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비밀의 정원을 거닐다

수많은 꽃송이들과 짙은 흙이 뒤섞인 정원에 들어갔다. 어둡지만 깊은 아름다움이 서려 있는 곳이었다. 구석에는 청동으로 빚은 열두 개의 크고 길쭉한 화로 위로 형형색색의 화염이 솟아올라있었다. 화염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냉정한 아름다움에 적당한 온기를 더했다. 고요한 정원이 아주 적적하지만은 않았다.

지난 2월, 짧은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Jono McCleery의 세 번째 정규 음반 'Pagodes'가 도착해 있었다. 추상적으로 표현된 앨범 아트는 내게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재즈와 포크가 가미된 그의 신비로운 트랙들은 상상 속에 갖가지 심상을 더했다. 서사시 같은 'Pagodes'는 어렵지만 끊임없이 궁금해지는 그런 음반이다.

정원의 첫 구간에서는 음울한 기타와 스트링 선율이 흐르는 트랙을 만날 수 있다. 푸른 화염이 타오르는 청동화로에는 'The Idea Of Us'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새겨져있다. 급류에 휩쓸려버리듯 서로를 향한 끌림을 참을 수 없는 두 사람의 불안한 감정과 그 속도가 느껴진다.

안정된 분위기 속에 흐르는 'Age Of Self'는 높은 돌탑 위에서 세상을 관조하고 있는 존재가 읊조리는 시처럼 들린다. 자아의 시대가 도래했고, 스스로의 뿌리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알지 못한다면 모든 움직임은 사상누각과 같이 해체될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Since I'부터 한층 복잡해진 음악과 함께 정원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지금까지 어쿠스틱과 포크의 스타일이었다면 이 트랙부터는 현대적인 퓨전 재즈의 색깔이 짙다. 조각난 하프 선율의 마디가 트랙이 끝날 때까지 되풀이되는 'Painted Blue'는 청량하고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비슷한 느낌으로 이어지는 'Ballade'는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이 깃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불을 막지 말고 물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불을 지켜내요'라고 말하는 가사가 흥미로웠다.

정원의 오래된 악기들이 흘려내는듯한 매력적인 사운드가 계속 이어진다. 'Clarity'는 건조한 느낌으로 숨 막히도록 달콤한 메시지를 전하는 노래다. 하나의 관계에서 신뢰를 형성해나가고 그 사이에서 '명료함'이 생기는 묘한 과정이 담겼다. 신뢰라는 것이 순식간에 생기는 감정이 아닐 텐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 든다. 'The clarity is closer...' 하며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그런 에너지가 생겨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원의 투명한 연못 주변으로 가면 'Halfway'라 적힌 청동화로가 서 있다. 이전의 트랙들보다 풍부해진 스트링과 드럼 소리로 화염 또한 힘차게 타오르는 것 같다. 'Bet She Does'로 넘어가면 다시 첫 구간의 느낌으로 돌아간다. 이 노래에서, 그 남자를 찾아 온 그녀는 당신이 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을 너무도 보고 싶어 했단 것을 확신하고 있다. 구슬픈 기타 소리와 목소리 때문에 그런 확신조차 절절하게 들린다.

'Fire In My Hands'는 어쩌면 이 앨범 아트의 주제가 그대로 드러나는 제목이 아닐까 싶다. 재지한 피아노 연주 위로 긴장감이 가미되는 스트링이 더 얹어지는데 손에 불을 쥔 느낌이 잘 형상화된 것 같다. 'Desperate Measure'는 앞의 트랙에서 관계의 명료성을 찾던 연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들은 눈앞의 어떤 경계를 건너가려 한다. 서로의 발걸음을 녹여버릴 '절망적인 수단'은 경계를 넘어서는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기적(miracle)'으로 불린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메아리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재즈 피아노와 일렉 기타 솔로 연주가 돋보이는 'Pardon Me'를 지나면 어느새 정원의 마지막 구간에 도착해있다. 'So Long'은 'Pagodes'에 수록된 어느 곡보다 어둡고 짙으며 무겁다. 이전 트랙인 'Halfway'에서 느꼈던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느낌에 무게감이 더욱 실어졌다. 정원을 지나가며 마주쳤던 모든 화염이 중간 부분의 심장 박동 소리에 맺혀있는 기분이 들었다.

Jono McCleery가 만들어놓은 세계에 상상으로 정원까지 만들어놓았더니 무척이나 방대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곡에서 느껴졌던 냉혹한 기분은 그의 음악과 함께 하는 산책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가 사용한 언어들은 나를 분명하게 매료시켜 놓았다. 모든 노래의 가사를 전부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음악을 듣다가 탄성을 뱉은 곡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철학적이며 시적인 언어들에 신비로운 분위기가 더해지니 경건한 기분마저 느낀다. 나는 그런 섬세한 언어를 가진 노래들을 사랑하니까 그의 냉정한 기운도 충분히 감내할 생각이다. 그의 다른 음반들에게도 시간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Jono McCleery의 'Pagodes'를 위한 사운드그래피. 이 정원을 발견했을 때, 마른 색감만큼 초록이 만연해서 음울하고 짙은 와중에 의외의 싱그러움을 느꼈다. 그런 감정과 차분함이 Jono McCleery의 음악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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