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에서 한나절] 경남 진주시 월아산 장군대봉

달이 뜬 자리에 해도 뜬다. 두 봉우리 사이로 뜨는 달과 해는 천하일품이다. 두 봉우리는 낙타 쌍봉을 닮았다. 봉긋 솟은 여인의 젖가슴 같은 두 봉우리 사이로 ‘휘영청 둥근 달을 토해놓는 풍경이 아름다워 아산토월(牙山吐月)’ 이라했다. 산 이름도 ‘월아산(月牙山)’이다. 달음산이라고도 한다. 아침 해돋이도 아름답다. 해돋이는 경남 진주 8경 중 하나다. 금호지(금산연못)에 비친 달과 해의 모습은 언제나 사람들을 푸근하게 한다. 봄 햇살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가만히 잊지 못하게 하는 봄바람에 달이 뜨고 해가 뜨는 아름다운 풍경 속의 산으로 3월의 마지막날 향하게 했다.

▲ 진주 진성면에서 바라본 월아산 국사봉(사진 오른쪽)과 장군대봉, 두 봉우리는 낙타 쌍봉을 닮았다. 봉긋 솟은 여인의 젖가슴 같은 두 봉우리 사이로 ‘휘영청 둥근 달을 토해놓는 풍경이 아름다워 아산토월(牙山吐月)’ 이라했다.

보통 장군대봉으로 올라가는 산행은 청곡사에서 시작한다. 청곡사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 정도다. 월아산 두 봉우리를 제대로 걷는 이들은 금산면 금호지 체육공원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계양재~첫봉~전망대~410봉~국사봉~질매재~월봉~장군대봉~두방사~청곡사~청곡사 주차장으로 많이들 걷는다. 점심 먹는 시간을 포함해 4시간 30분 정도다.

▲ 진주 월아산 두 봉우리인 국사봉(북쪽)과 장군대봉(남쪽) 사이, 질매재가는 길은 벚나무들이 벚꽃을 팝콘처럼 튀기듯 앞다투어 핀다.

편하게 장군대봉에 올라갈 마음에 월아산 두 봉우리인 국사봉(북쪽)과 장군대봉(남쪽) 사이, 질매재에 차를 세웠다. 경남 진주시 금산면 월아마을에서 진성면으로 넘어가는 길은 벚나무들이 벚꽃을 팝콘처럼 튀기듯 앞다투어 핀다.

▲ 질매재에서 월아산 장군대봉 가는 완만한 길은 시멘트 포장길이다.

질매재 생태통로에서 왔던 길을 본 뒤 재너머도 보았다. 장군대봉으로 향하는 시멘트 임도를 따라 차근차근 길을 걸었다. 운동 없이 산 까닭인지 완만하게 경사진 길에도 숨을 헉헉거린다. 건너편 국사봉이 평안하게 보인다. 초록빛 봄이 빚은 색채가 걸음을 세운다. 노란 산수유도, 연분홍빛 벚꽃도, 하얀 매화도 이처럼 아름답지 않다. 초록빛에 걸음을 멈추고 나무 그늘에 쉬어간다.

▲ 솜털 같은 버드나무 새순들이 뾰족하게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면서 자꾸만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미련 탓일까. 깎아지른 바위 틈새에서 진달래가 힘내라며 선 분홍빛으로 응원한다. 그 옆에는 솜털 같은 버드나무 새순들이 뾰족하게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 초록빛 봄이 빚은 색채가 걸음을 세운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남강을 품은 들녘이 보인다. 들에는 아쉽게도 봄이 없다. 계절을 잊은 비닐하우스가 들을 감추고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뒤로 물러서자 바위 사이에 촛대 같기도 하고 암초에 걸린 돛단배 같은 작은 돌들이 보인다. 누군가의 바람이 깃들었을까.

1시간여 걷자 철탑이 보인다. 방송사와 통신사의 중계탑이 하늘 향해 솟아올라 있다. 철탑 못 미처에 ‘약수터’라 검은 매직으로 쓴 돌이 걸음을 그쪽으로 옮기게 한다. 오솔길로 들어가 보지만 없다. 목마른 목을 축일 물은 없다.

▲ 월아산 장군대봉 정상 전망대

철탑 바로 옆이 장군대봉 정상이다. 정상은 그늘 하나 없이 온전히 햇살을 그대로 받는다. 정상 전망대 옆으로 아주머니 두 명이 쑥 캐기에 바쁘다. 햇살을 온전히 품은 봉우리의 쑥은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긴 의자에 등을 기대고 가져간 과자와 캔커피를 먹었다.

▲ 월아산 장군대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진주혁신도시

월아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 옆으로 걸어 올라온 질매재가 여기서 2,150m, 청곡사가 2,300m, 두방사 900m를 알리는 이정표가 함께 있다. 여기 이곳은 가물 때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목책 성을 쌓아 왜적을 무찌르는 본영으로 삼았다. 전망대에는 지리산 시인 이원규 씨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를 패러디한 시가 붙어 있다.

‘월아산에 오시려거든/ 언제나 새벽 일출을 보러 오시라/ 새벽 일출 어쩜 저리도 고울 수가/ 저 먼 곳을 휘감는 운해의 모습/ 월아산에 오시려거든/ 풀잎에 이슬처럼 오시라/ 언제나 처음처럼 오시라/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처음처럼 오시라/’

시를 읽고 숨을 골랐다. 전망대에 붙어 있는 해 뜰 무렵의 풍광과 안갯속의 산, 야경 등의 사진을 구경한 뒤로 발아래 풍경을 두 눈으로 천천히 구경했다. 저 멀리 통영 사량도 지리산부터 진주 가좌산까지 병풍처럼 둘러싼 경치 속에 사람은 없다. 남해고속도로를 바삐 오가는 차들과 빽빽한 아파트가 숲을 이룬 사이로 사람은 없다. 저 아래를 구경하는 나를 하늘 위에서 까마귀들이 까악까악 소리 지르며 내려다본다.

전망대에서 산세를 따라 이리저리 살피면서 전설을 떠올렸다. 산 동쪽은 비봉형(飛鳳形)이라 재상 나고 서쪽은 천마형(天馬形)이라 장군이 날 것이라 했다. 실제 재상은 강맹경(姜孟卿)과 강혼(姜渾)은 산 동쪽에서 나고 장군 조윤손(曺潤孫)과 정은부(鄭殷富)은 서쪽에서 났다.

▲ 사진8. 장군대봉에서 청곡사 방향으로 가는 길은 포근한 흙길이다.

정상에서 청곡사(靑谷寺)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청곡사는 879년(신라 헌강왕 5)에 도선 대사가 남강 변에서 노니는 청학을 따라와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길은 좁아졌지만, 흙길이라 좋았다. 낙엽 사이로 꽃줄기나 잎이 올라올 때 ‘노루의 귀’를 닮았다는 하얀 노루귀가 방긋 웃는다. 평상에 앉았다. 저기 저곳에서는 앙증스런 아기의 입처럼 초록빛 새싹들이 노래한다. 걸음을 옮기자 발아래 노란 양지꽃이 보석처럼 빛난다. 선 분홍빛 진달래꽃망울이 붓처럼 꽃망울을 터트릴 때를 기다린다.

▲ 생강나무 노란 꽃들이 하늘의 별처럼 싱그럽게 매달려 바람에 한들한들 춤춘다.

300m 오자 청곡사와 소정상으로 나뉘는 갈림길이 나온다. 소정상으로 향했다. 화살처럼 굽은 여린 가지 사이로 초록 잎사귀들이 줄지어 매달린 모습이 귀엽다. 소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길은 시원하다. 생강나무 노란 꽃들이 하늘의 별처럼 싱그럽게 매달려 바람에 한들한들 춤춘다. 정상에서 650m. 돌탑이 나온다. 두 개의 돌탑 아래에 정성을 부탁하는 글이 있다. ‘친구야 어디를 급히 가시는가 바람 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 들어가며 잠시 정성 올려놓고 가시게나’. 나 역시 근처의 돌을 들어 탑에 보탰다.

▲ 산정상에서 1,070m. 마치 김덕령 장군과 함께한 용사들을 닮은 돌탑들이 무리 지어 진주를 내려다보는 곳이 나온다.

산정상에서 1,070m. 마치 김덕령 장군과 함께한 용사들을 닮은 돌탑들이 무리 지어 진주를 내려다보는 곳이 나온다. 여기서 청곡사는 1,500m, 질매재는 640m란다. 질매재로 향했다.

길은 내리꽂힌 듯 가팔랐다. 두 발에 힘이 들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기 버겁다. 하얀 노루귀가 조심조심 내려가라 인사를 하고 보랏빛 현호색이 쉬엄쉬엄 가라 한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겸손하라’고 일러주는 양 소나무 한 그루가 길을 가로질러 진주 시내를 향한다.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낮춰 나무 밑을 지났다.

▲ 들숨 한번 들이쉬고 날숨 한번 내자 분홍빛 노루귀 무리가 발아래에서 보였다. 요 녀석들 덕분에 잠시 웃었다.

진주 혁신도시가 얼핏 보인다. 내리꽂힌 길이 제법 익숙할 만한데도 두 다리와 두 발에 힘이 들어간다. 올라왔던 길이 설핏 보인다. 들숨 한번 들이쉬고 날숨 한번 내자 분홍빛 노루귀 무리가 발아래에서 보였다. 요 녀석들 덕분에 잠시 웃었다. 초록 잎들이 살짝 엇갈려 가지에 매달린 나무가 정겹다.

▲ 한 두 시간이면 다녀올 거리를 천사 같은 들꽃과 초록빛이 마치 아장아장 걷는 아기마냥 귀여워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봄에 홀리듯 월아산을 거닌 하루다.

월봉 쉼터, 돌탑 가는 길이라는 표지석이 나왔다. 올라갔던 완만한 시멘트 포장길과 만났다. 두 다리는 후들거렸다. 질매재에서 장군대봉을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이다. 한 두 시간이면 다녀올 거리를 천사 같은 들꽃과 초록빛이 마치 아장아장 걷는 아기마냥 귀여워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봄에 홀리듯 월아산을 거닌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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