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들 몫

"형평운동이 뭐꼬?"

1992년에 형평운동을 기념하자고 처음 제안하였을 때 많은 진주 시민이 보인 첫 반응이었다. 그렇구나, 우리는 오랫동안 형평운동을 잊고 있었다. 1923년 4월 진주의 선각자들은 형평사를 창립하였다. 그 목적은 조선의 신분제에서 가장 천대받던 백정들 차별을 없애고 똑같은 사람으로 평등하게 대우하자는 것이었다. 선각자들은 "공평(公平)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고 주장하였다. 사회는 공평하여야 하고, 사랑과 배려는 사람의 기본 소양이라는 것이다. 형평사 창립은 역사에 길이 빛나는 인권운동의 출발이었다. 형평운동은 전국으로 확산해 일제 36년 동안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사회운동으로 기록되었고, 진주는 형평운동의 메카로 기억되었다.

▲ 김중섭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인간 존엄을 주장하며 평등 사회를 만들고자 한 형평운동은 오늘날에 더욱 귀중하게 평가된다. 그러나 아직 그 정신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간 존엄이나 차별 없는 사회가 무엇인지 모르는, 심지어 무시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럴수록 형평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그 정신에 따라 사람을 존중하는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1993년, 형평사 창립 70주년이 되는 해, 진주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기념식이 열렸다. 국내외 연구자들과 시민은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형평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평가하였다. 발표문은 일본에서 책자로 발간되어 진주를 인권운동의 발상지로 인식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그리고 진주 시민들은 형평운동 기념탑을 세워 그 정신을 되새기고, 그 역사를 배우며, 인간 존중의 인권도시 진주로 향하여 가는 징표로 삼고자 하였다. 기념탑 건립을 위한 성금 모금에는 진주 시민만이 아니라 출향 인사, 일본과 미국의 동포들도 참여하였다. 터 선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시민들은 조선 오백년 동안 성 안에서 살지 못했던 백정들의 한을 풀어주자는 데 뜻을 모았다. 당시 백승두 진주시장은 시민의 뜻을 존중하여 시가 소유한 진주성 동문 앞의 터를 제공하였다.

1996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하는 세계 인권의 날에 형평운동 기념탑이 제막되었다. 1343명과 38개 단체가 보내준 성금의 결실이었다. 제막식이 열린 자리에 백 시장과 국회의원, 시의원을 비롯한 많은 시민이 모였다. 미국과 일본에서 온 축하객들도 함께하였다. 그리고 이 기념탑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진주시에 기증되었다.

역사는 앞서간 선각자들이 만들었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역사의 자취는 긴 시간 겹겹이 쌓인 축적물이다. 우리는 그러한 진주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 자취를 보존하려고 한다.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그리고 후손에게 남겨주어야 한다. 진주가 정녕 역사도시라고 한다면, 구석구석에 역사의 자취가 있어야 한다. 1300년의 역사도시라고 자랑하지만, 진주에 어떤 자취가 남아 있나?

형평운동 기념탑 이전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기회에 역사의 의미를 다시 새기며 역사도시 진주의 정체성을 올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형평운동 기념탑에는 그 역사를 기억하려는 시민의 뜻이 담겨 있다.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역사는 어느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 특히, 짧은 기간 권력을 갖고 있는 특정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시민 모두의 것이다. 현재 살아가는 시민들만이 아니라, 과거에 살았던 선조들의, 또 앞으로 살게 될 후손들의 것이다. 거듭, 형평운동 기념탑을 진주성 동문 앞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도시 진주를 지키기 위하여. 또 진주정신을 살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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