로 가면 될 것을."

드 메스트르는 내 방 여행에 앞서 긴 여정이 되리라 짐작한다. 어떤 정해진 규칙과 방법을 따르지 않고 종횡으로 누비기도 하고 비스듬히 가로지르기도 할 것이기에. 지그재그로 걸어 볼 것이며, 기하학이 허용하는 온갖 동선으로 걸어볼 것이기에.

"내 방 여행을 하면서 곧바로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탁자에서 시작해 방 한구석에 걸린 그림 쪽으로 갔다가 에둘러 문쪽으로 간다. 거기서 다시 탁자로 돌아올 요량으로 움직이다가 중간에 의자가 있으면 그냥 주저앉는다. 의자란 얼마나 훌륭한 가구인가."

저자의 동선이 그려진다. 이쯤에서 저자는 의자에 앉아 사색에 빠졌을 것이다. 회화와 음악 예술장르와 관련해 어떤 부인과 논쟁을 벌였던 때를 떠올리며 반박할 말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벽에 걸려 있는 라파엘로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그를 애도한다. 우리의 탄생과 죽음을 지켜보는 침대를 두고 감상에 빠지고, 여행에서 유일하게 마주치는 하인 조아네티와의 대화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에게는 또다른 여행 방법이 있다.

영혼과 동물성이 각각 여행을 떠난다. 드 메스트르는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지 않고 영혼과 동물성, 혹은 영혼과 타자로 구분해 영혼과 동물성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동물성이 자신만의 길을 가거나 혹은 영혼이 홀로 여행을 떠났을 때 벌어진 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들은 내게 어떤 곳도 가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그들은 내게 이 우주 전체를 남겨 놓았다.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이 내 뜻에 좌우되었다."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생각하고 상상하고 통찰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 여행은 시작된다. 이왕이면 저자가 42일간의 감금에서도 잊지 않은 익살과 해학과 여유도 갖추면 좋겠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여행을 참맛을 일깨운다.

"물이 끓는 동안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독자 여러분에게 말한 바 있지만 나는 이렇게 선잠 들 때의 아늑한 기분이 참 좋다. 조아네티가 커피 주전자를 화로의 쇠 받침 위에 올려놓을 때 나는 소리도 참 듣기 좋아서 그 소리에 나의 뇌리와 나의 모든 신경도 공명한다."

이토록 즐거운 42일간의 여행이 끝났을 때 그는 아쉬웠을까?

"그래! 이건 저택이고 문이고 계단이다. 벌써부터 짜릿한 기분이 든다. 레몬을 자르기만 했을 뿐인데 이미 혀에서 신맛이 도는 것과 같다. 오, 나의 동물성이여, 몸조심하기를!"

194쪽, 유유.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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