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평균 연세가 90세, 이제 44분만이 살아계신다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귀향'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개봉 300만 명을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귀향'은 감독이 사비를 털고 부족한 재원을 시민 후원으로 채우면서 14년 만에 완성한 영화다. 애초에 상업적으로 기획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흥행 돌풍 자체가 또 다른 화제다. 이 추세를 유지한다면 '귀향'은 조만간 '국민 영화'의 지위에 오를 것 같다.

누구나 이 영화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을 얻는다. 지금까지 익히 사진으로 보고 글로 읽어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눈으로 확인하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렇다! 나는 그들의 존재와 고통을 알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공감하고 이해하진 못했다. 영화는 이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 준다.

사실 그동안 위안부의 존재는 늘 우리 곁을 풍문처럼 떠돌았다.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았다. 역대 어느 정권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2005년 3`1절 기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하라며 강력하게 항의한 것이 전부이다. 시민들도 미온적이긴 마찬가지였다. 20년 넘게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렸지만 참여자는 소수였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세계적인 이슈로20여 개국 60여 도시에서 수만 명이 참여하는 연대집회로 발전했지만, 이는 오로지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비롯한 소수 활동가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위안부 피해자를 자기의 문제로 껴안은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동정 받아야 할 '그들'이 아니라 위로받아야 할 '우리'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제목이 귀향(歸鄕)이 아니라 귀향(鬼鄕)인 까닭은 종전 후 살아 돌아온 피해자뿐만 아니라, 죽어서 돌아오지 못한 피해자까지 껴안자는 뜻으로 읽힌다. 그건 위안부 피해자 전체를 정당한 우리 역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자는 권유이다.

위안부 문제를 일본군이 우리 소녀들을 집단 강간한 사건으로 해석하면 위안부 피해자는 또 다른 가부장적 민족주의 담론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이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보면 일본에 대한 분노를 증폭시켜 민족주의 정서를 동원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정작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온전한 수용은 어려워진다. 낡은 정조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깊은 위로와 후원이 필요한 그들을 멸시와 냉대의 속마음으로 대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위안부 문제는 제국주의 열강의 약소국에 대한 국가 간의 폭력과, 남성이 여성에 가하는 가부장적 폭력이 중첩된 문제다. 이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볼 때만 위안부 피해자들은 부당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회복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이런 사회적 인정이 자리 잡아 집단적 힘을 발휘할 때, 가해당사자인 일본의 공식사과와 법적 배상도 앞당겨질 것이다.

할머니들의 평균 연세가 90세, 이제 44분만이 살아 계신다. 앞을 향하는 촌음의 시간이 아쉬운 이 때, 우리 역사는 뒤를 돌아가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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